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와인 for you

훗날 내 아이의 탄생을 기념할 와인

샤토 레오빌 라스 카스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8-08 1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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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가의 포도나무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520여km 떨어진 보르도(Bordeaux)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강 옆에 위치한 포도밭은 서리 피해가 적고 기후도 온화한 덕에 좋은 포도를 생산한다는 뜻이다. 보르도 한가운데를 흐르는 지롱드(Gironde) 강의 좌안(左岸)에는 샤토 레오빌 라스 카스(Cha^teau Le′oville Las Cases)가 있다. 기품 있고 우아한 풍미를 자랑하는 레오빌 라스 카스 와인은 보르도의 귀족이라고도 부른다.

    레오빌 라스 카스는 원래 17세기 초 수도사들이 일군 포도밭이었다. 이 밭을 모이티에(Moytie′) 가문이 매입했고, 이 가문의 딸이 훗날 레오빌의 영주와 혼인하면서 와이너리 이름이 샤토 레오빌이 됐다. 17세기 말 레오빌의 영주가 후손 없이 사망하자 조카들에게 유산이 상속됐는데 이때 샤토 레오빌이 레오빌 라스 카스, 레오빌 바르통(Barton), 레오빌 포이페레(Poyferre′)로 나뉘었다.




    라스 카스는 레오빌이 소유했던 100만㎡의 밭 가운데 가장 좋은 55만㎡를 물려받았다. 지롱드 강과 인접한 이 밭은 자갈과 모래가 많아 주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기르기에 최적지다. 물 빠짐이 좋고 땅이 척박할수록 포도나무가 넝쿨보다 열매에 양분을 집중해 달고 맛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레오빌 라스 카스의 뛰어난 맛과 향이 모두 밭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라스 카스만큼 까다롭게 와인을 만드는 곳도 드물다. 그들은 좋은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고자 포도를 두 번 검증한다. 밭에서 육안으로 확인해 건강한 포도만 수확하고, 와이너리에서는 광학 분리기로 포도알을 일일이 스캔해 충실한 포도로만 착즙을 한다.

    라스 카스는 숙성에 대한 철학도 남다르다. 그들은 발효가 끝나자마자 블렌딩을 한다. 와이너리가 대부분 숙성까지 마친 와인을 블렌딩하는 것과 반대다. 발효가 막 끝난 와인은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유아기’이며, 와인이 어릴 때 서로 섞어야 숙성을 거치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라스 카스의 믿음이다.

    레오빌 라스 카스를 한 모금 머금으면 카베르네 소비뇽 특유의 농밀한 과일향과 탄탄한 구조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긴 여운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미네랄향은 섬세함의 진수다. 과연 보르도의 귀족으로 불릴 만한 품질이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맛과 향을 느끼려면 적어도 20~30년간 숙성이 필요하다. 지금 마시기 딱 좋은 레오빌 라스 카스는 1980년대 빈티지다.

    기다리기 힘들다면 레오빌 라스 카스의 세컨드 와인인 르 프티 리옹(Le Petit Lion)을 선택해도 좋다. 르 프티 리옹은 라스 카스보다 메를로(Merlot) 함량이 많아 질감이 더 부드럽고 자두, 블랙커런트, 블루베리 등 과일향에 향신료와 미네랄향이 맛깔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어리지만 품격 있는 귀족 같은 느낌이다. 레이블에 그려진 아기 사자도 어린 귀족을 상징하는 듯하다.

    레오빌 라스 카스는 가격이 꽤 비싸지만 숙성 잠재력이 길게는 70년에 이르므로 인생의 특별한 해를 기념하기에 더없이 좋은 와인이다. 예를 들어 자녀의 생년 빈티지를 한 병쯤 사둔다면 어떨까. 아이가 장성해 결혼하거나 첫아이를 낳았을 때 오래 묵힌 라스 카스를 함께 나눈다면 그 기쁨과 감동이 배가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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