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국제

‘학자형 정치인’ 차이잉원의 숙제

대만 총통 공식 취임…‘양안관계’ 변화에 세계적 관심

  • 박선빈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차이잉원 전기 ‘보통사람의 특별한 인생’ 역자

    입력2016-05-23 09:37:0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5월 20일 대만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식이 열렸다. 이에 따라 대만과 중국 사이, 이른바 양안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필자는 중국 베이징대를 졸업했다. 현장에서 지켜본 대만에 대한 중국의 감정은, 우리가 독도에 대해 갖는 감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경제니 외교니 하는 계산기를 두드려보기 전 무조건, 타협의 여지없이 우리 땅인 곳.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렸고 지금도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국민은 본능적으로 영토 분쟁에 민감하다. 게다가 중화민국(과거 국민당 장제스가 이끌던 국가로, 유엔 탈퇴 후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은 과거 중국 공산당과 대립하던 국민당의 유산 아닌가. 대만 독립은 중국의 DNA를 부정하고, 정세가 불안한 변방지역의 이탈을 촉발하는 재앙과 같다.



    ‘대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대만은 어떨까. 2년 전 방문한 대만은 향 좋은 녹차를 파는 찻집, 화려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박물관, 생글생글 웃는 친절한 사람들로 기억되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인상적이던 것은 골목마다 들어선 책방이었는데, 책 읽는 사람으로 가득 찬 시내의 한 대형서점 정중앙에는 ‘대만의 미래’ ‘대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같은 제목의 책이 줄지어 진열돼 있었다. 1600년대부터 서구 열강과 명·청, 일본 등 다양한 세력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지역은 이후 중국 대륙의 국민당 세력이 이주해오면서 토착 원주민 문화와 외국 및 중국 대륙 문화가 융화된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됐다. 이러한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 하는 대만 사람들에게 중국은 양날의 검과 같다. 대(對)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기대면 기댈수록 대만의 정체성은 희석되기 때문이다. 더 가까워지기는 싫고, 그렇다고 멀어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이런 딜레마 속에서 대만의 새로운 지도자, 차이잉원이 탄생했다.

    얼핏 봤을 때 차이잉원은 정치인보다 은둔하는 학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독신으로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사는 그는 지금도 집에서 요리하고 책 읽는 것을 즐긴다. 대만 사람들은 이처럼 소박한 성격과 단발머리, 동그란 얼굴, 자그마한 체구로 친근한 이미지를 가진 그에게 ‘샤오잉’(小英·중국에서는 이름 앞에 小자를 붙여 애칭을 만든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자동차 수리업체를 운영하며 자수성가한 부모 아래서 막내로 태어난 차이잉원은 어릴 때도 책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조용한 아이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공부에 눈을 떴고 “집안에 법조인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대만국립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타이베이 토박이로 자란 그는 졸업 후 유학길에 올라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다시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대만으로 돌아와 국립정치대 법학과에서 교편을 잡았다.  

    젊은 시절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 보낸 법학도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우연히 친구를 대신해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 법률고문을 맡으면서다. 국제무역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뉴욕, 런던에서 유창한 영어와 서구식 매너를 배운 그는 협상에서 중추적 임무를 맡아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마흔셋 젊은 나이에 우리나라 통일부 장관 격인 대륙위원회 주임으로 임명돼 대중국 문호 개방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전면 개방을 실시하기에 앞서 시범적으로 중국과 교류를 시작하는 ‘소삼통(小三通)’을 실현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의 출발

    이처럼 실전을 통해 쌓은 행정 수완은 차이잉원이 가진 강력한 무기다. 그간 대만을 이끌어온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중국과 교류로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했다면, 차이잉원은 지역산업 육성과 외국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침체된 대만 경제를 부흥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춰 양안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겠다는 것이다. 경상도 남짓한 크기의 작은 섬인 데다, 국제사회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만이 이루기에는 쉽지 않은 목표다. 그러나 국제적 감각과 협상 능력, 행정 경험으로 무장한 차이잉원에게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차이잉원은 이미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전적도 있다. 재기불능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던 민진당 대표를 맡아 당을 소생시켰다. 자기 이름을 딴 도시락 모금 방식을 고안해 부채에 허덕이던 당의 재정위기를 극복했고, 길거리 시위를 주도하면서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뇌물수수 사건 이후 바닥을 치던 민진당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단순히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타개할 강단도 갖췄다는 점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화려한 경력에도 차이잉원은 여전히 자신을 ‘전형적이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조용히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자신만의 사고회로에서 검토한 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정치인답지 않게 조용한 성격을 억지로 바꾸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맡은 일에 충실할 수 있는 길을 탐색했다. 대중 앞에 선 차이잉원은 실제 차이잉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이성적인 설득을 선호하고, 악수 같은 스킨십을 어색해한다. 기성 정치인에게서는 보기 힘든 낯설면서도 진솔한 그의 모습이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 대만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대만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차이잉원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가장 큰 문제는 양안관계다. 경제적 교류는 유지하기를 바라되 지나친 친중정책은 위협적이라고 느끼는 민심을 반영하듯, 그는 이번 선거에서 ‘현상 유지’를 양안관계 모토로 내걸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의 철학과 자신의 모토인 ‘현상 유지’ 사이에서, 중국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혜택과 대만의 정체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이제 차이잉원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낮은 임금과 높은 물가에 신음하는 대만 젊은이들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한다.

    한국도 마냥 지켜보기만 할 처지는 아니다. 얼마 전 대만 출신 한 걸그룹 멤버가 TV 프로그램에서 중화민국기를 흔든 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우리도 두 주인공과 함께 무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문화에서 정치로, 정치에서 경제로 신경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만든 작은 파동이 양안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거꾸로 양안관계의 자그마한 변화가 우리의 삶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양안관계를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제 무대의 막이 오른다. 두 주인공이 어떤 모습으로 공생의 길을 찾을지, 그리고 둘의 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무대 위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어야 할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지도자의 첫 마디를 기다려본다. 

    박선빈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차이잉원 전기 ‘보통사람의 특별한 인생’ 역자 | sunbin.park@gmail.com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