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8

2019.03.01

안보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수준 북한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대북제재 해제를 전제로 한 북·미 협상 재개는 힘들듯

  •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woo@sejong.org

    입력2019-03-01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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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2월 28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2월 28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누가 이런 결말을 예상했다고 한다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미국과 북한 모두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존재하기에 협상 자체를 깨는 것이 양국에게는 손해였기 때문이다. 협상이 파기되는 것까지는 예상 못 했지만, 고작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제재 해제와 비핵화를 교환할 가능성 또한 낮았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비핵화와 관련해 크게 진전된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만 북·미 정상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만찬을 즐긴 모습이 공개되면서 ‘스몰딜’을 넘어 ‘미들딜’까지 가능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많았다. 미국이 제재를 일정 부분 완화해주고, 북한은 적어도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수준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협상 결렬로 그런 전망 역시 근거가 부족했음이 드러났다.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대북제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매우 완강하기 때문이었다.


      어설픈 합의보다 합의하지 않는 게 낫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쇄와 대북제재 완화가 교환되면 남북관계 증진에 도움이 되리란 예상이 많았다. 이러한 논리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었다. 하나는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북한보다 더 급할 테니 진전된 협상 결과를 얻고자 일정 부분 대북제재를 완화해주고 영변 핵시설과 관련해 북한 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한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3월 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뮬러 특검의 결과 발표가 예고돼 있었고, 하노이에서 북·미 회담이 열리는 시점에도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청문회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만큼 그 타개책으로 북한과 협상을 이용하려 들 가능성이 높으며, 성과를 과시하고자 북한과 어떠한 형태로든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당시의 합의문보다 더 진전된 내용에 합의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미국 정치 상황이 실제로는 예상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합의안을 갖고서도 북한이 더는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고 있으며, 미군 유해 송환은 자신의 업적이라고 내세웠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해 진정한 핵 폐기를 합의하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사찰 검증이 실제로 이뤄져 북한의 미사일 등이 해체되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이는 미국 정치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서 합의 정도로는 미국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기 힘들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비판적 시각을 가진 워싱턴 안보 서클의 전문가 그룹과 언론,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할 개연성이 높았다. 또한 북한 인권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김 위원장과 협상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보좌진은 어설픈 합의보다 합의 무산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은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단기적 성과를 위해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보다 낮은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제재를 완화 혹은 해제해줄 수 있다는 논리는 허구임이 증명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이성을 감안하더라도 대북제재에 대한 미국 시스템의 인식은 매우 견고해 보인다. 8개월 만에 개시된 북한과 실무협상 과정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과 비핵화에 대한 공통된 인식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힌 것은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의 최종적인 핵 폐기가 북한이 내세우는 비핵화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즉 비핵화에 대한 인식 차이로 미국은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에 대한 확실한 동의 없이 중간 단계에서 제재를 풀어주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즉 최종 목표를 언제 어떻게 달성할지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만 그 과정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고, 그에 맞춰 미국이 단계적으로 제재를 완화해줄 수 있는 것이다. 비핵화의 최종 목표에 대한 확실한 합의가 없다는 점을 미국 측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특히 비핵화 초기에 대북제재를 완화 혹은 해제한다고 하면 그 수준은 매우 미약할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북한이 기존에 만들어놓은 핵무기와 핵물질 등을 완전히 폐기할 때 가장 큰 폭의 제재 해제를 하겠다는 부분을 남겨놓아야 북한을 그 지점까지 끌고 갈 수 있는데, 북한은 비핵화 협상 초반에 영변 핵시설 폐쇄와 큰 규모의 제재 해제의 교환을 원했기에 두 국가의 접점이 생기기 어려웠던 것이다.




      미국, 先비핵화 입장 확고   

    2월 28일 북·미 확대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차량이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2월 28일 북·미 확대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차량이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필자는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 비핵화에 관해 북·미 간 입장차가 큰 만큼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보다 오히려 협상 틀을 구축하는 데 두 정상이 합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무리 톱다운 방식으로 일이 진행된다 해도 지난한 협상 과정이 필요하다. 북한과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8개월간 실무협상을 열지 못하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통해 타개책을 만들어내자는 데 북한이 동의하면서 실무협상이 재개됐다. 촉박한 일정에 쫓겨 시작된 실무협상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불확실성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협상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결렬되면서 오히려 협상 재개 자체가 어려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대북제재 해제는 없다는 점을 천명했기에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한 북·미 협상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북·미 협상이 재개되려면 북한이 제재 완화나 해제가 없는 옵션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당분간 한반도의 대화 분위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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