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6

2018.09.19

사회

추석 이후 집값, 꺾일까

9·13 고강도 부동산대책에도 무덤덤… 공급 대책 없이 근본 해결 안 돼

  • 입력2018-09-18 11:07:3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한승희 국세청장이 참석했다. [뉴스1]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한승희 국세청장이 참석했다. [뉴스1]

    “지난해 정권교체 직후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 집값이 오른다’는 낭설이 퍼졌을 때 서울 강남 부자들의 터무니없는 바람 정도로 생각한 내가 바보였어요. 노무현 정부 때 집값 상승을 경험한 분들의 뼈 있는 충고였네요.”
    - 30대 맞벌이 직장인 A씨 

    “집값 거품이라고, 연말이면 빠질 거라고, 하반기 금리가 인상되면 매물 쏟아진다고 지난해 말부터 기다렸거든요. 이제 지쳤어요. 이대로라면 이번 정부 내내 오를 것 같아요.”
    - 30대 주부 B씨 

    “서울 강남에 집 한 채 있어 부럽다는 소리 많이 듣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적당한 때 팔고 넓은 평형으로 옮겨가고 싶은데 다른 집은 더 올라 기회를 놓친 것 같아요. 퇴직 전에 갈아탈 수 없을까 봐 두려워요.”
    - 40대 외벌이 직장인 C씨

    요즘은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부동산 안부부터 묻는다. 집값 상승세가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까지 들불처럼 번져 동네마다 얼마씩 올랐는지,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은 얼마에 팔렸는지 비교하기 바쁘다. 기자의 주변인들도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각자의 고충을 토로한다. 

    집값 상승 열기는 7월부터 달아올라 9월에 정점을 찍었다. 여름철은 본래 부동산시장 비수기로 각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가 한산하기 마련이지만 이례적으로 매수 문의가 빗발쳤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직원은 “10년간 중개했지만 거래 하나 성사시키기가 이렇게 힘든 경우는 올해가 처음이다. 9월 들어 팔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매수 희망자도 매번 전화해봐야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 전화가 잦아들었다. 관망세가 이어지는 분위기라 9월 첫째 주 여름휴가를 다녀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한 달 동안 뜨겁게 달아오른 강남 부동산시장은 9·13 부동산대책 발표 전후로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 탓도 있지만 호가가 무섭게 치솟아 매수 희망자가 쉽게 따라붙지 못하는 형국이다. 주택거래 정보 사이트 부동산114에 따르면 9월 1주 차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54% 올라 지난주 0.57% 대비 소폭 둔화됐다.

    지치는 실수요자 vs 버티는 집주인

    부동산시장에 서울 아파트 불패론이 불거지면서 9월 초까지 국지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했다. 사진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잠실주공5단지. [동아DB]

    부동산시장에 서울 아파트 불패론이 불거지면서 9월 초까지 국지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했다. 사진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잠실주공5단지. [동아DB]

    그러나 비강남과 수도권은 여전히 상승세가 유지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노원구(1.00%)와 성북구(0.95%) 등 저평가된 강북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상승폭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또 신도시 0.28%, 경기와 인천은 각각 0.13%로 한 주 전과 비슷한 오름세를 보였다. 특히 광교신도시, 분당, 과천, 광명, 의왕 등 서울 접근성이 우수한 지역의 쏠림 현상이 있었다. 

    강남 3구의 집값 상승세가 둔화된 양상이지만 그렇다고 매수세가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운데 대장주로 꼽히는 잠실주공5단지는 관망세가 감지됐다. 단지 상가 내 B공인중개사사무소 직원은 “9월 초순 상가 전체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거래 20건을 성사시켰다. 9월 중순에 이르러 매수 문의가 약간 잦아들긴 했지만 집주인들은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다. 전용면적 76㎡가 19억~19억4000만 원, 81㎡가 20억~21억 원에 나와 있다. 여기서 1000만 원도 낮추려 하지 않는다. 사실 무작정 따라붙던 매수 희망자들은 가격이 너무 높다고 여기면서 정부 대책 발표 이후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조합이 정부 대책은 물론, 재건축초과이익환수금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호가가 쉽게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꼭짓점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매수세가 잠잠해지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주택 가격은 2014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49개월 연속 올라 최장 상승 기록을 세웠다. 앞선 기록은 2005년 2월부터 2008년 9월까지 44개월 연속 상승한 것이다. ‘떨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지금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내려봐야 1억 원 정도겠죠”

    물론 집주인도, 매수 대기자도, 공인중개사도 모두 “지금 집값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 분위기가 급격하게 반전될 것 같지 않다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9월 초 서초구 반포동에 전용면적 59㎡ 신축 아파트를 17억5000만 원에 매입했다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상투를 잡은 느낌이다. 한 달 전부터 집을 알아봤는데 거래가 한 건 되면 다음 거래는 5000만 원 오른 가격에 시작하니 불안감이 더했다. 한 푼 두 푼 저축해 집을 장만할 생각으로 전세를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샀다. 지금 부동산시장이 미친 것 같긴 하지만 집주인들은 정부 대책에 내성이 생긴 듯하다. 외환위기,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굵직한 경제위기가 오지 않는 이상 집을 가진 사람들이 가격을 낮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집이 없는 사람도 의견은 비슷했다. 2년 전 집값 상승기에 자녀 교육을 위해 살던 집을 팔고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한 40대 워킹맘 최모 씨는 “전세를 살면서 급매물이 나오면 잡으려는 계획으로 일단 대치동에 정착했다. 그런데 2년 사이 이렇게 집값이 오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2년 전 팔았던 집도 꽤 올라 남편과 싸우기도 했다. 정부가 대책을 계속 내놓기는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돈이 급한 사람이 없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집값이 떨어지는 날이 오긴 오겠지만 그래봐야 한 1억 원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1년 사이 수억 원 오른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각 지역 대장주 아파트들은 한 번 오르면 조정은 있을지언정 폭락하는 양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대책이 발표될 때도 일부분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대세 상승기에는 빠르게 회복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살펴보면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의 경우 전용면적 84㎡가 2017년 8·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15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올해 4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직전인 3월 18억4500만 원으로 최고가를 찍었다. 이후 7월에는 17억 원으로 소폭 조정됐지만 가장 최근 거래에서 18억9000만 원으로 3월 최고가를 넘어섰다(표 참조). 

    강남 3구의 유명 대단지 아파트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등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고, 강북에서도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종로구 홍파동 경희궁자이도 가격 추이가 비슷했다. 특히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의 경우 전용면적 84㎡가 지난해 8월 9억9000만 원에 거래됐던 것이 1년 뒤인 올해 8월 14억1000만 원에 팔려 약 42% 상승률을 기록했다.

    분위기 쉽게 수그러들지 않아

    서울 시내 신축 대단지 아파트는 품귀 현상을 빚어 몸값이 껑충 뛰는 형국이다. 사진은 마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경. [동아DB]

    서울 시내 신축 대단지 아파트는 품귀 현상을 빚어 몸값이 껑충 뛰는 형국이다. 사진은 마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경. [동아DB]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추석 이후 연말 집값 향방이다. 9·13 부동산대책이 서울 집값 상승세를 안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정부가 고강도 정책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수요 억제책만으로는 반전이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면서 내년 이후 조정이 올 수도 있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기도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매도자 우위 시장 분위기가 강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또 계절적으로 설과 추석 전에는 시장이 잠잠하다 명절이 지나면 분수령이 됐다. 이 때문에 추석 이후에도 상승 추세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올해가 마지막 전고점이라고 본다. 집값이 5~6년 오르면 10년은 내리는 주기를 보여왔다. 집값이 6년 이상 오른 적이 없는데 이번이라고 예외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내년부터는 시장 기류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예측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 자체가 왜곡돼 있어 과거 경험을 토대로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정부 정책과 관계없이 서울은 집값 상승세가 어느 정도 더 갈 것으로 보인다. 시기를 특정할 수 없지만, 조정을 받을 때는 세게 받을 수 있다. 자고 나면 1억 원씩 오르는 시장이 정상은 아니지 않는가. 부동산뿐 아니라 시장 경제에서 조정 없이 상승만 계속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조정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석 이후 서울과 경기도의 집값 향배가 갈릴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었다. 이미윤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정부 정책은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실수요자의 심리를 돌리기에 역부족이다. 공급 계획도 발표 이후 10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대부분 전세 계약금을 올려줄 것이냐,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집을 살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매수 희망자들은 서울이 아니더라도 경기도에 집을 마련하고자 1기, 2기 신도시나 기존 택지지구로 몰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9·13 부동산대책으로 주택 보유자는 세금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 세종, 부산, 대구 등 지방의 주거 선호 지역에 집을 가진 사람에게도 종합부동산세를 더 매기는 방안이 포함돼 부담이 커졌다. 특히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던 혜택도 줄어들 예정이라 다주택자들이 집을 더 사기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임대사업자대출은 투기과열지구에서도 LTV(주택담보대출비율) 40% 적용을 받지 않아 집값의 80%까지 대출이 이뤄졌다. 그러나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비슷한 수준으로 바뀔 예정이다.

    “공급에 총력 기울여야 할 때”

    다주택자는 물론이고 1주택 보유자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현재 1주택자는 부동산을 3년 이상 갖고 있다 9억 원 이상에 파는 경우 보유 기간에 따라 양도세를 깎아주는 장기특별공제제도가 시행 중이다. 기존에는 10년 이상 보유한 1주택자의 경우 80%까지 특별공제가 됐지만 앞으로는 15년 이상 보유해야 80%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서울과 수도권 요지에 신축 아파트를 갈구하는 실수요자의 목마름을 해소해줄 주택 공급안은 미뤄져 실망을 안겼다.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주택 공급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고 원장은 “정부가 매년 필요한 공급 물량을 수요가 있는 곳에 적기에 공급한다는 신호가 나오면 당장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도 심리적 안정 효과는 줄 수 있다. 수요억제책은 단기간 투기심리는 잠재울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수요 대기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만약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을 한다고 했다 하지 않을 경우 수요 대기자들은 화가 날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장기 주택 공급 로드맵을 내놓지 않으면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정부가 추가로 주택 공급안을 내놓는다면 실수요자의 눈에도 매력적인 지역에 공급해야 부동산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연구원도 “다주택자의 추가 구매 의욕은 떨어뜨릴 수 있겠지만, 무주택 실수요자의 경우 어떻게 보면 지금이라도 사야겠다는 심리를 바로 접기 어려울 수 있다. 당장 집이 필요한 무주택자는 서울이 아닌 경기로 선회해 내 집 마련에 나설 수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공공택지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실수요자 처지에서는 교통망이 잘 갖춰진 기존 신도시에 다시금 몰릴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지역에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을 하겠다는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