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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2018년은 제2의 나크바”

‘세계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 행사 르포

“2018년은 제2의 나크바”

11월 29일 카타르 도하인스티튜트 강당에서 열린 ‘세계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 기념행사에서 학생들이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이스라엘 점령 전 팔레스타인인의 일상을 닮은 사진전도 함께 열렸다(왼쪽).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11월 29일 카타르 도하인스티튜트 강당에서 열린 ‘세계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 기념행사에서 학생들이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이스라엘 점령 전 팔레스타인인의 일상을 닮은 사진전도 함께 열렸다(왼쪽).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11월 29일은 아랍권 국가에선 특별한 날이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스라엘 편을 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을 잊지 못한다. 국제사회가 이날을 ‘세계 팔레스타인 연대 날’로 부르는 것도 늦은 미안함의 표시다. 

그날 오후 3시(현지시각) 카타르의 인문·사회과학계열 대학원대학인 도하인스티튜트(DI) 강당에서 관련 기념행사가 열렸다. 100여 명의 학생은 대형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팔레스타인’을 외쳤다. 강당 밖 홀에는 이스라엘 점령 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사진과 저항 메시지가 담긴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남학생 중에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체크무늬가 들어간 ‘케피예’(keffiyeh · 중동 남성들의 전통 두건)를 두른 이가 많았다. 검은 체크무늬 케피예는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남성이 많이 두른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분쟁이 시작된 후로 팔레스타인인 저항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홀 한쪽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전통 디저트로 중동 전역에서 인기인 ‘쿠나파’(kunafah·치즈가 들어 있는 단맛의 바짝 구운 빵)를 맛볼 수 있었다. 작은 축제 같은 느낌이었다. 


한편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10월 7일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인에게 총격을 가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AP=뉴시스]

한편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10월 7일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인에게 총격을 가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AP=뉴시스]

하지만 강당 안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팔레스타인 국가가 연주될 때 행사 참석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스라엘 점령 전 모습을 담은 ‘팔레스타인의 어제’란 영상이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We Will Return…)’란 문구와 함께 상영됐다. ‘지식, 글, 말을 이용해 (이스라엘에) 대항하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팔레스타인을 잊지 말자’는 내용을 담은 시 낭송도 이어졌다. 

“매년 열리는 행사다. 하지만 올해는 좀 더 특별하게 여겨진다. 알다시피 많은 일이 있지 않았나?”(행사 참석 학생) 

다수의 팔레스타인인이 올해를 안 좋은 일이 많았던 ‘아픔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일부는 ‘또 다른 나크바가 터진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재앙이란 뜻의 나크바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된 다음 날인 1948년 5월 15일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된 사건을 지칭한다.


아랍 맹주의 외면

실제로 올해는 팔레스타인 처지에서 대형 악재로 여길 만한 역사적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 특히 이 중에는 팔레스타인과 연대 혹은 이·팔 분쟁의 중재를 위한 노력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많다. 가장 최근 사건은 이스라엘이나 서방이 아닌, 같은 아랍권 국가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했다. 바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성지순례 방문 비자 발급 제한 조치다. 그동안 다른 국가로 귀화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난민은 자신이 거주 중인 나라에서 발급한 여행증명서나 임시여권(요르단의 경우)을 토대로 사우디 입국 비자를 받아왔다. 

그러나 9월부터 사우디는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메카(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성지)를 방문하려는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특정국가의 정식 여권’ 소지자가 아닌 이에게는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이른바 ‘팔레스타인 난민 지위’로 요르단과 레바논 같은 국가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의 메카 방문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요르단타임스’와 ‘알자지라’에 따르면 최근 요르단과 레바논 여행업계에선 이미 팔레스타인인의 경우 여행증명서나 임시여권으로 메카를 방문할 수 없다고 통보하고 있다는 것. 

이를 두고 중동 안팎에서는 ‘이란의 지역 패권 움직임’을 견제하고 나선 사우디가 팔레스타인과 연대보다 미국, 이스라엘(두 나라 모두 이란을 주적으로 여김)과 협력을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로 삼았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본격적인 권력기반 다지기에 나선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bS) 사우디 왕세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위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압박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재국의 이스라엘 편애

한 중동 전문가는 “MbS로서는 이란 견제, 자말 카슈끄지(사우디 정부에 비판적이던 언론인) 살해 사건, 예멘 내전 해결책 마련 등을 놓고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사우디가 이슬람교의 대표 성지 관할국가로서 종교 활동에까지 정치와 외교 논리를 대입하는 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10월 아랍에미리트(UAE)가 자국에서 열린 국제유도대회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국가 연주를 허용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오만을 방문해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팔레스타인 처지에서는 섭섭한 일이다. 아랍권 국가들이 보이는 또 다른 친이스라엘 행보이기 때문이다. 

이·팔 분쟁이 시작된 이후 적어도 겉으로는 ‘중재자’ 역할을 보여온 미국의 확실한 이스라엘 편들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인 5월 14일 이뤄진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과 8월 31일 발표된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이 바로 그것. 

이슬람(팔레스타인)과 유대교(이스라엘)에서 모두 성지(聖地)로 여기는 예루살렘은 유엔이 국제사회 관할지역으로 규정한 곳이다. 이·팔 분쟁의 확산을 막고, 중립적 자세로 해결책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수도라고 강조해도 세계 주요국이 자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운영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예루살렘으로 미국대사관을 이전한 것은 이·팔 분쟁의 중재자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땅’이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UNRWA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 결정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교육 · 의료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게 목표다. 현재 UNRWA는 요르단 220만 명, 레바논 45만 명, 시리아 44만 명, 가자지구 130만 명, 요르단강 서안지구 81만 명 등 5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교육 · 의료 혜택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UNRWA에 대한 전체 지원금에서 지난해 미국의 부담금은 3억6000만 달러(약 4000억 원)로 약 30%에 해당했는데, 이를 전액 삭감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 지위 불인정’ 조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난민 지위로는 교육 ·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거주 중인 나라에 귀화하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팔레스타인인의 반감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8.12.07 1167호 (p48~49)

  • 도하 =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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