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 김진호 향군의 유턴

“우리는 안보단체, 더는 좌시할 수 없다”

보훈처 개입과 미 방위비 문제로 정부에 쓴소리...국방외교에도 나서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9-04-01 08: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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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향군이 안보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예비역 대신 민주화운동 인사를 호국원에 안장하려 한다. 이 때문에 향군은 감독기관인 국가보훈처와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향군]

    국가보훈처는 향군이 안보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예비역 대신 민주화운동 인사를 호국원에 안장하려 한다. 이 때문에 향군은 감독기관인 국가보훈처와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향군]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의 유턴.’ 요즘 향군의 움직임은 이 한마디로 압축될 수 있다. 향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발맞춰 활동했다. 지난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위해 서울을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 일행을 환송했고, 평양 정상회담에서 나온 9·19 군사합의를 지지하며 국방부를 대신해 합의 내용을 알리는 설명회도 가졌다. 내부에선 안보단체로서 역할을 잊고 지나치게 ‘친정부’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KBS 시청료 거부 운동 선언

    그런 향군이 최근 180도 달라진 모습을 여러 번 보이고 있다. 3월 16일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KBS 교양프로그램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괴뢰’”라며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신탁통치에 찬성했으면 분단도 없었을 것이다” “(이승만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같았으면 침묵했을 것 같은 향군이 일어났다. 향군은 즉각 성명을 내고 “KBS가 방송한 통일은 어떤 통일인가”라고 묻고, “공영방송인 KBS가 건국의 주역이며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고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해 대한민국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긴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고 모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자유민주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KBS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을 선언했다.

    호국원에 예비역 대신 민주화 인사 안장?

    지난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위해 서울을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 일행을 환송했던 향군 회원들. [뉴시스]

    지난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위해 서울을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 일행을 환송했던 향군 회원들. [뉴시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문재인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강하게 반대한 것에 대해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와 함께 비판한 것. 향군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우리 안보의 기본 축”이라고 평가한 뒤 “한국이 내놓은 방위비 분담금의 90% 이상은 주한미군이 고용하는 우리나라의 장비·용역·건설 회사에 지불됨으로써 한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향군의 전환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국가보훈처(보훈처)와 갈등이다. 향군은 6·25전쟁 중인 1952년 준(准)군사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전시에는 예비병력 동원이 매우 중요하기에 병역법 제77조를 근거로 국방부 동원국이 관할하는 향군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1961년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향군법)을 제정해 법률기관이 됐다. 이 때문에 향군은 국방부의 감독을 받는 ‘안보단체’가 됐다. 향군은 정부 지원으로 받은 몇 가지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운영된다.



    안보단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것으로 보훈단체가 있다. 보훈단체는 월남전참전자회·상이군경회처럼 국가가 보살피는 유공자들의 모임이다. 보훈단체도 수익 사업을 하긴 하지만, 국가로부터 보훈받는 것을 우선시해 향군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1992년 당시 노태우 정부는 업무 효율화를 꾀한다는 등의 이유로 향군에 대한 감독권을 보훈처로 이관했다.

    향군은 자체 사업으로 번 돈을 보훈처에 보훈성금으로 냈다가 ‘그대로’ 돌려받아 매년 사업비로 쓰고 있다. 사업체 수익금을 보훈성금으로 내면 법인세 등이 면제되는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훈처가 향군에 보태주는 것은 전혀 없지만 명목상으론 국고를 지원하는 형식이어서, 향군 업무에 개입할 수 있다. 향군이 보훈처에 넣었다 되돌려 받는 돈은 연간 190억 원가량이다.

    이런한 향군이 2000년대 초 사업을 확대했다 실패해 7000여억 원의 빚을 졌다. 현재는 5000여억 원으로 줄여놓았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보훈처는 향군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향군법을 개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은 향군 인사에 개입할 수 있도록 또 개정하려 한다. 이것 때문에 보훈처와 향군의 사이가 좋지 않은데 보훈처가 다른 일로 향군을 자극했다.

    20년 이상 현역 생활을 하다 타계한 예비역은 서울과 대전에 있는 현충원, 10~20년간 복무한 예비역은 호국원에 안장될 수 있다. 그런데 2월 지은희 전 덕성여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보훈혁신위)는 10~20년간 복무하고 타계한 예비역들 말고 ‘공권력에 의한 집단 희생자’와 ‘민주화운동 사망자’를 호국원에 모시자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부글부글하던 향군이 폭발했다. 보훈혁신위는 한 발 더 나아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만들려 했다. 3월 26일 피우진 보훈처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현 기준으로 김원봉은 독립유공자로 서훈될 수 없지만, 여러 의견을 수렴 중이다.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향군은 호국원 안장 건과 함께 이를 거론하며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결정된 정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일, 한미 군사외교 복원에도 참여

    한일 군사협력 회복을 위해 일본의 향군 격인 향우연맹 회장을 만난 김진호 향군 회장(오른쪽). [사진 제공 ·향군]

    한일 군사협력 회복을 위해 일본의 향군 격인 향우연맹 회장을 만난 김진호 향군 회장(오른쪽). [사진 제공 ·향군]

    이러한 대립은 지난해 갈등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이 있기 전 향군은 주요 일간지에 이 회담을 지지한다는 광고를 냈는데, 그 직후 보훈처는 향군에 ‘정치 행사를 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는데도 보훈처가 제동을 건 것은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의 기억 때문으로 보인다. 

    그 시절 향군은 태극기집회의 원조 격인 시국집회를 서울시청광장에서 거듭해 열었다. 그때 향군은 이를 안보행사라고 주장했으나, 진보세력은 정치집회로 봤을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 지지를 허용하면 나중에 안보행사도 허용해줘야 하니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는 향군이 판문점 정상회담을 지지하지 못하도록 선수를 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1월 보훈처는 5000여억 원의 빚을 거론하며 향군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향군은 보훈처가 판문점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광고를 규제한 것을 직권남용이라 규정하고 시위에 나섰다. 

    예비역은 대부분 한일 군사협력이 한미 군사동맹 다음으로 중요한 원군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지난해 10월 제주 관함식에 욱일기를 단 일본 함정의 불참에 이어 12월 동해에서 일어난 초계기 사건으로 최악으로 떨어졌다. 한미관계도 결코 좋은 상태는 아니다. 

    2월 김진호 향군 회장 등 향군 임원진은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향군 격인 향우연맹(鄕友聯盟)과 대우회(隊友會)의 대표단은 물론, 가와노 가쓰토시(河野克俊) 통합막료장(우리의 합참의장에 해당)을 만나 양국관계 회복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저녁에는 술자리를 갖고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비와 월남전참전용사기념비가 있다. 월남전참전용사기념비에는 전사한 미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나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비에는 없다. 미국 향군은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비에도 전사자 이름을 새기려 한다. 이를 안 향군은 모금운동을 벌여 6월 전달하겠다고 나섰다. 국방부를 대신해 군사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향군 관계자는 “우리는 어용단체가 아니다. 오직 안보만 보고 간다. 보훈처와 다투고, 국방부에는 선택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진호 향군 회장 “코드 같은 소리 하지 마라”

    2017년 방한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왼쪽)과 대화하는 김진호 향군회장. [사진 제공 ·향군]

    2017년 방한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왼쪽)과 대화하는 김진호 향군회장. [사진 제공 ·향군]

    지난해 향군은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행동을 했다. 

    “코드 같은 소리 하지 마라. 향군은 안보단체니 안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지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할 뿐이다. 6차 핵실험을 통해 핵 보유를 선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거론하며 이른바 핵-경제 병진노선을 내놓았다. 핵을 가졌으니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한 것인데, 나는 이것을 기회로 봤다. 북한이 경제에 다걸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가 북한 비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로 본 것이다. 정부 또한 북한 비핵화를 위해 회담을 하겠다고 했으니 지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북한은 천안함 폭침 사건의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보내왔다. 

    “그것 때문에 우리 사회는 시끄러웠다. 북핵을 막는 최선의 방안은 우리의 핵무장이고, 두 번째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다. 그러나 두 방안은 미국의 반대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 그럼 북한 비핵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때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그의 방남을 대승적으로 수용하자 했고,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은 정부 정책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 비핵화를 위해 그의 방남을 수용해보자고 했던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을 위해 출발한 문 대통령을 환송해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상황이 바뀌었다.” 

    9·19 군사합의를 지지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나. 

    “그 합의의 핵심은 쌍방은 지·해·공 어떤 방향으로도 도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려면 긴장부터 완화하고 도발을 중지해야 한다. 그때 나는 동해부터 서해까지 최전방 모든 부대를 방문했는데,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항공 전력과 정찰 자산을 후진시켜도 안보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평양회담에서 북한은 경제를 중시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열어달라는 투로 이야기했으니, 북한 비핵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 확인된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향군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제2의 안보 보루로서 현역이 말하지 못하는 의견을 분명히 밝힐 것이다. 김용옥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KBS를 규탄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언론사들이 동업자라고 우리의 규탄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것이 유감일 뿐이다. 향군은 안보단체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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