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재승 세종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

“강남보단 연남동 추구… 행복도시 만들겠다”

공유차 기반 도시 국내 첫 시도 … “2년 내 규제 풀려야 사업에 차질 없을 것”

  • 입력2018-07-24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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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의 밑그림이 나왔다. 7월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첨단산업센터에서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기본 구상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도시의 지휘자’로 초대된 뇌과학자 정재승(46)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스타트업 육성 전문가 천재원 영국 엑센트리 대표가 각각 세종 5-1생활권과 부산 강서구 일원의 에코델타시티에 들어설 스마트시티의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정 교수는 “맨해튼보다 브루클린, 강남보다 연남동을 지향하는 사람 중심의 친환경적인 도시를 만들겠다”고, 천 대표는 “철저하게 산업적으로 접근해 4차 산업혁명 1번지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튿날인 17일 오후 서울 강남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정 교수를 따로 만났다.

    토목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는 도시

    스마트시티 국가시범사업이 진행되는 세종특별자치시 내 세종 5-1 생활권(빨간색).

    스마트시티 국가시범사업이 진행되는 세종특별자치시 내 세종 5-1 생활권(빨간색).

    어제 단상에 올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와중에 잠시 휴대전화를 꺼내 질문하는 기자들을 사진 찍더라. 

    “그간 대중 강연을 많이 해왔고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등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해봤지만, 그렇게 많은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기자간담회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상황이 재미있어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웃음)” 

    뇌과학자가 어떻게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래너(Master Planner·총괄책임자)가 됐나.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스마트시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갑성 교수(연세대 도시공학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그분이 신경건축학에 대한 내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더라. 스마트시티를 건설, 토목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고 만들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사고의 전환이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교수의 타이틀은 다양하다.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70만 부 넘게 팔린 ‘과학콘서트’(2001)를 쓴 저자, 그리고 인기 대중 강연자다. 여기에 더해 그는 신경과학자와 건축 전문가 등이 모여 2011년 결성한 신경건축학연구회도 이끌고 있다. 신경건축학이란 공간과 건축이 사람들의 인지,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정 교수는 “‘어떻게 물리적으로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의 관점에서 평소 도시에 관심이 많았다”며 “좋은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고 했다. 

    정 교수가 그린 세종 스마트시티의 비전은 ‘시민 행복을 높이고 창조적 기회를 제공하는 지속가능한 플랫폼’이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고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를 지향하는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 시민 참여와 공유·참여·분산을 지향하는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그리고 창조적 혁신을 꾀하는 스마트테크놀로지(Smart Technology)를 가치와 철학으로 삼는다. 이러한 비전은 7대 핵심 콘텐츠(모빌리티, 헬스케어, 교육, 에너지와 환경, 거버넌스, 문화와 쇼핑, 일자리)로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이 중 언론으로부터 가장 주목받은 것은 ‘공유자동차 기반 도시’를 만들겠다는 대목이다. 세종 스마트시티 주민이나 방문객은 개인 소유 차량을 마을 초입 주차장에 놓고 공유버스나 공유자동차, 공유스쿠터, 공유자전거 등을 이용해 목적지로 이동하게 된다. 차를 가지고 동네에 진입할 수 없으니 집에 주차장이 있을 필요가 없다. 정 교수는 “주거시설에 주차장을 넣지 않을 계획”이라며 “따라서 주거비용도 낮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행 건축법은 주거시설 면적에 따라 의무 주차 대수를 규정하고 있지만, 스마트시티에 ‘규제 샌드박스’(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그러한 건축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자율주행+공유자동차, 2025년부터 본격화

    7월 16일 정재승 KAIST 교수가 세종 스마트시티 기본 구상안을 발표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7월 16일 정재승 KAIST 교수가 세종 스마트시티 기본 구상안을 발표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공유자동차 기반 도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나. 

    “내가 냈고, 대부분 동의했다. 도시 문제를 생각해보자. 모든 사람이 편리하니까 내 차를 가지고 나온다. 도로는 꽉 막히고, 매일 2시간 20분을 출퇴근에 쓴다.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개인 소유 차량 때문에 도시가 지속가능한 문명의 그릇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를 공유자동차에 자율주행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테크놀로지로 해결해보자는 것이다. 쏘카(Socar)에 따르면 공유자동차를 도입하면 기존 차량 대수를 8.5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용자 데이터가 쌓이면 수요를 예측해 다양한 탈것(Vehicle)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버스 노선이나 배차 간격도 매 시간 수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자주 이용하는데, 자전거가 없는 대여소는 늘 자전거가 없다. 데이터와 원활한 서비스 운영은 다른 문제 같다. 

    “자율주행이 실현되면 그런 문제는 해결된다. 자동차가 밤새 알아서 수요가 많을 지역으로 이동할 테니까.” 

    앞으로 3년 후인 2021년 입주가 개시된다. 3년 후부터 자율주행 공유자동차가 세종 스마트시티에 등장하는 건가. 

    “1만 가구가 다 채워지는데 3~4년 걸릴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데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율주행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까지 세종 스마트시티에서 많은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정 교수는 “사람들을 많이 걷게 하는 것도 세종 스마트시티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는 두 번째 핵심 콘텐츠 ‘헬스케어’와도, 기존 지역 지구제(zoning)를 없앤 차별화된 도시 디자인과도 연관된다. 데이터 기술로 응급상황에 긴급히 대처하는 등 도시 전체를 ‘느슨한 병원’으로 설계하는 동시에, 걷고 싶은 도시로 디자인해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집과 직장이 가깝다면 굳이 차를 탈 필요 없이 걸어 다니면 된다”며 일부 지역을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혼재된 동네로 만드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유럽 도시들은 자동차 없는 도시로 탈바꿈해가고 있다”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경우 30여 년에 걸쳐 천천히 도심에서 자동차를 빼내고 있는데, 세종 5-1생활권의 경우 현재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라 오히려 차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유리하다”고 말했다. 

    공유자동차 기반 도시를 만들려면 개인의 이동경로, 이동시간 등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포함해 세종 스마트시티는 주민이 생산하는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고 거래하고자 한다. 또 이를 스타트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활용해 혁신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함으로써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이렇게 개발된 기술·서비스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혁신 기술의 테스트베드인 동시에 혁신 기술로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가 되겠다는 것이다.

    삶의 질 높이고, 삶의 비용 낮추고

    이에 세종 스마트시티는 3만 명가량으로 예상되는 입주자에게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할 것을 요청한다. 정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로 이러한 개인정보를 분산시켜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개인정보 제공의 대가로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지역화폐로 보상하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부수적인 수입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아직은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직접적인 보상 금액뿐 아니라 각종 서비스로 생활비가 적게 드는 것까지 고려해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어느 보안회사가 우리 집 앞에 폐쇄회로(CC)TV를 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는다고 하자. 우리 집은 그 대가로 매우 저렴한 비용에 보안서비스를 제공받는다. CCTV로 촬영된 데이터는 내겐 아무 의미 없는 정보지만, 보안회사는 그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와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지역 이슈에 열심히 대답하면 지역화폐로 보상이 돌아오거나 공유자동차를 공짜로 탈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면 세종 스마트시티가 기본소득 실험장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육도 혁신하고자 한다. 토론 중심, 정성평가 중심의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는 계획인데, 그런 교육을 받고 대학 진학을 잘 할 수 있나. 


    “세종 스마트시티에 5개 학교(초등학교 2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1개)가 계획돼 있는데, 이를 6개(초등학교 2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2개)로 늘릴 생각이다. 그리고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시스템을 도입해 비판적 사고와 토론, 협력, 서술형 에세이를 강조한 교육을 실현하겠다. 각 학생을 정성평가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점은 에듀테크로 극복하려고 한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지 않고 대학 진학을 하게 된다. 이미 국내 12개 대학이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수능 점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분양 말고 장기임대가 바람직하지만

    인터뷰 내내 정 교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세종 스마트시티 기본 구상안에도 그는 ‘행복은 충분히 과학적·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썼다. 주택에 지출되는 비용이 적을수록, 통근 소요시간이 짧을수록,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클수록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는 “행복에 관한 연구는 뇌과학 분야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여서 ‘어떤 조건에서 인간은 행복한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돼 있다”고 말했다. 

    “원룸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원룸과 카페 중 어디서 일하고 싶은가. 대부분 카페를 택한다. 왜냐하면 카페가 원룸보다 공간 장악력이 더 높기 때문이다. 카페에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사람 구경하고 싶으면 구경하고, 대화하고 싶으면 ‘물 한 잔 주세요’라며 직원에게 말을 걸면 된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마다 용도가 정해진 놀이터보다 해변에서 더 오래 재미있게 논다. 자기 마음대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해변 같은 도시를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분양할지, 임대할지 고민이 많아 보이는데. 

    “세종 스마트시티에는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동의한 사람들을 입주하게 할 예정이다. 이러한 주민 데이터가 각종 서비스에 활용돼 삶의 질을 높일 것이다. 그런데 분양하면 ‘집주인’이 전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전부 사들여 장기임대를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어 일부 지역만 분양하는 등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각 기관과 관계는 어떤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 해 상당히 고무적이다. LH는 유시티(Ubiquitous City)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아 한다. 또 해외 도시에 스마트시티를 수출하려면 먼저 세종에서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협조적이다. 정부 내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구현하는 도시를 왜 국토부가 담당하나’라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국토부가 긴장하면서 열심히 한다. 청와대도 ‘과감하게 해보라’며 챙기고 있고, 국회도 스마트시티 특별법 제정에 나선다. 분위기가 매우 좋다. 내가 마스터플랜만 잘 만들면 되는 사업인 것 같다.(웃음)” 

    하지만 여전히 규제가 많다.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 

    “맞다. 규제가 너무 많아 아무리 최대한으로 노력한다 해도 마스터플랜에 담긴 계획의 절반밖에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앞으로 2년 내 규제를 풀어줘야 사업 추진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픈 말은. 


    “스마트시티에 대한 기대가 참 다양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마스터플랜을 보고 누구는 꿈이 방대하다 하고, 누구는 덜 파격적이라 한다. 주로 유시티 사업을 했던 분들은 에너지와 교통만 잘해도 되는데 교육, 헬스케어까지 손댄다고 하니 걱정을 한다. 그런데 혁신 기술의 테스트베드가 되겠다는 도시가 여전히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게 말이 되나. 두루 바꿔야 해 다양한 콘텐츠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해달라. 덜 파격적이라고 여기는 분들은 ‘기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블록체인 도시’나 드론 택시를 타고 다니는, 듣도 보도 못 한 것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세종 스마트시티는 행복을 향해 모든 시스템이 연계된 도시다. 도시를 만들 때 건물과 안전만 챙겨선 안 되고 시민의 건강과 교육, 문화, 일자리까지도 챙겨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만 살고 싶은 행복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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