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4

2017.02.08

사회

음주 차량 대리운전, 경찰이 왜?들

집까지 데려다주는 게 관행?…음주 적발 차량 견인 비용 운전자가 물게 해야

  • 김유림 기자 yamye@edaily.co.kr

    입력2017-02-03 16: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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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서울 이태원파출소 진모(26) 순경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차량을 직접 운전해 경찰서로 이동하다 사고를 당해 순직했다. 유흥가가 몰려 있는 이태원파출소는 야간 근무 시 그다음 날 아침까지 취객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경찰관 사이에서 업무 스트레스가 심한 곳으로 꼽힌다. 전날 야간 근무를 서 피로가 누적돼 있던 진 순경은 이날 오전 6시 용산구 녹사평역 앞에 음주운전 차량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A씨를 검거했다.

    음주 측정에서 면허취소 수치가 나온 A씨는 채혈검사를 요구했고, 진 순경은 A씨의 차량을 직접 운전해 인근 병원으로 가 채혈검사를 진행했다. 이후 A씨가 진 순경에게 차를 직접 맡아달라고 한 뒤 귀가하자 진 순경은 음주 적발 차량을 몰고 경찰서로 돌아오던 중 사고를 당했다. 당시 진 순경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음주 적발 차량을 아무 곳에 주차할 수도, 강제 견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경찰관은 “나였어도 진 순경처럼 음주 적발 차량을 대신 몰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리운전은 경찰 업무 아냐”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음주 적발 차량 ‘대리운전’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관행이 고착화된 이유는 음주 적발 차량에 대한 명확한 처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상 경찰공무원은 음주운전자의 차량 운전을 금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음주 적발 차량이 길을 막고 있을 경우 교통정체를 해소하는 것 역시 경찰 업무이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일차적으로는 가족에게 연락해 차량을 견인하라고 통보하지만 막무가내로 버티는 운전자가 많다. 대리운전기사나 견인차량 부르는 것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운전자가 거부하면 추진하기 어렵다. 결국 경찰이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밀린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운전자와 승강이를 하기도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한 신입 순경은 “새벽 음주 단속 때는 대리운전기사도 많지 않고, 지인과 연락도 잘 닿지 않는다. 운전자가 단속에 걸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라 견인을 허락할 일도 만무하다. 사건을 빨리 처리하려면 경찰이 직접 운전해 차량을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경찰이 직접 음주 적발 차량을 운전해 운전자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방이나 시골지역에서는 이러한 행태가 간간이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화성에서 근무했던 한 경찰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택시비가 없다, 대리운전기사를 부르는 것도 싫다’ 등의 이유를 대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면 시골 인심에 그냥 데려다주곤 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음주 적발 차량을 운전하다 경미한 사고가 일어나 오히려 손해배상을 청구 당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서울경찰청 소속 한 경찰관은 “고급 외제차를 운전한 적이 있는데, 작동법이 특이해 순간 당황했다. 그래서 나이 있는 경찰관은 음주 적발 차량에는 손도 안 대려고 한다. 어린 순경들이 음주 적발 차량의 이동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은 “경찰관이 음주 적발 차량을 운전하는 건 상당히 잘못된 업무 처리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여지가 많다. 운전이란 것 자체가 늘 우발적 사고를 동반하는 만큼 경찰이 음주 적발 차량을 운전하는 동안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 책임까지 경찰관이 져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국회에서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지난해 11월 30일 음주 단속 시 적발된 차량을 견인업체 등이 견인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비용을 음주운전자로 하여금 부담하게 하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일선 경찰관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다 보니 음주운전 단속 경찰관이 ‘대리운전기사’ 노릇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주 적발 차량 이동 가이드라인 필요

    이번 법안은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거나 적발된 후 음주 재측정을 요구하는 경우 해당 차량을 견인할 수 있게 하고 그 비용을 원칙적으로 운전자가 부담해 현장 경찰관들이 불필요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재측정 시 음주 단속 미달 수치(혈중알코올농도 0.05% 미만)가 나올 경우에는 경찰서가 견인 비용을 부담해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김 의원은 “음주운전을 원천적으로 못 하게 하는 것은 물론, 그 후의 일에 대해서도 음주운전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법안이 음주 단속 현장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미 해외에서는 음주 적발 차량에 대한 조치가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경찰은 차량을 즉시 강제 견인하고, 운전자는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차를 찾아갈 수 있다. 캐나다 역시 차량 강제 견인 후 24시간 동안 운전자의 면허를 정지시킨다. 차량 견인 비용도 운전자가 전액 지급하게끔 돼 있다. 이 모두 경찰의 신속한 행정 업무 처리와 음주운전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라 볼 수 있다.

    장신중 센터장은 “음주운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단속뿐 아니라 그 후속 조치도 적법한 절차 아래 경찰이 강력하게 집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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