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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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가짜 뉴스의 온상 소셜미디어

‘집단 지성’인가, ‘집단 바보’인가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4-17 1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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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곳곳에서 ‘가짜 뉴스(fake news)’와 전쟁이 시작됐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 정부는 가짜 뉴스 방치에 책임을 물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에 최대 500만 유로(약 607억 원)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5월 9일 ‘장미 대선’을 치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이 가짜 뉴스 유포에 엄벌을 공언하고 나섰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가짜 뉴스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마지못해 대책을 내놓았다. 3월 중순부터 페이스북은 일부 지역에서 진위 여부가 파악되지 않은 뉴스에 대해 ‘이의 제기된 콘텐트(disputed content)’라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검증 매체의 출처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두고 볼 일이다.



    집단 지성의 배신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한때 소셜미디어는 집단 지성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랬던 소셜미디어가 가짜 뉴스의 온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애초 집단 지성은 세간의 찬양과는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진짜 문제는 가짜 뉴스가 아니라 집단 지성이었던 것이다.

    지금 당신은 1등 상금 5000만 원이 걸린 퀴즈쇼에 출연했다. 이제 한 문제만 맞히면 상금 5000만 원은 당신 것이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회자가 읽은 문제의 답이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다행히 당신에게는 지금까지 쓰지 않은 한 번의 힌트를 얻을 기회가 있다. 사회자가 묻는다.



    “힌트 기회를 지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전문가 한 명에게 물을 수도 있고, 관객 전체의 의견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답을 구할 것인가. 나라면 관객 전체의 의견을 묻겠다. 그래도 평범한 관객보다 전문가가 낫지 않겠느냐고? 답은 정반대다. 미국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에서 전문가가 정답을 맞힌 확률은 65%인 반면, 관객 다수의 지지를 받은 답이 정답인 확률은 91%나 된다.

    이런 퀴즈쇼는 흔히 집단 지성이 얼마나 똑똑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거론된다. 이제 2011년 4월 발표된 다음 연구 결과를 보자. 얀 로렌츠 박사팀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학생 144명에게 금전 보상을 약속하고 다양한 질문의 답을 예측하는 실험을 했다. ‘2006년 스위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건수’처럼 답은 모두 세상에 알려진 것이었다. 단, 연구자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다른 이의 예측 결과를 알려주거나 혼자서 예측하도록 상황을 바꿨다.

    결과는 어땠을까. 먼저 상황에 따라 답이 크게 달랐다. 어느 쪽이 좀 더 정답에 근접했을까. 흥미롭게도 다른 이의 예측 결과를 알려줬을 때(사회적 영향력이 작용할 때) 학생 144명은 정답과 더욱 거리가 먼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사회적 영향력이 집단 지성의 힘을 무력화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세 가지다.

    첫째, 다른 이의 판단을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예측의 다양성이 감소했다. 그러니까 2006년 스위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건수(198건)를 처음에는 비교적 정확히 예측한 사람도 다른 사람의 터무니없는 예측(약 800건)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바꿨다.

    둘째, 이렇게 예측이 한두 가지로 좁혀지면서 집단 전체가 부정확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사회적 영향력은 2006년 스위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건수를 약 200건이 아니라 800건가량으로 예측하는 것처럼 틀린 결론으로 이끄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수의 틀린 예측이 맞는 예측을 압도해버린 것이다.

    셋째 대목이 제일 심각하다. 혼자 정확히 예측했더라도 자신의 답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건 정도 아닌가요?” 그런데 여럿이 비슷한 예측을 하자 그것이 틀렸는데도 확신하는 경향을 보였다. “맞아요. 800건이 확실해요!” 부풀대로 부풀어 터지기 직전인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너도나도 수익을 ‘확신’하며 뛰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없을 때, 그러니까 학생 144명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때는 집단 지성이 나타날 개연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144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서는 집단 지성은커녕, 오히려 개인의 판단보다도 못 한 잘못된 결론을 내려놓고도 자신이 맞았다고 우기는 심각한 상황이 나타났다.



    초연결 사회의 집단 바보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수천만 시민은 딱 2개의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편집해 보여주는 온갖 국내외 뉴스에 영향을 받는다.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똑같은 이름을 검색하는 바람에 그 혹은 그녀의 이름은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 즉 동시에 많이 찾아본 단어가 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도 크다. 우리는 가족, 친구, 지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하는 갖가지 정보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연결 사회’도 아닌, ‘초(超)연결 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초연결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사회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사람은 대부분 성장 배경, 출신 학교, 지적 수준, 소득 수준, 정치 성향 등이 비슷하기 마련이다. 애초 비슷하던 사람이 똑같은 뉴스를 보면서 심각해하고, 똑같은 드라마나 동영상을 보면서 즐거워하면서, 모든 것에 점점 더 똑같이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집단은 똑똑한 지성이 되기보다 어리석은 바보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우리는 과연 집단 지성을 구할 수 있을까. 미국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조직을 위해서는 ‘다른 의견’이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의견이야말로 집단이 잘못된 결론으로 폭주하는 불상사를 막을 브레이크라는 것이다. 동화 속 아이처럼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제 가짜 뉴스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때다. 혹시 은연중 언론매체 혹은 소셜미디어에서 접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나. 자신의 주관이나 취향이 아니라 타인의 주관이나 취향에 휘둘리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나. 듣기 좋은 의견에만 눈과 귀를 열어놓고 살아오지는 않았나. 이 모든 것의 결과가 바로 ‘집단 바보’이고,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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