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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국내 담배시장 지켜낸 비결

올해 1분기 점유율 63.1%로 10년 내 최고치…전자담배시장서도 ‘릴’ 선전 돋보여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9-05-20 1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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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KT&G]

    [사진 제공 · KT&G]

    양담배(수입담배)가 공식 수입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만 해도 국산담배 대신 양담배를 피우는 것이 터부시됐다. 시민단체는 양담배 불매운동을 벌였고, ‘양담배 판매는 간접적인 경제침략’이라는 신문 독자 투고까지 있을 정도였다. 무역적자가 심하던 시절이니 국산담배 피우기를 ‘애국’의 하나로 여겼던 것이다. 

    올해 1분기 현재 국내 대표 담배회사 KT&G의 궐련담배 점유율은 63.1%이다. 이 같은 수치는 담배시장 개방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수많은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국내 담배시장 완전 개방 후 58%까지 떨어져

    1980년대 시작된 세계화 물결 속에서 필립모리스(PMI), RJ레이놀즈(R. J. Reynolds), B&W(Brown & Williamson) 같은 글로벌 담배기업들은 담배시장이 닫혀 있던 한국, 일본, 대만 등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고자 했다. 특히 미국은 외국산 담배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나라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 담배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1984년 9월 한미통상장관합의를 통해 담배시장 개방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한때 국내 조세의 7.7%를 전매청에서 담당했을 정도로 담배가 조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던 만큼 국내 담배시장 개방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었다. 

    1986년 9월 담배시장 개방이 시작돼 외국산 담배 판매가 이뤄졌다. 담배시장 개방 초기에는 수입판매허가점을 별도로 지정받는 방식으로 외국산 담배를 판매했다. 각 수입업체가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를 통해 위탁판매를 했지만, 수입담배를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개방 전과 비교해 큰 변화였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담배시장 개방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담배시장 개방과 함께 크게 확대된 것 가운데 하나가 ‘담배자판기’였다. 당시 외국산 담배회사들은 자판기를 통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으로 조일유통, 영유통 등 자판기업체를 통해 5000여 대의 담배자판기를 설치했다. 

    외국 담배회사들의 적극적인 공략에 맞서 KT&G는 시장을 방어하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외국 담배회사들은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을 점유해갔다. 

    외국산 담배의 시장점유율은 수입 첫해인 1986년 0.06% 수준이었으나, 1987년 0.1%, 1988년 1.5%, 1989년 4.6%로 해마다 크게 증가해 1991년에는 5%를 넘어섰다. 1995년에는 시장 개방 이후 처음으로 10%를 돌파하면서 KT&G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1990년대 말 KT&G의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90%를 상회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맞자 우리 제품을 애용하자는 범국민운동이 이어지면서 사회 분위기도 시장점유율 방어에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유리한 시장 분위기는 KT&G에 독이 됐다.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시장점유율이 급격하게 추락했다.

    ‘던힐’이 주력 상품인 BAT코리아는 2002년 97억7400만 개비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110% 급증한 수치로 시장점유율을 10.6%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필립모리스, JTI코리아까지 선전해 KT&G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80% 이하로 하락했다. 

    위기를 느낀 KT&G는 더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02년 브랜드실을 전격적으로 만들고, 제품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 조직을 보강했다. 영업과 제조 부문도 조직 개편으로 전문성을 부여했다. 

    특히 담배 제조업무 자동화를 통해 인당 노동생산성을 15년 전인 1987년과 비교해 9배 가까이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매출과 영업이익 증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은 2010년 58%까지 떨어졌다. 

    되돌릴 수 없을 듯하던 흐름이 극적으로 반전된 것은 2011년이었다. 당시 외국산 담배회사들의 가격 인상이 KT&G에게 기회가 됐다. KT&G는 전략적인 가격 정책을 통해 외국산 담배의 가격 인상에 불만이 높던 소비자들을 자사 제품 소비자로 유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민영화 이후 지속적으로 높여온 영업, 품질, 조직 역량이 힘을 보태면서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등락을 반복한 국산담배의 시장점유율은 올해 1분기 63.1%를 기록했다. 최근 10년 내 시장점유율 중 최고치다. 

    담배시장이 개방된 국가 중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휩쓴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자국 담배가 시장점유율 60%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KT&G는 국내 담배산업을 지켜낸 뒤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등장과 KT&G의 반격

    KT&G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릴 하이브리드’. [사진 제공 · KT&G]

    KT&G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릴 하이브리드’. [사진 제공 · KT&G]

    2017년 6월 필립모리스의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가 국내에 상륙하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조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유해성 관련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식지 않았다. BAT코리아도 ‘글로’를 출시하며 궐련형 전자담배시장에 뛰어들었다. 

    KT&G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조세 기준이 정립된 이후인 2017년 11월 ‘릴’을 출시했다. ‘릴’은 연속 사용 가능과 간편한 휴대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릴’은 출시 두 달 만에 10만 대 판매를 달성하면서 ‘아이코스’와 양자구도를 형성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8년도 담배 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국내 담배시장에서 궐련형 전자담배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4분기 13%에 달했다. 궐련담배의 판매 감소분을 궐련형 전자담배가 대체하고 있는 것. 

    궐련형 전자담배시장에서 KT&G의 전용궐련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KT&G는 올해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출시 초기 필립모리스 ‘히츠’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매우 선전한 것이다. 

    KT&G 관계자는 “점유율이 크게 상승한 데는 다양한 신제품 출시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릴 하이브리드’ 전용궐련을 통해 제품 차별성을 꾀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1883년 순화국으로 시작해 2002년 민영화된 KT&G는 외국계 담배기업으로부터 국내 담배산업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했다. KT&G는 이제 수출을 본격화하며 글로벌 톱4 담배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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