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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on the stage

막다른 골목에 선 도시인의 자화상

연극 | ‘고래가 산다’

막다른 골목에 선 도시인의 자화상

[사진 제공·극단 유목민]

[사진 제공·극단 유목민]

얼마 전 서울을 방문한 한 이탈리아 친구가 한강을 보고 “바다가 아니냐”고 물었다. 서울 허리를 관통하는 한강은 폭이 1km를 넘지만, 로마를 가로지르는 테베레강은 평균 88m 폭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한강이 바다처럼 보였나 보다. 문득 연극 ‘고래가 산다’가 떠올랐다. 바다에 사는 고래가 한강에서 살 수 있을까. 

‘고래가 산다’의 극 중 배경은 한강공원이다. 오후 7시 열릴 음악회 때문에 모두 분주하다. 로마 테베레강, 파리 센강이 역사를 머금은 고풍스러운 경관을 지녔다면, 우리 한강은 현재형 문화복합 커뮤니티 시설인 시민의 쉼터다. 인구 1000만 명의 거대도시 서울에서 한강은 시원한 강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안락한 장소지만, 동시에 획일화되고 정리된 삭막한 공간이기도 하다. 낯 부끄럽고, 무안하며, 억울하고, 불편한 사연을 가진 절박한 자들이 한강에 모여든다. 문제가 있는 특정 인물이 한강에 오는 게 아니라 한강을 찾는 일반 도시인의 민낯이 연극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연출자 손정우는 눈부신 성장과 풍요 뒤에 숨겨진 어두운 일면을 날카롭고 세련된 무대언어로 선보인다. 무대 위 모든 움직임이 한순간 정지되면 그 정적 속에서 한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출 기법으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가슴속에 묵혀둔 속내는 동심원처럼 퍼져 나가 다른 이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전직 법학 교수인 노숙자는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한강 환경 조성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땅 위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조성에는 무관심하다”고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아내와 이혼을 앞두고 구두를 벗어놓은 채 어디론가 떠난 남자, 독일 유학 중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무작정 여행을 다니는 여행가, 발목을 다쳐 절망에 빠진 발레리나, 유부남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공연기획자, 정규직을 꿈꾸는 비정규직 수질검사원, 한강에 투신자살한 여중생과 그 딸을 못 잊어 한강에 온 엄마…. 그들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방황한다. 

무대 위 배우 21명이 선보이는 완벽한 앙상블 하모니는 긴장감 넘치는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무대에 고래는 등장하지 않지만 한강에 갇혀 주변을 맴도는 고래 울음소리는 공연 사이사이 극장에 메아리친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에서 사는 현대인의 그림자가 고래에 투영된다. 

극본가 김수미는 ‘법 테두리에서 정한 올바른 가치는 규정돼 있지만 인간사에서 올바른 가치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소통하며 성찰해야만 얻는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주간동아 2018.03.14 1129호 (p73~73)

  • | 공연예술학 박사  ·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 간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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