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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건설공제조합 공동기획

공사현장서 떨어진 각목, 안전모·머리뼈 뚫고 박혀

사지(死地)서 돌아온 심재동 씨…“지팡이 짚고라도 걸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공사현장서 떨어진 각목, 안전모·머리뼈 뚫고 박혀

아버지의 눈물, 그리고 아들


강원 강릉시 한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아들 심석 군.

강원 강릉시 한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아들 심석 군.

경기 구리시의 어느 요양병원.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병상에 한 남자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다. 3년 전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현장에서 큰 사고를 당한 심재동(61) 씨는 아직까지 거동조차 힘겹다. 

“조금 걸을 수만 있어도 좋겠어요. 지팡이를 짚고라도…. 이 상태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요.” 

강원 강릉시에 살던 심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차로 40분가량 떨어진 평창군 진부면 한 빌라 건설현장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벽돌을 나르던 그는 자신에게 끔찍한 사고가 닥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치킨집과 우유 유통업 등 이런저런 사업에 실패한 후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 벌써 15년째였다. 

하지만 사고는 벼락같이 찾아왔다. 건물 2층으로 벽돌을 나르고 건물 밖으로 나오다 밑에 떨어져 있던 각목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또다시 하늘에서 큼지막한 각목이 떨어졌다. 지붕 작업을 마친 작업자가 건물 아래 작업자가 없는 줄 알고 남은 자재를 던진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각목이 넘어진 심씨가 쓰고 있던 안전모와 머리뼈까지 뚫고 뇌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찰나에 벌어진 참사였다. 

곧바로 강릉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심씨는 두 차례나 대수술을 받은 끝에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심씨의 산업재해(산재) 처리 및 보상을 도운 허정권 J공인노무사사무소 부장의 이야기다. 

“처음엔 곧 죽을 거라고 했죠. 한 달가량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깨어났는데 사지마비로 전혀 움직이지 못했어요. 혼자 돌아눕지도 못하고, 밥도 다 흘리면서 먹을 정도였어요. 정신착란 증세까지 심해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난리를 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다행히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점차 호전돼 1년 전부터는 대화도 조금씩 가능하고 침상에서 도움을 받아 내려올 정도가 됐죠. 이 정도도 기적이에요.”


“많이 가르치지 못한 게 제일 가슴 아파요”

심씨를 기적적으로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오래전 아내와 이혼한 심씨에게는 아들만 한 명 있다. 현재 강릉 한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심석(21) 군이 그의 유일한 피붙이다. 사고 당시 지방에 있던 아들은 1년이 다 지나도록 아무것도 모르다 심씨의 사고 소식을 담은 한 통의 편지를 받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충북) 제천에서 미용일을 배우고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편지가 한 통 왔어요. 아버지가 평소 편지 쓰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아빠가 몸도 안 좋은데 보러오지도 않고 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만 하느냐’는 식으로 편지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가 많았어요. 처음에는 그런 편지일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글씨체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뜯어보니까 ‘아버지가 일하다 크게 다쳐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편지를 쓰는데 한번 보러올 수 있으면 와달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일 그만두고 병원으로 갔죠.” 

공부를 열심히 하기를 바랐던 심씨와 인라인, 태권도 등 스포츠를 좋아하던 아들. 두 사람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심씨에 대한 아들의 반항이 심해진 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태권도대회에 출전해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다리뼈에 금이 가는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이후 점점 더 가출을 많이 했다. 

전국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던 아들은 춘천에서 한 미용실 원장을 우연히 만나 미용사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곧 그만두고 경북 김천과 충북 제천을 오가며 여러 미용 기술을 배웠다. 피부, 가발, 두피마사지 등 관련 자격증도 여러 개 땄다. 

하지만 아들이 공부를 놓지 않기를 바랐던 심씨는 마뜩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는 더욱 소원해졌다. 아버지가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지방에 있던 아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뒤늦게 병상을 찾아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본 아들은 덜컥 겁부터 났다. 

“아버지가 예전부터 교통사고가 나거나 크게 다쳐도 금방 나으셨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금방 나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날 며칠 계속 보니까 진짜 의사선생님 말대로 그렇게(못 일어나시게) 될 것 같아 솔직히 겁나기도 했어요.”


산재보험 병원비도 모자라…‘건설공제’ 큰 힘

[노홍석 PD]

[노홍석 PD]

병상에 누워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심씨의 마음은 더욱 힘들고 아팠다. 무엇보다 많이 가르치지 못한 것, 성공할 수 있도록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것이 제일 가슴에 걸렸다. 

“힘든 공부를 자꾸 하라고 제가 너무 그랬던 것 같아요. 여건을 제대로 만들어주지도 않고 요구만 지나치게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많이 후회됩니다.” 

그런 후회와 미안함이 살아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던 심씨를 일어나게 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심씨는 3년여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왼쪽 팔과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병상을 벗어날 수도 없어 2급 중증장애 등급 판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하는 산재 보상금으로는 병원비를 해결하기도 빠듯한 실정. 다행스러운 건 심씨를 고용한 건설업체가 건설공제보험에 가입돼 별도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보상 절차를 도와준 허정권 부장의 설명이다. 

“산재보험은 한도가 정해진 유한보상이에요. 크게 다쳐도 최소한의 장애보험금밖에는 받을 수 없죠. 그런데 그 건설회사는 다행히 건설공제보험을 들었어요. 산재가 종결되면 건설공제조합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거든요. 거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 치료받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아들 전셋집도 마련해줄 수 있었죠.”

심씨와 아들은 이제 작지만 소중한 희망과 꿈을 키워간다. 심씨는 그동안 아들에게 다 주지 못한 사랑을 대를 내려서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제가 요즘 책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손자, 손녀들에게 힘이 좀 돼줄 수 없을까 싶어 주로 영어나 한문책을 봅니다.” 

아들 역시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살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좀 오래 걸리겠지만 땅 하나 사서 1층에는 헤어숍 짓고, 2층에는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하는) 학원을 만들고 싶어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한옥처럼 인테리어를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거, 그게 계획이죠.”




주간동아 2018.08.08 1150호 (p42~43)

  •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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