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

2017.03.01

사회

‘소 잃기 전 외양간 고친다’

부패척결추진단, 지난해 국책사업 2000억 원 예산 낭비 막아…“처벌보다 예방이 목적”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2-27 14: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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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원생이 1500명인 대형유치원 3곳을 운영하는 A씨는 유치원 내에 어학원이 있는 것처럼 꾸민 뒤 유치원 돈 20억 원을 어학원 통장에 넣어 가로챘다. 또 유치원 돈으로 자신의 외제차 3대의 자동차보험금을 내는가 하면, 학부모 선물용이라며 5800만 원 상당의 도자기 등을 사기도 했다.

    국무조정실 산하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부패척결추진단·단장 오균 국무조정실 제1차장)은 2월 21일 이 같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불법자금유용 실태를 적발해 발표했다. 부패척결추진단은 8개의 특별·광역시와 경기도에 있는 유치원·어린이집 95곳을 점검한 결과 유치원 54곳과 어린이집 37곳에서 205억 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혐의를 밝혀냈다.

    박순철 부패척결추진단 부단장은 “유치원은 교육부에서 관리하고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라 그동안 관리가 어려웠는데, 부패척결추진단이 국무조정실 산하에 있는 덕에 부처의 협조를 얻어 이 같은 성과를 올렸다”며 “앞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예·결산서를 전부 공시해 회계의 투명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과급 받기위한 분식회계 적발

    부패척결추진단은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 행정기관의 부패를 막고자 국무조정실 산하에 만든 조직이다.



    부패척결추진단은 지난 한 해 국책 건설사업을 감사 및 사후 조치해 2004억 원의 국고 낭비를 막았다. 각 건설 사업을 담당하는 기관과 시공사의 비리, 비위를 적발해 잘못 쓰인 국가 예산을 환수하고 부실 및 과다 설계를 고치게 해 일군 성과다.

    부패척결추진단이 지난해 적발한 비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한국농어촌공사의 사업비 집행 분식회계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완공되지 않은 일부 공사를 허위 준공 처리한 뒤 공사비를 집행하거나 곧 집행할 것처럼 회계장부에 기재했다. 원래 공사가 진척된 만큼 돈을 줘야 하는데, 이렇게 처리하면 사업비 집행률이 높아진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이 같은 방식으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 가운데 ‘사업비 집행률’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그에 따라 2015~2016년 2년간 성과급 254억 원을 챙겼다.

    감사원의 회계 감사로도 파악되지 않던 한국농어촌공사의 허위 회계는 부패척결추진단의 현장 검증으로 드러났다. 분식회계가 먼저 밝혀진 곳은 새만금 농생명용지 조성공사였다. 한국농어촌공사는 2015년 말 기준으로 준공 정산금 644억 원 중 446억 원에 해당하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허위 준공 처리한 뒤 이 금액을 곧 지급할 돈으로 회계장부에 기록했다.

    허위 준공 처리라는 약점을 안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은 시공사의 잘못에도 손을 쓰지 못했다. 현장 검증 결과 새만금사업단은 시공사가 설계도와 다르게 공사하고 있는데도 설계 변경 절차 없이 계속 진행하게 했다. 결국 잘못된 시공으로 공사비 15억9700만 원이 과다 지급됐다. 게다가 새만금사업단은 시공사가 공사 완료일까지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데 따른 배상액 4억여 원을 시공사에 부과하지 않았다.

    부패척결추진단은 이후 한국농어촌공사 전체 사업단 및 지사 112곳에서 2014~2015년 시행한 전체 사업에 대해 추가 검증을 실시했다. 검증 결과 총 9637억 원(2014년 4057억 원, 2015년 5580억 원)의 공사가 허위 준공 처리된 사실이 밝혀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분식회계 및 과다 기성금 지급 등과 관련된 한국농어촌공사 직원 81명을 징계 처분했다. 박 부단장은 “부패척결추진단에는 각 부처의 전문가가 파견돼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이 가능하다”며 “회계장부상 오류가 없어 보이는 사안도 각 분야 전문가의 현장 검증을 거쳐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과 협업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고속철도 사업 검증에서도 빛을 발했다. 수서-평택 간 고속철도 터널 공사를 맡은 시공사가 공단 측에 거짓 보고를 해 약 370억 원의 공사대금을 더 타낸 사실을 밝혀낸 것. 부당 집행된 공사대금은 전액 환수됐다. 원주-강릉 간 고속철도 건설 현장에서는 뇌물수수 사건도 있었다. 2015년 5월 공사 구간 중 일부에서 지반 조사가 잘못돼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초 지반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설계업체가 비용을 부담해 보완 설계를 해야 했지만 한국철도시설공단 강원본부는 다른 설계업체에 4억3600만 원을 지급하며 설계용역을 줬다. 그 대가로 공사 임직원 일부가 설계업체로부터 뇌물 수천만 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관련자 4명이 징계를 받고 부당 집행된 설계용역대금을 환수 조치했다.



    부처 전문가들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

    부패척결추진단은 건설감리 용역 통합발주 제도를 활성화해 매년 680억 원가량의 국가 예산을 절약하는 방안도 제시할 예정이다. 건설기술 진흥법(건진법)상 각 공사는 다른 건설회사를 통해 감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건진법 시행령 제55조 3항에 따르면 인접한 지역의 비슷한 공사의 경우 건설감리 용역을 통합발주할 수 있다. 한 회사에서 건설감리 용역을 맡으면 자연히 감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든다.

    그러나 최근 4년간 전국 국책사업 건설현장의 통합발주 실적은 전체 1440건 중 139건(9.8%)에 불과했다. 최종무 부패척결추진단 총괄기획팀장은 “업무 담당자가 관련 규정 자체를 모르거나 통합발주의 이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국 국책사업 건설현장의 건설감리 용역 발주계획 335건 중 통합발주가 가능한 것은 105건이다. 최 팀장은 “개별발주를 통합발주로 전환할 경우 최근 4년 대비 향후 매년 평균 200억 원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올해 하반기까지 통합발주가 가능한 지역은 반드시 통합발주를 하도록 건진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패척결추진단은 이미 끝난 사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감사나 수사와 달리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사업을 관리·감독하기 때문에 사전에 문제를 해결해 국비를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부단장은 “부패척결추진단은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는 감사 업무를 하고, 이 업무를 바탕으로 현재 진행되는 공사 사업의 문제점을 해결한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책도 수립한다. 단순히 잘못을 지적하는 감사가 아니기에 피감기관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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