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2017.03.29

경제

K 뷰티, 日에서 ‘핫’한 이유

중저가 로드숍 브랜드 속속 진출 일본에 없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소비자 만족

  • 심희정 서울경제 기자 soulmatef@naver.com

    입력2017-03-28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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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화장품 사업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예요. 시세이도, SK-II 등 유명한 자국 화장품이 많으니 굳이 수입 관세가 붙은 비싼 화장품을 쓸 이유가 없는 거죠. 시장 진입 장벽이 워낙 높아 사업하기 쉽지 않아요.”(아모레퍼시픽 임원)

    2014년 11월 아모레퍼시픽의 최고가 브랜드 아모레퍼시픽(AP)은 일본에서 매장을 철수해 자존심을 구겼다. 진출한 지 8년 만의 굴욕이었다. 그해는 아모레퍼시픽이 아시아권에서 케이뷰티(K-beauty)의 위상을 드높이며 나날이 고공성장을 하던 때라 충격이 더욱 컸다. 당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일본 백화점은 10년간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AP를 철수하는 대신 브랜드 수용도가 높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브랜드숍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일본에서 고개를 떨궜다면 LG생활건강의 프리미엄 브랜드 ‘오휘’는 애초 일본 시장에 노크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3년 동안 케이뷰티는 일본에서 영 맥을 못 췄다. 심지어 화장품업계에서 일본은 ‘케이뷰티의 무덤’으로까지 불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역전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발 중국의 한한령이 화장품업계로 옮겨붙고 있는 가운데 일부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새로운 성과를 내고 있는 것.


    미샤·더샘·잇츠스킨 약진

    미샤, 더샘, 잇츠스킨 등 중저가 로드숍 브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미샤 브랜드의 에이블씨엔씨 김홍태 홍보과장은 “일본이 시장 규모로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화장품 대국이면서 화장품 트렌드와 기술이 한국보다 빠르고 우수해 배울 점이 많다”고 일본시장의 매력을 밝혔다.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도 무릎을 꿇은 일본 시장에서 중저가 브랜드가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중저가 브랜드의 약진에 힘입어 지난해 국산 화장품의 일본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산 화장품의 일본 수출액은 1억8265만 달러(약 2052억9800만 원)로 전년 대비 32.6% 증가한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 한류 바람이 한창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상승세를 보이던 대일 화장품 수출은 2013년 한류가 시들해지면서 2년 연속 뒷걸음치다 2015년에는 1억3779만 달러(약 1549억 원)까지 뚝 떨어졌다.



    꺼진 불인 줄 알았던 일본 내 케이뷰티 붐이 다시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아모레퍼시픽이 선두로 개발해 보급한 ‘쿠션’ 형태의 제품이나 기존 화장품 틀을 깬 새로운 제형의 화장품, 일본에는 없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일본 여성 고객의 마음을 사기 시작한 덕분이다.  

    가장 선전하고 있는 주인공은 국내 로드숍 브랜드 순위 3위 ‘미샤’다. 2006년 일찌감치 일본에 진출한 미샤는 2015년 4월 현지에 출시한 ‘M매직쿠션’이 잭팟을 터뜨렸다. M매직쿠션은 선크림과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등을 특수 스펀지 재질에 흡수시켜 팩트형 용기에 담아낸 멀티 메이크업 제품이다. 쿠션 형태의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이 없던 현지에서 지난해까지 누적 판매량 200만 개 이상을 기록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미샤는 2015년 12월 일본 화장품 전문 포털 ‘엣코스메’에서 리퀴드파운데이션 부문 평가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의 유명 경제지 ‘닛케이 트렌디’는 지난해 7월호에서 M매직쿠션을 상반기 화장품 부문 히트 상품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초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 캐릭터를 응용해 선보인 ‘라인 프렌즈’ 에디션도 매진 행렬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일본 지사 매출은 280억 원으로 2015년 대비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올해는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 ‘텐션 팩트’로 제2의 매직쿠션 신화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국내 로드숍 브랜드 2위인 ‘더페이스샵’은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리테일(AEON RETAIL)’과 협약해 전국 2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은 화장품 편집매장이나 드러그스토어에서 여러 개의 화장품 브랜드 가운데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담는 ‘셀프 픽킹’이 일상화된 만큼 가격 면에서 매력적이고 품질까지 좋은 국산 로드숍 브랜드의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고령화된 소비층과 세분화된 구매 패턴을 감안해 ‘쿠션 파운데이션’ ‘시트마스크’ ‘한방 스킨케어’ 등의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로컬 브랜드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한방 스킨케어 제품이나 편의성을 강조한 쿠션 파운데이션 등은 이온리테일의 주요 고객인 젊은 여성의 니즈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올해는 지난해 출시한 한방 스킨케어 라인 ‘예화담’을 신규 론칭하고, 짧은 시간에 메이크업이 가능한 ‘지단(時短)’ 콘셉트의 쿠션 파운데이션 등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류에 기대지 말고 제품력으로 승부해야

    한국화장품 계열사 ‘더샘’은 지난해 도쿄에 1호 매장을 열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배우 윤손하와 일본 최대 홈쇼핑 QVC를 통해 브랜드 알리기에 나서고, 마니아층을 확보하는 선진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덕에 더샘은 오픈 당일부터 신제품 ‘와라타’ 라인을 비롯해 ‘하라케케’ ‘차가발효’ ‘아이슬란드’ 등 대표 스킨케어 라인이 품절 사태를 빚었다.

    모기업이던 한불화장품을 흡수 합병한 ‘잇츠스킨’은 2월 도쿄의 한국인 밀집지역 신오오쿠보에 단독 로드숍을 열고 사업 확장 계획을 알렸다. 지난해 11월 처음 한국 화장품 전문매장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했다 반응이 좋자 3개월 만에 정식 매장을 연 것. 인기 제품은 프레스티지 데스까르고 라인의 일명 ‘달팽이 크림’과 10가지 유효 성분으로 만든 파워10 포뮬라 제품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들이 잇츠스킨을 접한 뒤 일본에 돌아가서도 다시 찾을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스타 메이크업아티스트 조성아가 만든 ‘조성아뷰티’도 최근 일본 내 케이뷰티 스토어 ‘스킨가든’에 입점했다. ‘조성아22’ ‘16브랜드’ ‘원더바스’가 대표 상품이다. 조성아뷰티 관계자는 “현지에서 한국 여성의 맑고 깨끗한 피부 표현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러브콜이 계속됐다”며 “자연스러운 광채 피부 표현과 다양한 색조 구성, 독특한 메이크업 도구 등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한풀 꺾인 일본 내 케이뷰티 열풍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던 건 국내 화장품업체의 다양한 실험과 아이디어 덕이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국내 화장품 브랜드를 살펴보면 화장품의 일반적인 공식을 깬 제품이 많다. 앞으로도 일본 뷰티시장에 진출하려면 브랜드 마케팅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소비자 니즈를 충분히 반영해 획기적인 상품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과거처럼 한류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제품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스킨케어 제품은 일본 브랜드가 강세지만 BB·CC크림, 쿠션, 틴트 같은 제품은 케이뷰티가 강점을 갖고 있다.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만 개발한다면 일본시장이 더는 ‘무덤’이 아닌 ‘무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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