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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저팬 패싱 막기 위한 아베 日 총리의 안간힘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고리로 북·일 정상회담 추진

저팬 패싱 막기 위한 아베 日 총리의 안간힘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으로 납치될 당시 모습(왼쪽)과 북한이 공개한 메구미의 성인 모습. [사진 제공·요코타 메구미 가족]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으로 납치될 당시 모습(왼쪽)과 북한이 공개한 메구미의 성인 모습. [사진 제공·요코타 메구미 가족]

요코타 메구미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메구미는 1977년 11월 15일 만 13세 나이에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시 한 중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다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다. 일본 경찰은 실종된 메구미를 찾고자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메구미의 납북 사실은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공작원 안명진 씨가 1996년 “납치된 일본 소녀를 북한에서 봤다”고 증언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북·일 정상회담에서 메구미 납치 사실을 밝히며 사망했다고 말했다.


아베 요청에 트럼프 화답

북한 측 주장에 따르면 메구미가 1986년 8월 한국인 납북자 김철준과 결혼해 87년 9월 딸 김은경을 낳았지만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다 94년 4월 13일 자살했다는 것이다. 김철준은 78년 전북 선유도에서 납치된 김영남(납북 당시 16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북한은 2004년 11월 일본에 메구미의 유골을 전달했지만 유전자(DNA) 검사 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북한은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입장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17, 18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가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북·미 정상회담 때 제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번 약속은 아베 총리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열심히 노력해 납북자들이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압박해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즈카 시게오 ‘피랍일본인가족회’ 회장과 메구미의 남동생 요코타 데쓰야 등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그동안 메구미를 비롯해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가운데 일부가 살아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지난해 11월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메구미가 살아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일본인으로 위장했던 김현희는 1987년 11월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를 폭파했고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 등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김현희는 “메구미가 북한 공작원은 물론, 김 위원장 일가의 일본어 교사도 담당했다”며 “공개되면 북한이 곤란해지는 비밀을 알고 있어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희는 84년 6월 동료 공작원과 함께 메구미를 한 차례 만난 데 이어, 대한항공 테러 임무에 투입되기 전 메구미의 출산 소식도 들었다고 밝혔다. 김현희는 91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서 자신의 ‘일본인화 교육’을 담당한 이은혜가 일본에서 납치된 다구치 야에코라는 여성이라고 밝히면서 일본인 납치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놓고 대립해오던 북한과 일본은 2002년 9월 17일 사상 첫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비롯해 일제 식민지배 배상 문제와 수교 등도 논의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는 이른바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일본인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공식 사과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납치한 13명 가운데 사망한 8명을 제외하고 생존해 있는 5명을 일본으로 송환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은 모두 17명이라면서 사망한 8명과 송환된 5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에 대해서도 귀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북한은 납치된 사람은 13명이라고 맞서왔다. 양측은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다 2014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 전면 재조사에 합의했다. 당시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하기로 했고, 일본은 이에 맞춰 대북제재 일부를 해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통보하겠다던 북한이 약속을 어긴 채 4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에 일본은 대북제재 조치를 내리면서 양측 협상은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일본은 그동안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 측에 지속적으로 납치 문제 해결을 요구해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 적어도 일본인 100명이 북한에 납치됐을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적시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 이유는 북한 공작원 및 군사훈련 학교에서 일본어 교육, 전문기술 확보 등을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식민지배 배상금 최고 200억 달러 전망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아베 신조 관방장관 등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 가운데)과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일본 총리실]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아베 신조 관방장관 등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 가운데)과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일본 총리실]

아베 총리가 그동안 납치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여온 것은 그의 정치적 입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방북했을 때 관방장관으로 동행했던 아베는 북한이 일시 귀국 형태로 돌려보낸 납치 피해자 5명의 영구 귀국을 주장해 관철했다. 이후 그는 정치적으로 스타가 됐고, 2006년 52세 나이로 전후 최연소 총리가 됐다. 이에 아베 총리는 북한 얘기만 나오면 항상 납치 문제 해결을 강조해왔다. 그는 이번에도 납치 문제를 고리로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사학 스캔들과 재무성 문서 조작 의혹에 따른 최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속셈이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북·일 정상회담을 할 경우 한반도 정세에서 일본이 소외될 수 있는 이른바 ‘저팬 패싱’을 막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대가로 체제 안전을 보장받는다면 그다음 단계인 경제건설을 위해선 일본으로부터 자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은 일본과 수교할 경우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를 바란다. 실제로 평양선언을 보면 제2항에 ‘국교정상화 이후 쌍방은 무상자금 협력, 저금리 장기차관 제공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북·일 국교가 정상화될 경우 일본의 대북 배상금 규모는 100억~200억 달러(약 21조5000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이런 막대한 자금을 얻어내려면 북·일 정상회담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납치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올바른 길을 걷는다면 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밝힌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정치권은 물론, 국민도 납치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생존해 있기를 바란다. 아베 총리가 평양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납치 피해자들과 전용기를 타고 도쿄로 돌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8.05.02 1136호 (p56~57)

  •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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