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회

폭행도 추억? 소년법 악용 청소년에 뿔난 국민

부산, 강릉 등 연이은 폭행 사건으로 소년법 개정 요구 봇물

폭행도 추억? 소년법 악용 청소년에 뿔난 국민

폭행도 추억? 소년법 악용 청소년에 뿔난 국민

[shutterstock]

9월 2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에 누리꾼들은 아연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한 중학생이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과 함께 올라온 제보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부산 사상구의 중학생들이 피해 학생을 집단으로 폭행한 뒤 지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을 보내 ‘심하지?’라고 물은 것. 또래 학생을 유혈이 낭자할 때까지 구타하고는 일말의 반성조차 없다는 사실에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일부 누리꾼은 미성년자 처벌을 제한한 ‘소년법’ 규정 때문에 청소년이 범죄를 쉽게 생각한다며 ‘소년법 폐지 청원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처벌을 강화한다고 범죄율이 감소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 환경 등 청소년을 둘러싼 근본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비로소 청소년의 잔혹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묻혀”

9월 1일 부산 사하구 엄궁동 한 골목에서 A(14)양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됐다. 인근에 거주하는 여중생 4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것. 가해자들은 A양의 친구를 통해 영화를 보자며 A양을 범행 장소로 불러낸 뒤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들은 경찰 조사 당시 “선배에게 말투가 불량하고 건방져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폭행 원인은 치정이었다. 4일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A양의 부모가 6월 30일 A양이 눈에 피멍이 들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며 여중생 5명을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여중생 가운데 2명은 9월 초 A양을 폭행한 학생들이었다.

9월 5일 가해자들의 지인이라는 제보자는 “6월에도 폭행이 있었는데,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의 남자친구와 A양이 서로 연락했다는 이유로 폭행한 것으로 안다. (가해자들은) 1차 폭행 후에도 A양이 남자친구와 연락을 지속했고 경찰에 폭행 사실을 알린 것이 괘씸하다며 보복 폭행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 측도 SNS 등을 통해 “A양이 1차 폭행 때는 가해자들을 모르는 상태에서 당했다”고 밝혔다.

이 일이 국민적 공분을 사자 강원 강릉시에서 여고생들이 또래 학생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도 뒤늦게 재조명됐다. 강릉경찰서에 따르면 7월 17일 새벽 3시 무렵 여고생 C(15)양 등 6명이 B(17)양을 무차별 폭행했다. 당시 B양은 가해자들과 강릉 경포해변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었다. 가해자들은 해변에서 B양을 구타하다 자취방으로 데려와 폭행을 이어갔다. 폭행 과정에서 가해자들은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B양은 이 사건으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현재 강릉 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범죄영화에나 나올 법한 잔혹한 폭행이 청소년 사이에서 벌어지자 9월 3일 청와대 ‘청원·민원 및 국민제안’ 게시판에서는 소년법 폐지 청원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과 강릉 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SNS를 통해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공개되면서 청원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자가 “이거(폭행 사진을 보내며) 심해? 나 (소년원에) 들어갈 것 같아?”라는 메시지를 지인과 주고받은 내용이 페이스북을 통해 퍼진 것.

강릉 사건 피해자의 언니라는 D(20)씨는 자신의 SNS 계정에 가해자들이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공개된 대화에 따르면 강릉 가해자들은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자의 신상이 알려진 것을 언급하며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한편, “신상이 퍼지면 유포자를 찾아 고소하겠다”고 했다. 다른 가해자는 이에 “어차피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힌다”는 식으로 답했다. D씨는 SNS 게시글에서 “가해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이들이 제대로 처벌받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큰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의 행태에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9월 3일 2만 명 정도였던 청원 운동 참여 인원이 6일 오후 28만 명까지 늘었다.

미성년자 폭력 불기소처분 2배 늘어

폭행도 추억? 소년법 악용 청소년에 뿔난 국민

6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당시 폐쇄회로(CC)TV 촬영 영상 일부. 여학생 5명이 한 여학생을 둘러싸고 있다.[동아일보]

현행 소년법은 만 18세 미만이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량을 완화해 최고 징역 15년을 상한선으로 규정한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도 미성년자가 살인 등 특정 강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고 징역 20년으로 형량을 제한하는 조항이 있다. 이외에도 소년법상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는 형사 처벌하지 않고 보호관찰, 사회봉사 명령 등 보호처분으로 대신하게 돼 있다.

실제로 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미성년자 폭력 범죄는 2011년 2만3807건에서 지난해 2만403건으로 소폭 줄었다. 범죄 건수는 줄었으나 처벌받지 않는 사례는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불기소처분’을 받은 비율은 16%에서 28%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폭력 범죄로 형사재판을 받는 비율도 84%에서 69%로 감소했다.

청소년의 잔혹 범죄는 단순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는 고교생 41명이 여중생 1명을 1년간 집단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가해자 가운데 10명만 소년부로 송치됐고, 5명은 보호관찰처분을 받았다. 2014년 경남 김해에서는 여고생 4명이 20대 남성 3명과 함께 또래 여학생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잔인하게 학대한 끝에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범죄 사실을 감추려 시신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해자 중 미성년자는 최고 장기 9년, 단기 6년 형을 받았다. 성년 가해자가 무기징역과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5년에는 길고양이의 집을 짓고 있던 한 아파트 주민이 초등학생들이 옥상에서 던진 벽돌에 맞아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가해자들은 10세 미만이라 어떠한 형사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올해 3월에는 고교를 자퇴한 김모(16) 양이 만 8세인 초등학생을 유괴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처럼 청소년이 끔직한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소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강기윤 전 의원은 2012년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기존 14세에서 12세로 낮추는 형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바른정당 김상민 전략홍보본부장도 2015년 의원 시절 같은 내용의 소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형사처분을 받으면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비판에 부딪혀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교육, 관리 맡는 학교나 부모에게도 책임 물어야

폭행도 추억? 소년법 악용 청소년에 뿔난 국민

강원 강릉시 여고생 폭행 사건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폭행하며 찍은 영상의 일부(왼쪽).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이 피해자를 폭행한 후 자신의 지인과 나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 내용.[동아일보],[뉴스1]

하지만 본격적으로 청원 운동이 시작되자 국회에서도 소년법 개정을 다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9월 6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우원식 원내대표는 “가해자 나이에 따라 피해 정도가 다르지 않고, 일련 사건의 피해자는 청소년인 데다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소년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회가 법 개정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김세연 정책위원회 의장도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지 않도록 소년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트위터를 통해 “극악무도한 청소년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년법 폐지나 처벌 강화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무조건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소년법 개정 논의가 흘러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 우발적, 일시적 범행을 저질러도 성인과 같은 수준으로 처벌한다면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향후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청소년 교육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 학교, 가정의 책임도 전부 청소년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도 9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엄벌주의를 내세워 진짜 논의가 묻혀버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는 성인과 매우 달라 형벌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장에서 청소년 사건을 다뤄본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형량을 대폭 올리는 법안을 내는 일은 돈이나 인력의 투입 없이 마치 무언가를 했다는 착각만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소년법은 폐지보다 일부 개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가입국이다. 이 협약은 ‘18세 미만 청소년이 범한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 또는 종신형 처벌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5년에 한 번씩 아동인권에 대한 국가보고서를 제출해 심의를 받는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9월 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출입 기자단 브리핑에서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거나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검토해보겠다. 처벌 외 범죄의 재발을 막을 다른 수단도 찾아봐야 한다. 충격적인 사건에 너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시간을 가지고 합리적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입력 2017-09-12 11:02:39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