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AI 신약 개발이 미래다 ②

AI로 글로벌 제약사 따라잡는다

인공지능(AI)신약개발지원센터 추진단 출범…국내 제약사에 좋은 기회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8-12-31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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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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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 1만여 개의 후보물질 가운데 전 임상·임상시험에 들어갈 물질을 찾고, 시험 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시판하기까지 평균 15년이 걸린다. 신약 개발은 시간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인내력이 필요한 사업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제약사는 신약 개발에 적게는 매출의 20%에서 많게는 60%까지 투자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글로벌 제약사 로슈, 노바티스 등은 신약 개발에 각각 약 85억 달러(약 9조5600억 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국내 제약사들은 매출액뿐 아니라 신약 개발에 쏟아붓는 투자비용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2015년 KDB산업은행에서 내놓은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 추진 현황 및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약품이 매출액의 20%인 1억4500만 달러(약 1630억 원)로 가장 많은 연구개발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종근당 13.7%(7100만 달러), 대웅제약 12.3%(8500만 달러), 녹십자 8.7%(8000만 달러) 순이었다. 반면 매출 1위인 유한양행은 투자가 저조한 편이었는데 매출액의 5.7%에 해당하는 5500만 달러(약 620억 원)를 신약 연구개발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연구비 등 신약 개발 한계 많은 한국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 투자비용은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하면 1%를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한 해 수십조 원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 개발 투자비용과 국내 제약사의 그것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매출액 대비 신약 개발 투자비용을 놓고 보면 글로벌 제약사와 비슷한 수준인 10~20%를 유지하는 제약사도 있기 때문이다. 또 막대한 비용을 신약 개발에 쏟아붓는다고 꼭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 2016년부터 글로벌 제약사들 사이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신약 개발에 도입하는 추세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화이자·테바-IBM, 얀센-베네볼런트AI, 머크·MSD-아톰와이즈, 사노피·GSK-엑스사이언티아, 산텐-투사 등 세계 유수 제약사는 인공지능 기술력을 확보한 정보기술(IT) 벤처기업, 스타트업 등과 협력해 신약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 개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8년 3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 추진단을 공식 출범했다. 당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측은 “국내 제약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며 “산업계 수요에 맞는 최적의 신약 개발 인공지능 기술 도입을 위해 기반을 닦겠다”고 밝혔다. 추진단 태스크포스팀에는 한미약품, 한독, CJ헬스케어, JW중외제약, 대웅제약, 동아ST, 보령제약, 삼진제약, 안국약품, 유한양행, 일양약품, 크리스탈지노믹스, 신풍제약, 종근당, 녹십자, 일동제약, LG화학 등 국내 17개 제약사가 1차로, 하나제약, 현대약품, 휴온스, 동화약품, 제일약품, Sk케미칼, 대원제약 등 7개 제약사가 2차로 참여했다.


    이와 함께 국가 차원의 지원도 따를 전망이다. 2018년 11월 보건복지부는 국회 국정감사 서면질의 답변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 개발을 지원할 센터 설립에 공감하며 구축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인공지능 신약 개발 플랫폼 구축사업에 예산 75억 원이 반영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2021년까지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국내 제약사, 인공지능 도입 활발

    2018년 5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글로벌의약 산업협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정부와 산·학·연·병 관계자들이 신약 개발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사진 제공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2018년 5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글로벌의약 산업협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정부와 산·학·연·병 관계자들이 신약 개발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사진 제공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국내 제약사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어느 정도 발맞추고 있을까. 이동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 추진단장은 “이미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 주요 제약사는 사내에 별도의 인공지능팀을 신설해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또 혁신형 제약기업 크리스탈지노믹스는 국내 인공지능 제공 기업 스탠다임과 협력으로 도출해낸 항암물질의 동물실험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유수 제약사들은 일찌감치 인공지능 기반의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한미약품은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도입해왔다. 2013년부터 클라우드 기반의 임상시험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국 IT기업 메디데이터와 협력해 신약 개발 방식을 혁신해온 것(표 참조). 그 결과 2018년 8월 한미약품은 임상시험에 ‘엣지 센트럴 모니터링’ ‘레이브 이코아/이프로’ 등 메디데이터의 주요 플랫폼을 도입했다. 

    ‘엣지 센트럴 모니터링’ 시스템은 임상시험을 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관리하는 플랫폼으로,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 임상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오류나 특이점 등도 식별할 수 있다. 이런 플랫폼을 활용하면 임상시험 도중 문제가 발생할 때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며 신약 개발 속도도 높일 수 있다. 

    더불어 한미약품은 메디데이터의 모바일 환자 결과 보고 솔루션 ‘레이브 이코아/이프로’도 도입했다. 이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수집한 환자 결과 보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존 임상시험 참가자는 설문지에 임상시험 관련 정보를 적었지만, 레이브 이코아/이프로 도입 이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모바일 기기에 입력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한미약품은 임상시험 참가자의 정확한 자료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데이터 품질을 높여 신약 개발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CJ헬스케어도 2017년부터 신약 개발에 인공지능을 도입했다. 2017년 12월 유전체 분석 기업 신테카바이오와 인공지능 모델을 활용한 면역항암제 개발을 위해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또 임상시험 환자를 찾는 데도 인공지능을 활용했다. CJ헬스케어는 적응증 시험 과정에서 위궤양에 감염된 소화성궤양 피험자를 모집했는데, 해당 적응증은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3차 의료기관의 방문율이 매우 낮아 대상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별·적응증별 환자 수 및 분포를 확인하고 전략적으로 피험자 모집을 진행한 바 있다. 

    JW중외제약도 2018년 5월 유전체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플랫폼을 활용한 공동연구를 위해 신테카바이오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협업을 통해 JW중외제약은 신테카바이오가 보유한 개인 유전체 맵 플랫폼의 약물 반응성 예측 기술을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 또 신경계 질환 치료를 위한 재생의학 분야의 연구, 현재 판매 중인 의약품의 적응증 확장 연구에도 신테카바이오 플랫폼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나아가 체내 영양 공급과 면역 증진 관련 종합영양수액제, 신개념의 진단시약 개발 등 정밀의료 영역까지 협업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자체 플랫폼으로 발굴해 기술 이전 성공하기도

    2018년 3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서울 방배동 협회 오픈이노베이션 플라자에서 인공지능(AI)신약개발 지원센터 추진단 개소식을 열었다. [사진 제공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2018년 3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서울 방배동 협회 오픈이노베이션 플라자에서 인공지능(AI)신약개발 지원센터 추진단 개소식을 열었다. [사진 제공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JW중외제약은 자체적으로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JW중외제약 산하 C&C신약연구소에서 300여 종의 암세포 유전 정보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클로버(CLOVER)’를 신약 개발에 적용했고, 그 결과 9종의 자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또 이 가운데 3종을 임상 또는 전 임상시험 단계로 키웠다. 

    이러한 노력 끝에 JW중외제약은 2018년 8월 덴마크 제약회사 레오파마와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JW1601’의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JW1601은 혁신 신약 후보물질로, 가려움증과 염증을 동시에 억제하는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다. JW1601은 C&C신약연구소가 클로버 가상 검색 시스템을 통해 기존 H4 수용체에 작용하는 화합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구조의 유효 화합물을 발굴하고, 타깃 단백질의 저해활성과 선택성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도출됐다. 특히 먹는 형태의 치료제라는 점이 돋보인다. 현재 판매되는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는 바르는 연고제 또는 주사제 형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향후 환자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인공지능 기술의 도입으로 연구개발 속도가 빨라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정재 JW중외제약 홍보팀장은 “현재 자체 보유 중인 신약 후보물질이 많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다면 임상시험 과정에서 피험자를 타깃팅해 효율성을 높이는 등 신약 개발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자체 보유하고 있는 클로버는 신약 개발뿐 아니라 적응증을 확장할 때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8년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연구기관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협약을 맺고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을 결합해 신약을 개발하기로 했다.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면 기존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질병에 맞는 후보물질을 찾아내 기간이 단축되고 비용도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혜 UN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의료, 약물, 유전체 등 각종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신약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일동제약도 향후 인공지능 기술 도입을 계획 중이다. 전준수 일동제약 홍보팀 과장은 “인공지능 기술을 신약 개발에 도입하는 것을 아직 회사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신약 후보물질 탐색과 검증에 인공지능 플랫폼을 활용함으로써 자원 및 시간 절감을 꾀하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 전문 업체뿐 아니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과 협력해 관련 기술을 고도화하고 적용 분야를 확대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수한 IT 인프라 토대로 도약 가능”

    배영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문위원 겸 메디리타 대표이사는 “2017년부터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도해 인공지능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 제약사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어떤 개념인지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고, 앞서 나가는 제약사들은 발 빠르게 도입해 2018년부터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추세다. 한미약품, CJ헬스케어와 더불어 SK케미칼도 신테카바이오와 제휴 중이고, 유한양행은 개방형 혁신 방식으로 인공지능 벤처기업에 투자하면서 신형 후보물질을 발굴하기도 했다. 이 속도라면 2019년부터는 국내 제약사들도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해외 글로벌 제약사들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성과는 뒤지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이동호 단장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 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다. 우리나라는 IT 인프라가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고, 의약품 개발용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기업들도 있다. 여기에 더해 공개된 양질의 보건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면 국내 제약사들에게는 규모나 기술력 면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큰 격차가 나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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