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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능 연기가 불러온 카오스

단순히 일주일? 한 달 일정 다 꼬여… 손해 구제 방안 필요

수능 연기가 불러온 카오스

2018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논술시험이 실시된 11월 2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서울캠퍼스에서 논술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의 모습.[동아DB]

2018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논술시험이 실시된 11월 2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서울캠퍼스에서 논술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의 모습.[동아DB]

“수능을 연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대한 일입니다. 전체 학생이 다 중요하지만, 포항 학생들의 안전과 공정함 등 이런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연기 결정을 내렸습니다.”

11월 24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이튿날 경북 포항시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수능 연기를 결정한 배경을 밝혔다. 당초 수능은 16일 목요일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하루 전인 15일 오후 2시 반 무렵 포항에서 5.4 규모 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부 고사장이 붕괴되고 여진의 우려도 있어 긴급히 일주일 미뤄졌다.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포항여고 학생들은 “수능 연기 소식에 안도했다” “걱정이 많았는데 수능이 연기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등 경험담을 말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수능 연기 결정에 국민은 대부분 ‘올바른 결정’이라며 지지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1월 24일 발표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수능 연기 조치에 대해 ‘적절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90%, ‘적절치 못했다’는 응답은 7%에 그쳤다. 현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자유한국당 지지층과 대통령 부정 평가자 중에서도 각각 82%, 76%가 수능 연기를 ‘적절한 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정치적 성향 등을 떠나 수능 연기를 대승적 결정으로 판단한 것.


항공  ·  숙박권, 티켓 등 양도 글 폭주

그러나 수능 연기 여파는 적잖았다. 기존 수능 뒷날인 11월 17일과 주말인 18~19일에 잡아둔 여행, 콘서트 관람, 놀이동산 방문, 성형수술 등의 계획을 모두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 실제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는 16일부터 급하게 양도한다는 제목으로 항공권과 숙박권, 콘서트 티켓 등이 대거 올라왔다. 이들은 하나같이 ‘수능이 연기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내놓는다’며 기존 가격에서 10% 내외 할인된 값에 관련 물건을 사이트에 올렸다. 

11월 중순 한 판매자는 중고나라 게시판에 ‘수능 연기로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유니버셜스튜디오저팬 입장권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묻자 그는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여행 가려고 미리 입장권을 사뒀는데 논술 일정과 겹쳤다. 유효기간이 2018년 1월까지여서 그나마 판매 글을 올리자마자 사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항공권도 전액 환불받았는데 호텔은 취소수수료를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1월 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능 이후 논술, 면접, 실기시험 등 관련 대학의 평가 일정이 연쇄적으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기말고사까지 미뤄지면서 고3 수험생들은 발이 묶인 실정이다.
수험생 A군은 수능 연기로 11월 말과 1월 초 계획했던 가족여행 두 건을 모두 취소했다. 그는 “수능을 보고 주말에 가족과 국내 기차여행을 가려 했는데 홀로 못 가게 되자 분위기도 나지 않고 해서 가족 모두 가지 않았다. 1월 예약한 홍콩 여행은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다른 시험 일정과 겹친다. 취소 수수료는 크지 않지만 수능 전부터 기다렸던 여행을 죄다 못 가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예술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재수생 B씨 역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수능이 연기됐다는 발표가 나자 지망하는 대학에 전화를 걸어 실기시험 일정을 문의했다. 학교 측은 “실기시험 일정 변경 계획은 없다. 바꾸면 2차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에 안심하고 12월로 예정된 가족 해외여행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23일 수능 이후 다시 확인하자 일정이 변경돼 있었고 뒤늦게 가족여행을 부랴부랴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애초에 ‘실기시험 일정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라고만 얘기해줬어도 이후 일정을 손 놓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학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하지만 수험생은 그런 얘기 한마디에 일정이 크게 좌우된다. 수험생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떠넘기는 태도에 화가 났다”며 불만을 표했다. 

이 사태를 지켜보는 일부 사람은 12월부터 내년 2월 사이에 예정된 여행은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연기 혹은 변경하면 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학부모들의 의견은 다르다.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 C씨는 “기존 수능 일정에 맞춰 남편도 12월 말 휴가를 받아놓고 해외여행을 예약해뒀다. 보통 수능 이후에 논술시험 및 기말고사 일정이 있어 12월 중순까지는 거의 꼼짝하지 못한다. 몇 달 전부터 가족 모두가 12월 말로 시간을 맞춰놨기 때문에 일정을 변경하기 어렵고, 또 연말엔 해외여행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수험생만 놔두고 나머지 가족끼리만 갈 수도 없지 않나. 1년 동안 고생한 딸을 위해 추석 전부터 알아보고 예약했는데 취소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여행업체는 대부분 수능 연기로 부득이하게 여행을 취소할 경우 환불 조치를 해줬다. 류민우 하나투어 홍보팀 직원은 “전례 없는 상황이라 당초 수능날인 11월 16일 이후부터 미뤄진 수능날인 23일까지 예약했던 건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환불을 진행했다. 본인뿐 아니라 부모, 형제, 조부모 등 수험생이 포함된 가족 모두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을 해주고, 경우에 따라 원하는 일정으로 최대한 변경을 도왔다”고 말했다. 참좋은여행과 인터파크투어도 11월 23일 출발하는 여행상품까지 취소수수료를 면제했다. 

항공사도 대부분 취소를 해주고 있다. 11월 28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서울 등 8개 국적 항공사는 수능 연기로 일정이 바뀐 수험생과 그 가족에 한해 취소와 환불에 따른 수수료 면제 기간을 기존 11월 23일까지에서 12월 31일까지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다만 11월 30일까지 취소와 환불을 요청하는 경우에만 면제가 가능하다.


성형수술 날짜 못 잡아 발 동동

이렇듯 여행업계가 피해 구제를 해주고 있지만 11월 이후 예약건은 손해가 따른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수능 연기 발표가 11월 15일에 있었고 이미 열흘가량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급한 요청건은 대부분 취소와 변경이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11월 30일까지 요청하면 전액 면제해준다고 공지했기 때문에 12월에 요청하는 건에 대해서는 취소수수료가 일부 발생한다. 여행계약 약관상 출발일이 30일 이하로 남았을 경우 기간에 따라 취소수수료가 차등 부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업계 못지않게 성형외과업계에 밀어닥친 파문도 만만치 않다. 수능 이후 상당수 수험생이 성형수술을 하는데 수능이 연기되면서 수술 날짜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된 것. 통상적으로 겨울철은 마스크와 모자, 두꺼운 옷 등으로 수술 부위를 가리기가 쉽고 상처 부위가 덧날 우려도 없어 최성수기로 꼽힌다. 수험생뿐 아니라 대학생, 직장인까지 몰리는 겨울철에는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술 날짜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고3 수험생 D양은 “9월 전국연합학력평가 이후 시간을 내서 엄마와 함께 상담받고 12월 중순으로 수술 날짜를 잡아뒀는데 논술시험 일정이 꼬이면서 수술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쌍꺼풀수술 후 부기가 가라앉으려면 보통 한 달가량 필요하다고 한다. 2월 졸업식뿐 아니라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자연스러운 얼굴로 가려면 12월 안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예약자가 너무 많은 데다 개인 일정이랑 안 맞아서 결국 수술 날짜를 못 잡았다. 1월 예약이라도 잡아야 할 듯”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의 한 수험생 카페에는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이 ‘한 달 전 지인의 소개를 받아 11월 24일에 성형외과 예약 상담을 잡아뒀는데 다행히 연기된 수능 뒷날이라 갈 수 있었다. 평일인데도 대기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날짜 잡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따지다가는 수술 자체를 못 할 것 같아서 1월 초로 수술 날짜를 겨우 잡았다’고 후기를 올렸다. 

성형외과는 대부분 수능 연기로 불가피하게 수술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수험생의 사정을 봐주고 있다. 윤원준 미고성형외과 원장은 “부모가 수능 전에 미리 수술 날짜를 잡아두는 경우가 있는데 수능 연기로 인한 취소건은 모두 환불해줬다. 성형수술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술 날짜를 되도록 빨리 잡으려는 사람이 많아 최대한 시간을 맞춰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에 비해 성형수술 예약 건수가 늘어난 것도 수술을 염두에 둔 수험생의 마음을 급하게 하고 있다. 윤 원장은 “지난해 말에는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아 예년에 비해 예약 건수가 상당히 줄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예약이 늘어난 편이다. 그래서 수험생들이 수술 날짜 잡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 조건 따라 환불, 못 받으면 방법 없어

11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진 피해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경북 포항시 북구의 포항여고를 방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위로하고 있다.[동아DB]

11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진 피해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경북 포항시 북구의 포항여고를 방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위로하고 있다.[동아DB]

여행업계가 자발적으로 수험생들의 피해를 구제하고 나섰지만 모두가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숙박업, 공연업의 경우 천재지변 등으로 소비자의 숙박업소 이용이 불가하거나 공연이 취소 또는 연기되면 계약금 및 입장요금을 환급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천재지변은 ‘기상청이 강풍, 풍랑, 호우, 대설, 폭풍해일, 지진해일, 태풍주의보 또는 경보를 발령한 경우’라고 명시돼 있다. 즉 지진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이번 수능 연기는 지진이 원인인 것은 맞지만 엄밀히 말해 ‘정부의 결정’으로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11월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지진과 관련된 규정이 빠져 있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 결정’을 정부의 명령으로 봐야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다”며 “해당 기준에 지진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소비자원도 피해 구제를 진행하고 있다. 김가영 한국소비자원 홍보과장은 “수능 연기 발표가 있은 지 2주가 지난 현재까지 관련 민원 접수가 꽤 들어온 상황이다. 여행업계의 경우 즉각 대응했기 때문에 관련 접수가 덜한 편이다. 그런데 아고다, 호텔스닷컴 등 법인이 해외에 있는 숙박 예약 사이트의 경우 국내법을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의 취소, 환불 등 관련 요구를 반드시 이행할 필요가 없다. 국내 소비자 주권 보호 차원에서 이들 사업자 측에 중재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공연 등 다른 업종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 과장은 “소비자가 수능 연기로 취소나 환불을 요청한다고 해서 모두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약서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사업자 측에서 소비자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의무는 없다. 한국소비자원은 중간에서 합의를 이끌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입력 2017-12-05 16:24:24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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