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여성계의 이유 있는 착각

오랫동안 몰카 범죄 피해 받던 여성층 불안 이해해야

  • 입력2018-08-21 1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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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몰카에 찍히고 나도 모르는 새 그 사진이나 영상이 웹하드에 돌아다니는데, 남자가 사진 한 번 찍히고 인터넷에 퍼지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싶다.’ 

    대학생 김모(25·여) 씨가 홍대 ‘몰카’ 사건 피의자 처벌에 관해 남긴 의견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이다. 

    경찰이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워마드 운영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고, 홍대 몰카 사건 피의자에게 징역 10개월이 선고되자 여성계의 반발이 크다. 여성이 피해자일 때와 달리 수사기관이 더 열심히 수사하고, 사법부는 과도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것. 하지만 영장 발부나 징역형 선고가 여성계의 주장처럼 편파적 처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비슷한 범죄 수사 사례 또는 판례 등을 확인한 결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이어지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몰카 범죄가 줄어들고는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는 여성이 주를 이룬다. 내가 모르는 사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데 이것이 공유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아직도 단체톡방이나 웹하드에 불법촬영 음란물을 공유해 처벌받는 사람이 많다.

    ‘오조오억 번’은 아니지만 아직도 몰카는 많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16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이용 등 촬영’ 적발 건수는 5170건이다. 예년(7615건)에 비해서는 32%가량 감소한 것. 2014년(6635건)에 비해서도 적다. 하지만 2012년 이전에는 해당 범죄 발생 건수가 2000건에도 미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몰카 범죄는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2016년 성 풍속범죄 발생 건수는 총 1만2719건. 이 중 40%가량이 몰카 범죄였던 셈이다. 



    게다가 피의자가 남성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2016년 몰카 범죄 중 피의자가 검거된 사건은 총 4891건. 이 중 피의자가 남성인 경우는 4340건으로 전체의 88.7%에 달했다. 반면 여성 피의자는 117명으로 전체의 2%에 불과했다. 직장인 오모(27·여) 씨는 “치마를 입고 나간 날 지하철역 계단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남성이 눈에 띄면 괜히 신경 쓰인다. ‘몰카 범죄’가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최근 남성이 몰카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박성중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남성이 피해자인 몰카 범죄 발생 건수는 2016년 160건이었다. 2012년 53건에서 3배 이상 늘어난 것. 전체 몰카 범죄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남성 대상 몰카 범죄는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몰카 범죄의 3%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은 발생 건수 자체가 적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2011년부터 5년간 온라인 성폭력 판결을 분석한 ‘2017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는 99%에 달했다. 분석 대상 판결 중 피해자 성별이 남성인 사건은 19건. 이 중 8건은 남녀가 모두 피해자인 사건으로 모텔 등에서 성관계 장면이 촬영된 경우였다. 남성만 피해자인 경우는 11건에 불과했다. 

    만약 몰래 찍힌 사진이 유포된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가 지난해 5~12월 8개월간 신고 상담 유형을 집계한 결과 상담 206건 중 100건(48.5%)이 성적 촬영물을 동의 없이 유포한 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민감한 부위나 성적 행위가 아닌, 얼굴만 불법촬영한 것이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음란물에 애먼 사람의 얼굴을 합성해 유포하는 등의 범죄도 성행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연예인 등 유명인이 합성 음란물의 피해자였지만, 최근에는 일반인도 합성 음란물의 피해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양대 한 남학생이 지인의 사진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한 사실이 알려졌다. 가해자가 휴대전화를 분실하면서 모아둔 사진이 들통난 것. 가해자는 같은 대학 여학우, 주변 지인 등 최소 16명의 사진을 ‘지인 능욕’ 트위터 계정에 의뢰해 합성한 사진을 휴대전화에 소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인 능욕’은 의뢰를 받아 주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주는 트위터 계정이다. 3월 한양대는 해당 학생을 퇴학 처분했다. 

    합성 음란물의 경우 처벌 수위가 낮다. 성폭력이 아니라 ‘음화 제조 및 반포’ 혐의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합성 음란물을 제작, 유포해도 징역 1년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63차례에 거쳐 여자동창 18명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SNS에 게시한 학생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수는 훨씬 많으나 홍대 몰카 사건 피의자와 비슷한 수준의 처벌을 받은 것.

    많이 잡는 것보다 근절이 중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설치된 불법촬영 금지 경고판. [동아DB]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설치된 불법촬영 금지 경고판. [동아DB]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3단독 신영희 판사는 “피해자들을 성적 유희 대상으로 전락시킨 사진과 글이 SNS를 통해 널리 퍼지면서 피해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모욕감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불법촬영 음란물이나 합성 음란물을 삭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해도 문제는 남는다. 온라인상에 퍼져버린 뒤에는 언제 어디서 다시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 한사성에 접수된 피해 사례에 따르면 과거 남자친구와 성관계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유포된 피해자가 있었다. 당시 남자친구와 함께 삭제업체 등에 의뢰해 동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그렇게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3년이 지나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다시 발견했다. 동영상 파일 제목으로 검색하자 이미 여러 웹하드에 해당 영상이 퍼져 있었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단순히 유포자만 처벌해서는 불법촬영물의 재유포를 막기 어렵다. 웹하드 등 불법촬영 음란물로 금전적 이득을 보는 모든 사업자에 대한 직접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5월 29일부터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의 유통 차단을 위한 100일 집중 점검을 시행 중이다. 7월 31일 중간보고 결과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유통 사례는 총 4584건이었다. 105개 웹하드 사업자 중 51개 사업자가 적발됐고, 상습 유포자의 아이디(ID) 297개를 확인했다. 이 ID들이 유통한 사례만 2848건이다. 방통위는 사업자들에게는 해당 게시물을 지우게 하고 상습 유포자의 경우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외에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5000여 건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이번 중간보고 결과 발표는 방통위를 비롯한 관련 기관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의 유통을 뿌리 뽑는 데 확고한 의지를 갖고 대응 중이며, 타인의 인권을 침해해 부당한 이득을 취한 행위는 반드시 처벌받게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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