주간동아 1153

2018.08.29

한창호의 시네+아트

‘인형의 집’을 깨고 나오는 ‘캐리’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의 ‘델마’

  • 입력2018-08-28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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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사진 제공·㈜그린나래미디어]

    노르웨이 중견감독 요아킴 트리에르는 세 번째 장편 ‘라우더 댄 밤즈’(2015)로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이 작품에서 트리에르는 북유럽 예술의 후예답게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같은 가족 멜로드라마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영화에서도 가족 사이의 억압과 사랑은 드라마의 긴장을 구축하는 극적 장치다. 

    트리에르가 2017년 발표한 작품 ‘델마’ 역시 가족관계의 긴장이 도입부에서부터 제시된다. 눈 덮인 산에서 아빠는 어린 딸과 함께 사냥 중이다. 한 마리 사슴이 나타났고, 딸 뒤에 서 있던 아빠는 조준을 하는데, 놀랍게도 총구가 향한 곳은 사슴이 아니라 딸의 머리다. 희생을 상징하는 사슴의 등장, 희생양이 될 운명에 놓인 딸. 말하자면 ‘델마’는 딸을 제단에 바치는 그리스의 왕 아가멤논의 신화가 떠오르는 짧은 프롤로그로 서두를 연다. 왜 아빠는 딸의 죽음을 요구할까.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러처럼 영화는 큰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델마(에일리 하보에 분)는 오슬로의 대학에 진학한 지방 출신 신입생이다. 지나치게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그는 도시 청년에겐 좀 ‘어색해’ 보이는 캐릭터다. 도서관에서 공부에만 전념하는데도, 고향 부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일상을 일일이 간섭한다. 부모의 간섭은 델마, 더 나아가 관객까지 억압의 구속으로 밀어 넣는다. 델마는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새장 속에 갇힌 새 같다. 

    도서관에서 델마의 옆좌석에 앉은 학생이 아냐(카야 윌킨스 분)다.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았는데, 델마는 그에게 큰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갑자기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도서관 전등이 깜박깜박하고, 히치콕 영화처럼 검은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히고, 델마는 발작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발작하며 바지를 다 적셨고, 이를 학생들이 모두 봤다. 

    주인공의 특별한 운명을 예시하는 방법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고전 ‘캐리’(1976)와 같다. 장소만 샤워장에서 도서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델마도 캐리처럼 ‘염력’, 곧 정신 집중만으로 다른 존재를 통제하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 



    영화의 표면은 델마와 아냐 사이의 레즈비언 로맨스다. 그런데 ‘델마’는 주인공에게 초능력을 부여해, 이야기 전체를 현실성의 규칙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놓았다. 결과적으로 모든 행위는 인과율의 한계를 벗어나 해석될 수 있다. 이를테면 ‘아빠의 총구’는 가족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딸을 희생시키려는 ‘숭고한’ 행위로, 또 한편으로 부모의 숨 막히는 통제로도 상징될 수 있다. 

    델마의 특별한 고독은 어릴 때 동생이 태어난 뒤 부모의 사랑을 빼앗기면서 시작됐다. 그 사랑을 되찾아준 인물이 연인 아냐다. 영화의 끝은 델마가 비로소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연인과 함께 캠퍼스를 행복하게 걷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장면이 현실인지, 델마의 상상인지 모호하게 처리됐다. 

    ‘델마’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염력 같은 초능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해석을 자극하는 드라마 작성법은 트리에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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