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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북한의 잘못된 체제 보장 요구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은 핵 포기가 아닌 독재 때문

북한의 잘못된 체제 보장 요구

리비아 국민이 반카다피 시위를 하고 있다(위).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리비아 국민이 반카다피 시위를 하고 있다(위).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엘도라도 캐니언(Eldorado Canyon)’은 미국이 1986년 4월 15일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제거하기 위한 공습 작전명이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4월 5일 리비아 출신 테러리스트가 미군들이 즐겨 찾던 서독 서베를린의 한 디스코텍을 폭파해 미군 병사 1명 등 3명이 사망하고 230명(미군 50명 포함)이 부상하자 카다피에 대한 보복을 결정했다. 미국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 관저를 비롯해 군사기지 등을 공습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카다피는 특수요원들을 시켜 1988년 12월 21일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을 날아가던 미국 팬암 여객기 103편을 폭파해 탑승자 259명 전원(미국인 189명 포함)과 지역 주민 11명을 숨지게 했다. 미국은 이때부터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발동했고 카다피를 ‘공적(公敵) 1호’에 올렸다. 그러자 카다피는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 누구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않은 채 미니 밴에 텐트를 싣고 유랑생활을 했으며 핵개발에 적극 나섰다.


‘중동의 미친 개’가 ‘평화의 사도’로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을 리비아 모델에 따라 비핵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5월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볼턴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부의 고위 관리들이 ‘선(先) 핵포기, 후(後) 보상’을 말하면서 리비아 방식의 핵폐기를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며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의 운명을 강요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제1부상의 주장은 리비아가 핵을 포기하는 바람에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만큼, 미국이 김정은 정권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 핵을 폐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2011년에도 로버트 킹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에게 “지금 리비아가 어떻게 됐는지 보라”면서 “우리는 절대 리비아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카다피 정권이 북한의 주장처럼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붕괴됐을까. 이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카다피는 대위인 27세 때(1969)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 이드리스를 쫓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혼합한 ‘아랍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론에 따라 ‘인민권력’이라는 뜻의 ‘자마히리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국가를 철권통치해왔다.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자신에 대한 반대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리비아에는 헌법과 정당이 없었고, 카다피의 말은 법이나 마찬가지였다. 4인 이상 집회는 금지됐으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없었다. 카다피는 또 옛 소련과 우호관계를 맺었고, 반미·반유대인 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카다피는 중동 등 각국 테러단체에 자금 지원까지 해왔으며, 직접 테러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레이건 전 대통령은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불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 가운데 한 명인 카다피가 핵개발을 추진한 것도 바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1991년 옛 소련의 해체로 냉전체제가 붕괴되자 카다피는 더는 기댈 곳이 없어졌다. 92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까지 리비아 제재에 나섰고, 미국은 96년 이란·리비아 제재 법을 제정하는 등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했다. 이에 따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가운데 7위 산유국이던 리비아는 원유 수출을 봉쇄당하면서 경제가 극도로 악화됐다. 결국 카다피는 98년 경제제재를 해제하고자 영국과 협상을 통해 테러범들에 대한 재판과 희생자 보상, 외교관계 재개에 합의했다. 그러면서도 카다피는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운영하는 핵 암시장을 통해 거액을 주고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심분리기와 핵무기 설계도 등을 입수해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했다. 

이후 카다피는 미국이 2003년 3월 핵을 개발하려 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하자 다음은 자신이 타깃이 될 것을 우려했다. 이에 카다피는 영국의 중재로 미국과 비밀협상 끝에 2003년 12월 19일 핵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리비아는 2004년 1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3단계에 걸쳐 필요한 조치들을 진행했다. 1단계로 핵 프로그램 관련 문서와 설계 정보 등을 미국으로 보냈다. 2단계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원심분리기 등 주요 장비의 해체 및 반출이 이뤄졌다. 3단계는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였다. 리비아의 이런 단계적 조치에 맞춰 미국의 보상도 뒤따랐다. 미국은 2004년 4월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했고, 6월 연락사무소를 설치했으며, 9월 경제제재를 공식 해제했다. 미국은 2006년 5월 수교 후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했고, 6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리비아를 삭제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 1973’ 만장일치 통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왼쪽). 한 미국 연방요원이 리비아가 넘긴 원심분리기 부품들을 감시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왼쪽). 한 미국 연방요원이 리비아가 넘긴 원심분리기 부품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후 카다피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의 사도’로 활동했다. 테러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완전히 끊었고 중동 평화를 중재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아프리카연합(AU) 의장에 선출되면서 빈국 원조도 했다. 또 리비아는 유엔 안보리의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됐다. 하지만 카다피는 국내적으로는 자신의 둘째 아들인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에게 권력을 물려주고자 독재체제와 철권통치를 더욱 강화했다. 

그러던 중 2011년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 독재국가들에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졌고 리비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카다피는 반정부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200여 명이 사망하자 국민은 무장 봉기했고 내전이 발생했다. 반군은 카다피의 막강한 친위부대의 공격에 3만여 명이 희생되는 등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러자 유엔 안보리는 2011년 3월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승인하는 결의 1973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시 유엔 안보리의 결정은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R2P)이라는 새로운 국제규범에 따른 것이었다. R2P는 특정 국가가 반인도 범죄, 집단살해,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며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 2006년 유엔 안보리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확립됐다. 이에 따라 미국 등 다국적군은 반군을 지원하고자 정부군을 대대적으로 공습했다. 반군은 8월 22일 트리폴리를 점령한 데 이어 10월 20일 고향인 시르테에 은신하고 있던 카다피를 찾아내 사살했다. 

카다피의 최후를 잘 아는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경우 주민의 반란 또는 봉기에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17일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면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지만 거부하면 리비아처럼 초토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핵을 포기하면 군사옵션으로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지, 앞으로 북한 내부에서 체제 위기가 발생해도 김정은을 보호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핵 포기에 따른 체제 보장과 인권은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의 운명은 핵 보유 여부가 아니라, 독재체제에서 벗어나 주민을 위한 개혁·개방을 추진하느냐 여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주간동아 2018.05.30 1140호 (p58~59)

  •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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