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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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자료로 엮어낸 ‘수염 난 늙다리(스탈린)’의 비극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7-08-14 1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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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독재자의 새로운 얼굴
    올레크 V. 흘레브뉴크 지음/ 유나영 옮김/ 삼인/ 647쪽/ 3만5000원

    어릴 적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탐독했다. 여러 번 읽어도 물리지 않고 흥미로웠다. 주인공 슈호프가 점심 급식 때 죽 한 그릇을 더 타내고, 신나게 건물 벽돌 쌓기를 하며, 검문을 피해 수용소로 줄칼을 갖고 들어오는 내용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짜릿했다.

    그와 비례해 부조리하고 공포로 가득한 수용소를 만든 ‘수염 난 늙다리’(책에서 스탈린을 일컫는 은어)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대학 때 사회주의 철학의 세례를 받으면서도 스탈린을 ‘나쁜 놈’ 반열에서 지우지 못했다.

    소설에 나오는 죄수들의 억울한 사연과 생생한 묘사가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후 스탈린은 관심도 별로 없었을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은 대상이었다.

    스탈린 전기인 이 책이 기자의 관심을 끈 것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같은 수준의 생생하고 세밀한 기술(記述)로 스탈린의 74년 생애를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20년 이상 스탈린과 그의 시대를 연구해온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학자로, 러시아 국립고등경제대 수석연구원이자 국립문서보관소 선임연구원이다. 이 책이 생생함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 문서고(文書庫)의 달인’이라는 별칭답게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편지, 메모, 보고서, 일기 등 국립문서보관소의 방대한 스탈린 관련 자료를 자유자재로 이용한 덕이다.

    이런 세세함은 1953년 3월 1일 뇌출혈로 쓰러진 뒤 5일 사망하고 9일 장례식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압권을 이룬다.

    2월 28일 스탈린은 그의 다차(별장)에서 핵심 측근 4인방과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신 뒤 새벽에 헤어졌고, 다음 날 다차에서 고목나무처럼 쓰러져 있는 그를 경호원들이 발견한다. 의사를 숙청한 직후여서 의사도 부르지 못한 채 하루를 넘겼고 결국 3월 2일 아침 다차로 불려온 다른 의사는 사실상 사망 진단을 내린다. 스탈린 측근들은 4일 당중앙위원회 총회를 소집하고 스탈린이 죽기 전 몇 달간 만든 정부 구조를 해체했다.

    이어 5일 저녁에는 스탈린의 국무총리직과 당중앙위원회 총간사직을 박탈했다. 자신도 모르게  권력 박탈을 감수한 지 한 시간 뒤 스탈린은 사망했다. 이어 스탈린 치하에서 숙청된 정치인 등의 복권이 진행됐고, 체포된 사람에 대한 고문 금지와 비정치적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사면이 발표됐다. 무리한 건설공사와 군비 확장에 제동이 걸렸고, 이를 통해 확보한 예산은 농산물 수매가 인상과 세금 감면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강고하던 스탈린 체제가 붕괴되는 데는 석 달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가 이 대목을 강조한 것은 스탈린 체제가 그만큼 허약했고 스탈린의 개인 플레이에 의존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사실 저자가 이 책을 기획한 이유는 그동안 연구 성과의 집대성이 아니라, 러시아에 퍼지고 있는 ‘스탈린 향수병’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소련 붕괴 후 체제 변화의 스트레스가 이어지고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사회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스탈린 식 숙청을 ‘정화’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당시는 평등했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어서다. 이런 거짓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단적 국정운영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탈린에 대한 향수는 역사적 근거가 없고 오히려 막대한 고통과 사회적 손실을 야기했다고 비판하면서 “21세기 러시아에선 그런 실정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소명 때문에 책 전체적으로 스탈린의 개인 책임을 지나치게 부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주의 체제의 태생적 시스템 한계와 연결고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 맥락 없는 영혼’ ‘영혼 없는 맥락’이라는 전기 저술의 약점을 극복하겠다고 했으나 ‘맥락 없는 영혼’에 가까운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한계에 대해선 책 말미에 노경덕 이화여대 교수가 쓴 해설 ‘러시아 역사가의 스탈린 신화 깨기 기획’이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노 교수 역시 “스탈린 전기의 결정판은 아니지만 그의 전 생애를 다룬 전기 중 가장 읽을 만한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아버지와 살면
    이노우에 히사시 지음/ 정수윤 옮김/ 정은문고/ 128쪽/ 9800원


    일본의 ‘국민 극작가’로 꼽히는 저자(1934~2010)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배경으로 쓴 짧은 희곡이다. 일본 현대문학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오에 겐자부로 같은 반열로 대접받는 그는 반전, 반핵을 외치며 일본의 전쟁 책임을 지적하고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원자폭탄 투하로 아버지를 잃은 딸이 죄책감에 시달려 호감을 느끼는 남자와 사귀지 않으려 하자 아버지의 유령이 딸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는 내용. 1994년 초연 이후 500회 이상 공연됐고 2004년 구로키 가즈오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다
    이웅종 지음/ 쌤앤파커스/ 304쪽/ 1만5000원


    개가 추울까 봐 두꺼운 옷을 입히고, 예쁘게 보이고 싶다며 털을 알록달록하게 염색한다. 이게 과연 개를 위한 일일까. 저자는 개를 사랑한다면서 개를 사람의 기준에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평소엔 사람처럼 대하다 결정적 순간엔 개로 대하는 바람에 개를 헷갈리게 한다. 그래서 반려견 훈련의 궁극적 방향은 사람(보호자)의 훈련이고, 이 책은 그 길잡이 구실을 자처하고 있다. 저자는 ‘해피선데이-1박2일’ ‘TV동물농장’ 등에 출연해 유명해졌으며 2015년 반려동물교육 부문의 ‘대한민국 명인’으로 추대됐다.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곽한영 지음/ 창비/ 336쪽/ 1만6000원


    ‘피터 팬’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물섬’ 등 명작의 초판본을 수록했다. 부산대 사범대 교수인 저자는 미국과 유럽의 벼룩시장이나 고서점에서 구한 초판본을 통해 이들 동화의 원형과 이야기가 어땠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일화를 차분히 소개한다. 예를 들면 ‘닐스의 모험’은 지리 수업 교재용으로 집필했는데 교재로는 실패하고 대중소설로 큰 인기를 끌었고, 아들을 모델로 쓴 ‘곰돌이 푸’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아들이 친구들에게 놀림받아 4권으로 시리즈를 끝냈다는 등의 뒷얘기가 흥미롭다.






    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세종서적/ 556쪽/ 1만5000원


    미국 아동문학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뉴베리상 수상 작가의 작품은 믿고 볼만하다.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다. 저자는 2008년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뉴베리상을 탔고 이 책도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1911년 미국을 배경으로, 예쁘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열네 살 소녀 조앤 스크래그스의 성장기를 담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학교에 다니고 싶던 조앤은 아버지의 강요로 농장 일을 하게 된다. 결국 아버지와 크게 싸운 뒤 집을 나와 나이를 속이고 도시의 부잣집 가정부로 취업하는데…. 원제는 ‘The hired girl’.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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