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2017.09.20

북한

전술핵 거부하면 우리 지갑 열어야 한다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7-09-15 15: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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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철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최근 ‘한반도 비핵화 원칙 위배’와 ‘북한 핵 폐기 명분 약화’ ‘동북아 핵무장 확산’ 등을 이유로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배치 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던 송영무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청와대 측 의견을 수용했다.
     
    원자력발전(원전)도 하지 않겠다고 탈핵 선언을 한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전술핵 재배치를 수용하기 어려웠을 테다. 그러나 “북한 탈핵은 못 시키면서 남한만 탈핵한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 “BMD(탄도미사일방어체제)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우리는 벌거숭이로 있으란 말이냐” 등 반론도 만만찮다. 국민 68%가 전술핵 재배치를 바란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어 논란은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중거리핵전력협정

    그런데 우리가 전술핵을 요구하면 미국이 “당장 대령하겠습니다”라며 한반도에 배치하거나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에 따라 유사시 한국에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 이가 적잖다. 청와대가 재배치를 반대한 데도 이런 믿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핵무기 사정부터 살펴보자. 미사일은 비행 특성에 따라 ‘탄도’와 ‘순항’으로 분류되고, 탄도미사일은 사거리에 따라 ICBM(대륙간), IRBM(중거리), MRBM(준중거리), SRBM(단거리)으로 나뉜다. 미국은 SRBM을 어네스트 존(이하 최대 사거리·38km)→서전트(110km)→랜스(130km)→나이키 허큘리스(140km)→에이타킴스(ATACMS·550km)로 발전시켜왔다.

    냉전 시기 이 미사일들은 모두 핵탄두를 탑재했다. 지대공 나이키 허큘리스를 이은 것이 PAC-3로 대표되는 패트리엇이고, 지대지 나이키 허큘리스를 본뜬 것이 한국 백곰과 현무-1이다.



    냉전 시기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는 SRBM과 함께 옛 소련 모스크바를 때릴 수 있는 IRBM을 배치했다. 한국에는 북한만 억제하는 SRBM을 배치했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이 ‘탄도와 순항을 막론하고 IRBM 사거리 이하를 비행하는 모든 핵미사일은 없앤다’는 중거리핵전력협정(INF)을 맺으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은 IRBM과 MRBM은 없애고 SRBM은 재래식 탄두만 달아 사용하게 했다.

    사거리 2500km인 그리폰 순항미사일도 폐기하고, 미 해군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미 공군의 공중 순항미사일은 재래식 탄두만 달아 사용했다.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전쟁에 돌입한다면 필요한 것은 SRBM이다. 북한이 ICBM급 화성-14형에 핵탄두를 붙이려고 하니 SRBM에는 벌써 핵탄두를 달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탄도·순항미사일을 막론하고 ICBM을 제외한 모든 미사일에서 핵탄두를 떼어냈다.

    미국은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SRBM인 ATACMS를 한국에 배치해놓았다. 한국 현무 역시 재래식 탄두만 달고 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ICBM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보유한 ICBM에는 대형 ‘트라이던트’(SLBM인데 사거리가 ICBM급이라 ICBM으로 분류)와 소형 ‘미니트맨’이 있다. 그런데 트라이던트는 위력이 너무 크고 전략원잠에서 발사되기 때문에 주변국이 긴장하므로 한반도 전쟁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트라이던트를 사용하면 러시아와 중국도 피해를 입기에 세계는 핵전쟁에 돌입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미사일을 쏠 때면 미니트맨-3를 시험발사했다. 미니트맨의 위력도 대단해 이 미사일이 터지면 북한은 전멸할 뿐 아니라, 심각하게 오염돼 상당 기간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 된다. 이것이 미국 측 고민이다. INF 발효 후 미국은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핵폭탄만 보유하게 됐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한 뒤로는 핵폭탄도 상당수 폐기해 지금은 B-61만 갖고 있다.

    B-61은 원폭과 수폭 탄두를 모두 달 수 있다. 최대 무게는 350kg에 불과하기에 이론상으로는 FA-50 같은 소형전투기에도 실을 수 있다. 그러나 핵폭탄은 임계(臨界)를 넘어서야 폭발하므로, 특별히 제작된 항공기에서만 투하가 가능하다. 태평양에 주둔한 미 공군기 가운데 B-61을 투하할 수 있는 것은 B-1B 폭격기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괌에 있는 B-1B는 한반도에 도착하는 데 2시간 걸린다. 북한은 핵탄두를 단 SRBM을 바로 쏠 수 있는데, 우리는 2시간 이상 기다려야 북한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태풍이 불면 B-1B는 이륙도 못 한다. 실제로 9월 12일 B-1B는 괌 날씨가 나빠 예정된 한반도 출격을 하지 못했다.



    고고도 무인기 도입 검토

    B-1B가 작전하려면 북한 심장부까지 날아가야 한다. 거대한 B-1B를 안전하게 북한 심장부에 침투시키려면 북한 공군기와 방공망을 먼저 초토화해야 한다. 이는 제공권을 완벽하게 확보한다는 뜻으로, 한미연합군이 승세를 굳힌 것이니 굳이 핵폭탄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이 제공한다는 확장억제와 청와대가 재배치를 거부한 전술핵이 유사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도 B-61이 한반도에 재배치된다면 우리는 불안감을 떨치고 북한은 공포심을 가져 핵 균형을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미 북한이 깬 비핵화를 이유로 그 기회마저 걷어차버렸다.

    미국은 전술핵 재배치를 거부한 문재인 정부를 전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다. 전술핵 재배치 거부 후 안보 불안이 커지면 한국은 방어자산 도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북방 방어를 위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급 미사일, 북한 움직임을 감시하고 요격하기 위한 고고도 무인기 등의 도입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이 무기들은 미국 · 이스라엘제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11월 한국은 사드급 레이더를 추가 도입하는 국제 입찰을 벌인다.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이 미국 돈으로 하는 것이다. 이를 거부했기에 한국은 지갑을 열어 방어자산을 도입해야 할 처지가 될 공산이 커졌다. 그렇게 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을 것이기에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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