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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화제

프랑스 최고 여성 이론가가 불가리아 비밀첩자였다고?

소설 ‘언어의 7번째 기능’이 진짜 현실을 바꿔놓은 걸까

프랑스 최고 여성 이론가가 불가리아 비밀첩자였다고?

쥘리아 크리스테바. [위키피디아]

쥘리아 크리스테바. [위키피디아]

3월 국내 번역 출간된 소설 ‘언어의 7번째 기능’엔 프랑스 지성계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2010년 공쿠르 신인상을 수상한 로랑 비네(46)가 지난해 발표한 이 두 번째 장편소설은 1980년 2월 25일 세탁물 운반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로 입원치료를 받다 3월 26일 숨진 롤랑 바르트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그럼 20세기 프랑스가 배출한 최고 문학평론가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미셸 푸코, 자크 라캉, 질 들뢰즈, 루이 알튀세르, 자크 데리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놈 촘스키, 폴 드 만, 로만 야콥슨, 움베르트 에코…. 20세기 인문학을 쥐락펴락한 인사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진범은 바르트와 같은 문학평론가로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을 접목한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소설가인 필리프 솔레르스 부부로 그려진다. 앞에 거명된 인사들보다 지명도는 살짝 덜하지만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지닌 문화이론가들이다.


크리스테바가 롤랑 바르트를 죽였다?

[영림카디널]

[영림카디널]

‘허세와 위압, 속물적인 것, 그리고 무엇이든 바보스럽고 어릿광대 같은 짓은 솔레르스의 몫이었다. 반면에 슬라브적인 것, 독을 품은, 차가운, 체계적인 일, 드러나지 않는 세계의 비밀, 거물급 인사를 움직이는 작업, 전략, 제도적인 것, 출세를 위한 관료적인 절차들은 크리스테바의 몫이었다. 둘은 정치적으로 이미 전투 기계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주었고, 다음 세기에 찬양받는 인물로 남을 만한 덕목을 차근차근 쌓아갔다. …사악한 듀오, 정치커플.’ 

‘언어의 7번째 기능’에 등장하는 이 부부에 대한 묘사는 이렇게 싸늘하다. 소설에선 바르트가 언어의 7번째 기능에 대한 메모를 입수하자 크리스테바 부부가 이를 탈취하기 위해 헝가리 정보요원의 도움을 받아 바르트를 암살했다는 상상력을 펼친다. 언어학 창시자 가운데 한 명인 로만 야콥슨은 언어의 기능을 6가지로 분류하며 ‘마술적이고 주술적인 기능’을 살짝 언급하고 넘어간다. 언어로 뱉어내면 현실에서 실현되게 만드는 힘을 말한다. 물론 실재하는 게 아니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힘인데 소설은 이를 언어의 7번째 기능으로 명명하면서 그에 대한 추적담을 펼친다. 

소설에서 크리스테바 부부는 이렇게 얻은 힘을 믿고 ‘로고스 클럽’이라는 유럽 지식인들의 비밀결사대 수장인 에코에게 도전장을 던지지만 패배한다. 그들이 빼돌린 메모가 가짜였기 때문이다. 진짜를 빼돌린 것은 당시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로, 교통사고가 나기 전 바르트와 점심식사를 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미테랑은 그 힘을 이용해 1981년 본선에서 현직 대통령이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을 꺾고 대통령이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프랑스 지성사를 장식하는 실존 인물이고 사건도 대부분 사실이다. 1980년 알튀세르가 정신착란으로 아내 엘렌느를 교살한 것도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다만 철학가 데리다가 1980년 미국을 방문해 언어의 마술적 기능을 빼돌리려다 맹견에게 물려 죽는다는 설정은 허구다. 실제 데리다는 2004년 숨졌다. 이를 포함해 언어의 마술적 기능에 관한 내용은 모두 허구다. 크리스테바 부부가 바르트를 죽였다는 설정도 당연히 허구다. 

작가 비네는 언어학, 기호학, 정신분석학이 융합하던 1980년 프랑스 지식사회를 배경으로 난해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이론가들을 공깃돌처럼 갖고 노는 지적유희를 펼친다. 그야말로 철학자를 우상으로 섬기지 말고 철학적 과녁을 향한 화살로 소비하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가르침을 문학적으로 실천한 셈이다. 그래서 바르트와 푸코는 동성애자, 사르트르와 들뢰즈는 거만한 에고이스트, 알튀세르는 모범생 성향의 강박증 환자, 앙리 레비는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 난 애송이로 그려진다. 그중 최악의 배역이 크리스테바 부부에게 주어진 셈이다.


암호명 ‘사비나’로 불린 여자 스파이?

2015년 프랑스 아르테TV에 나란히 출연한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필리프 솔레르스 부부. [아르테TV 캡처]

2015년 프랑스 아르테TV에 나란히 출연한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필리프 솔레르스 부부. [아르테TV 캡처]

왜 그랬을까. 1960년 창간된 전위적 문학잡지 ‘텔켈’을 중심으로 활동한 진보적 지식인 그룹을 텔켈그룹이라 부른다. 바르트, 데리다, 에코와 더불어 이 그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크리스테바와 솔레르스다. 모두 문학 전공자로서 언어학의 일부를 이루는 기호학의 귀재인 데다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내는 데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만 크리스테바 부부는 프랑스를 제외한 지역에선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데다 독불장군 이미지가 강했다. 더욱이 크리스테바는 1966년 프랑스로 유학 온 불가리아 출신 이방인으로 자신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경계인임을 자처한 ‘사상적 회색인’이라는 점 또한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소설이 진짜 언어의 7번째 기능을 깨워버린 것일까. 소설적 상상력의 산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는 3월 28일(현지시각) 크리스테바(77)가 냉전시대 불가리아 공산정권을 위해 암약한 스파이였다고 발표했다. 그와 함께 불가리아 국가보위부(Darjavna Sigournost·DS) 제1국 소속 정보요원으로 암호명 ‘사비나’로 활동했다는 인사 파일도 함께 공개했다. DS는 옛 소련의 KGB(국가보안위원회)에 해당하는 해외 첩보기관이다. 이에 따르면 파리에서 암약하던 DS 요원 블라디미르 코스토프가 포섭한 크리스테바가 1971~78년 프랑스 정계와 지식인 사회의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크리스테바는 “뻔뻔한 거짓말”이자 “조작된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버지가 1989년 불가리아 공산정권이 무너지기 전 생체실험을 받고 사실상 처형됐으며 이후 자신이 불가리아 공산정권을 맹비판해왔음을 상기하며 분개했다. 코스토프에 대해선 60년대 불가리아 신문사에서 일할 당시 아는 사이였으며, 74년 또는 75년 무렵 프랑스에서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밖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그는 “조사위는 그것을 문서로만 볼 뿐 왜 조작으로 보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해당 문서를 보면 크리스테바가 제공한 정보에는 국가보위부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1972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해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텔켈그룹 지식인들이 반소노선으로 돌아서고 73년엔 아예 소련과 대립했던 모택동주의자로 전향하면서 크리스테바의 역할이 무용지물에 가깝다는 평가도 등장한다. 그래도 78년까지 일말의 희망을 품고 계속 접선 시도가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다. 

크리스테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불가리아 정보요원들이 같은 국적의 크리스테바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첩보’로 부풀려 보고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크리스테바의 첩보가 문서 형식이 아니라 철저히 구두보고로만 이뤄졌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2007년 비밀해제 이후 비밀문서를 추적해온 불가리아 언론인들은 “일부 내용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가 첩보원 등록카드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면서 크리스테바가 어떤 식으로든 불가리아 정보당국과 연계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크리스테바가 1968년 혁명을 전후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으며 1974년 텔켈그룹 지식인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할 정도로 모택동사상에 경도됐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사실 21세기 세계 지성계에서 크리스테바의 위상을 아는 사람들에겐 이런 논란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크리스테바는 오늘날 생존 여성 이론가 가운데 최고 반열의 이론가로 손꼽힌다. 

프랑스 정부는 크리스테바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해 2015년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도 2005년 그를 20세기 위대한 사상가 100인에 꼽았다.


현존하는 최고 여성 이론가

크리스테바는 바르트의 기호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접목해 기호분석론(semanalysis)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 이론을 구축했다. 그는 라캉의 상상계(어머니와 애착관계에서 생성된 자기애 가득한 유아적 세계), 상징계(사회화를 위해 아버지의 법과 질서를 내면화한 세계), 실재계(상징계로 포착할 수 없는 무의식적 진실의 세계)를 상징계와 기호계로 재편했다. 여기서 기호계는 상징계로 포착될 수 없는 비언어적 감성과 진실이 포함된 체계를 의미한다. 

이를 토대로 그는 이성적이고 규범적인 로고스를 추구하는 상징계와 감성적 파토스, 윤리적 에토스를 망라해 언어 외적인 의미를 창출하는 동시에 로고스의 규범성을 전복하는 기호계의 경계에 선 독특한 이론을 구축했다. 특히 사람들이 언어적 실천 과정에서 상징계와 기호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주체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말하는 주체’ 이론은 21세기 들어 새롭게 각광받는 무수한 주체 이론에 많은 영감을 부여했다. 

한편으로 크리스테바는 프로이트와 라캉으로 대표되는 남근주의적 정신분석 이론을 전복한 여성주의적 정신분석학의 대모다. 특히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축되는 상징계에 맞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전의 어머니 몸과 연결된 원초적 체험이 기호계의 중추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저서 ‘티마이오스’에서 우주를 담는 그릇이자 우주를 낳는 생산자로서 저장소와 양성소의 의미를 겸한 ‘코라’라는 개념을 설파했다. 크리스테바는 이를 자신의 기호계와 접목해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할 ‘코라’가 기호적 의미 생산의 원초적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과 남성을 대결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라는 용어의 사용을 거부한다. 여성성과 모성은 남성성이 결여하고 있는 사랑의 윤리를 담보한다. 따라서 남녀의 차이는 부정되고 거부돼야 할 차별이 아니라 긍정돼야 할 차이이며, 섹스(생물학적 성)와 젠더(사회문화적 성)의 구분은 해체돼야 할 이분법이라고 비판한다. 이 때문에 전통적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주디스 버틀러와 함께 프랑스가 배출한 최고 페미니즘 이론가로 평가받는다. 

크리스테바는 1969년 발표한 ‘세미오티케 : 기호분석론’을 시작으로 40년간 30여 권의 이론서와 소설, 에세이를 발표했다. ‘시적 언어의 혁명’(1974), ‘공포의 권력’(1980), ‘검은 태양 : 우울증과 멜랑콜리’(1987)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주간동아 2018.04.11 1133호 (p50~52)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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