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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의 도하일기

18년 전쟁 치른 아프간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미국-탈레반 카타르에서 마라톤 협상 ‘샅바 싸움’으로 끝나

18년 전쟁 치른 아프간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카타르 수도 도하의 탈레반 정치사무소. 흰색 빌라뿐 아니라 그 앞마당에 쳐놓은 대형천막에도 건물의 정체를 드러내는 표시가 없고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게 해놨다.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카타르 수도 도하의 탈레반 정치사무소. 흰색 빌라뿐 아니라 그 앞마당에 쳐놓은 대형천막에도 건물의 정체를 드러내는 표시가 없고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게 해놨다.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카타르 수도 도하의 외교 공관들이 모여 있는 ‘뉴 디플로마틱 구역’ 내 알 샤비 거리(Al Shaby Street). 이곳에는 다소 특이한 모습의 빌라(단독주택)가 한 채 있다. 카타르에선 보기 힘든 작은 간이 경비실이 대문 근처에 세워져 있다. 빌라 앞마당에는 검은색 대형천막을 쳐놓아 높은 곳에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담벼락엔 뾰족한 금속 막대가 촘촘히 박혀 있다. 한눈에 봐도 매우 폐쇄적인 구조다. 외교 공관에서 볼 수 있는 깃발과 간판도 없다. 

이 빌라는 아프가니스탄(아프간)과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정파 탈레반의 사무소다. 2013년 문을 열었고, 공식 명칭은 ‘탈레반 정치사무소’. 탈레반의 사실상 유일한 해외 협상 창구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국가들은 유사시 탈레반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 구축을 원했고, 중동의 중재외교 중심지를 꿈꾸는 카타르가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


세부 사항 합의 삐거덕

카타르 도하 현지에서 평화협상 진두지휘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알자지라 화면 캡처]

카타르 도하 현지에서 평화협상 진두지휘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알자지라 화면 캡처]

최근 이곳은 중동 외교가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였다. 18년 동안(2001년 10월 발발·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 아프간에서 전쟁(9·11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라덴을 당시 아프간을 통치하던 탈레반이 보호했음)을 치러온 미국과 탈레반이 도하에서 2월 25일부터 평화협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탈레반의 2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미국의 잘메이 하릴자드 아프가니스탄 평화담당 특사와 직접 협상에 나선 점이 기대감을 키웠다. 마르완 카발란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정책분석파트장은 “그 어느 때보다 문제해결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3월 12일까지 진행된 마라톤협상에도 미국과 탈레반은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당연히 카타르 안팎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협상 ‘판’이 깨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릴자드 특사는 협상을 마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평화를 위한 조건들이 개선됐다. 양측 모두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는 글을 올렸다. 알자지라와 뉴욕타임스(NYT)도 ‘돌파구는 찾지 못했지만 진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은 △미군 철수 △아프간에서 국제테러조직 활동 방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대화 △종합적인 휴전이었다. 이 중 처음 두 사안은 서로 연계돼 있고 비교적 진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릴자드 특사도 트위터를 통해 ‘처음 두 사안은 초안에는 합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약 1만4000명인 아프간 주둔 병력을 몇 달 안에 절반으로 줄인 뒤, 나머지 인원은 3~5년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길 원한다. 반면 탈레반은 1년 안에 미군의 완전 철수와 구체적인 철수 일정 발표를 요구해왔다. 현지 소식통은 “1월 도하에서 예비접촉을 할 때부터 미군 철수와 아프간에서 국제테러조직 활동 방지 사안은 비중 있게 논의됐다”며 “하지만 분명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의견 차이도 큰 만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탈레반, 집요하게 아프간 정부 배격

2월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 가운데 흰옷 차림은 중재를 맡은 카타르 측 인사들이고, 왼쪽이 미국 대표단, 오른쪽이 탈레반 대표단이다. [카타르 외교부]

2월 2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 가운데 흰옷 차림은 중재를 맡은 카타르 측 인사들이고, 왼쪽이 미국 대표단, 오른쪽이 탈레반 대표단이다. [카타르 외교부]

미국이 단계적 철수를 추진하는 건 테러단체들의 아프간 활동 방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미국은 자국 군대가 떠난 아프간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의 피난처가 돼 또 다른 ‘테러와의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자세다. 이에 대해 탈레반은 ‘아프간이 국제적인 공격의 발판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두루뭉술한 대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으로선 미국이 주장하는 테러단체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정의를 얼마나, 어떻게 수용하느냐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하다가는 협상 뒤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종해 무장투쟁을 해온 단체와 개인이 왜 문제냐’는 내부 비판과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으로선 탈레반을 신뢰하기 어렵고, 향후 돌발 사태를 막는 차원에서라도 단계적인 철수를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다. 

이브라힘 프라이하트 도하인스티튜트 교수(분쟁과 인권 연구센터)는 “미군 철수와 테러단체 활동 방지에 대해선 대화가 이어질 수 있지만, 아프간 정부에 대한 양측(미국과 탈레반)의 시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향후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2014년 집권)이 이끄는 아프간 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라며 철저히 무시한다. 이번 협상에서도 아프간 정부의 참여를 거부했다. 실제로 아프간 정부는 현지에서 ‘카불 정부’로 불린다.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영향력이 수도 카불에만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카불을 제외한 다른 주요 지역은 사실상 탈레반의 영토다. 아프간에서 활동했던 전직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는 “아프간은 공식적인 정부가 카불을, 탈레반이 다른 지역을 통치하는 두 정부 체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자신들이 아프간에 개입한 뒤 정식 선거를 통해 집권한 현 정부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일단은 계속 기능하길 바란다. 미군 철수 뒤 발생할 수 있는 탈레반의 아프간 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과 이를 통한 정권 붕괴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번 평화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3월 1일에도 미군과 아프간군이 함께 사용하는 군 기지를 공격해 아프간 군인 23명을 숨지게 했을 만큼 아프간 정부에 적대적이다.


미국, 현 아프간 정부를 포기하나

1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 소행의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현장에 아프간 정부군이 도착하고 있다(왼쪽). 2월 18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 주민들이 ‘전쟁이 싫고 평화가 좋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의 평화협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신화=뉴시스]

1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 소행의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현장에 아프간 정부군이 도착하고 있다(왼쪽). 2월 18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 주민들이 ‘전쟁이 싫고 평화가 좋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의 평화협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신화=뉴시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이 결국 아프간 정부를 포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국과 주요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한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차지해도 미국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은 최대한 적극적으로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인 2014년 아프간 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2016년까지 미군을 철수하려 해 ‘성급한 발 빼기’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탈레반의 급격한 영향력 확대와 IS의 아프간 진출 가능성을 우려해 결국 철수를 포기했다. 

한 중동 전문가는 “최근 미국이 IS와 전쟁에서 긴밀히 협력했던 쿠르드족과 협의 없이 시리아 철수를 결정한 것을 감안하면 아프간 정부를 포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이런 행보가 계속될 경우 미국과 협력 중인 중동 국가들에선 ‘언제 어떻게 우리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9.03.15 1180호 (p58~60)

  •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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