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6

2018.02.14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권력애, 자기우월감, 탐욕에 찌든 비도덕적 집약체

그들은 왜 성추행을 저지르나

  • 입력2018-02-13 11: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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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현직 검사가 과거 한 장례식장에서 검찰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파장은 엄청났다. 검찰은 성추행을 저지른 피의자들을 조사, 기소하는 권력기관이다. 죄를 처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죄를 저지르다니, 일반인의 충격과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식자리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을 관행처럼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다. ‘만지는 것쯤이야. 술 먹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이도 상당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회식자리나 은밀한 공간에서 성추행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 

    그간 왜 성추행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을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몇 가지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본능으로서 성적 행동이다. 동물은 번식하려고 성행위를 하는데, 인간은 번식보다 주로 쾌락을 위해 한다. 인간은 이성을 보면 뇌의 심부에서 자기 짝으로 적당한지를 무의식적으로 판단한다. 물론 적당하다고 해서 곧바로 탐색으로 이어지거나 성적 행동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본능을 억제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본능 탓은 그만!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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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능 자체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말일 테다. 본능 억제 능력은 알코올, 마약, 약물 같은 물질에 의해 취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해자는 대부분 “술김에 그랬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그런 해명은 적절치 않다. 모든 남성이 본능에 충실해 여성을 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성적 본능은 결코 남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존재한다. 

    둘째, 권력 확인이다. 성희롱·성폭행의 경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센 남자가 신체적으로 더 약한 여성에게 행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청장년이 노인에게, 비(非)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집단이 개인에게, 총칼을 든 군인이 점령의 민간인에게 행한다. 



    그렇다면 ‘본능’이 아니라 ‘권력 확인’ 차원에서 성희롱·성폭행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권력의 우위에 있다고 모두가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셋째, 자기애(나르시시즘·Narcissism)적인 착각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일부는 종종 자기 마음대로 자격을 부여한다. 사회나 특정 조직에서 상당한 지위에 올랐으니 누군가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한다. 물론 그의 지위는 직무에 관한 것일 뿐, 상대방의 영혼이나 심신을 지배할 권리까지 부여된 것은 아니다. 한 술 더 떠서 이들은 다른 사람이 기꺼이 자신에게 동의하고 순종하며 위안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거부하거나 반격하면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나에게 잘못 보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라면서 지위를 이용해 협박을 가한다. 상대가 끝까지 거부하면 ‘자기애’에 상처를 입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앙심을 품는다. 

    넷째, ‘탐욕의 수단’이다. 탐욕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이성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탐욕의 대상은 무척 다양하다. 돈, 권력, 물건, 명예, 음식, 성, 사람, 마약, 술 등이다. 탐욕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으로 영역을 확산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과거 봉건시대 왕이나 귀족을 떠올려보자. 그들의 생활은 사치와 낭비로 이뤄졌고, 허영으로 가득 찼다. 인간을 노비라는 이름으로 소유물처럼 부렸으며, 평민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겸비했다. 아름다운 이성과 성적 활동도 마음껏 했다. 비록 민주주의 사회에 이르러 이와 같은 계급이 없어지긴 했으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계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은 특권의식을 자신도 모르게 키우며 점차 탐욕에 충실해간다. 도덕적 마비는 그것에 따르는 부산물일 뿐이다. 

    이성에 대한 권력자의 탐욕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오늘은 이 사람, 내일은 저 사람 등 날마다 누군가를 탐한다. 상대의 몸을 탐할 수도 있고, 성적 접촉을 탐할 수도 있다. 순종하거나 반항하는 상대의 반응을 탐하기도 한다. 이러한 탐욕이 빚어내는 행동은 한번 발동이 걸리면 좀처럼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이제 비로소 성희롱·성폭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특성을 일반화해 얘기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탐욕적이다.

    ‘자기애’가 부른 착각의 늪

    다섯째,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결여돼 있다. ‘내가 소중하듯,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생각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마음가짐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 사람의 도덕성은 아직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의 양심은 심각히 오염됐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희롱·성폭행을 저지르는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도덕성 부족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를 퇴출하려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 그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탐욕을 멈추고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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