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2

2018.04.04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내 안에 너 있다”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유전자 2% 겹쳐…이종교배로 생존 성공

  • 입력2018-04-03 11: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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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와 화석을 통해 복원한 여성 네안데르탈인 윌마(wilma)의 모습. [어린이동아]

    유전자와 화석을 통해 복원한 여성 네안데르탈인 윌마(wilma)의 모습. [어린이동아]

    인류의 기원? 학교 다닐 적에 이렇게 대충 정리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이런 순으로 진화해 오늘날의 인간이 됐다고. 나중에 식견이 조금 쌓이면서 부끄러웠다. 이 가운데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조상이 아니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때는 18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북쪽 뒤셀도르프에서 30km쯤 떨어진 계곡의 한 동굴에서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여러 개 발견됐다. 열띤 논쟁 끝에 이 뼈는 현생 인류와는 다른 종이란 결론이 내려졌다. 뼈가 발견된 계곡 이름(네안더)을 딴 네안데르탈인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한동안 야만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남성 165~167cm, 여성 158cm 정도로 키는 작았다. 하지만 뼈 구조로 볼 때 넓은 어깨에 근육질 몸매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주로 동굴에서 살았다. 당연히 생존 수단은 사냥이었다. 어떤 사정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동료를 죽여 식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유럽과 서남아시아 곳곳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뼈’는 의외의 다른 모습도 보여준다. 네안데르탈인은 돌로 상당히 정교한 도구를 만들었다. 이들 도구를 이용해 사냥을 하고, 잡은 동물의 가죽도 벗겼다. 정교한 바느질은 못 했겠지만 그 가죽을 몸에 걸쳐 추위도 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공존

    이뿐 아니다. 식인 흔적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도 눈에 띈다. 무리의 늙고 병든 네안데르탈인은 다른 동료의 보살핌도 받았다. 심지어 망자를 매장하는 풍습도 있었다. 무덤 주변에는 꽃도 놓았다. 상투적 표현을 쓰자면 지극히 인간적이다. 



    인간적인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와 수만 년간 공존했다. 호모사피엔스는 기원전 10만~5만 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서남아시아와 유럽에는 이미 네안데르탈인이 오랫동안 추운 기후에 적응하며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누구나 이런 질문을 떠올릴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마주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다름’을 ‘틀림’으로 여겨 어떻게든 배척하고 심지어 박멸하려는 인류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 조상도 크게 달랐을 것 같지 않다. 공교롭게도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와 만난 뒤 약 3만 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정말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몰살했을까. 한동안 우세하던 이런 견해는 최근 10년간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돌파구는 독일 과학자 스반테 파보가 마련했다. 파보는 2003년 현생 인류의 유전체(genome) 해독 기술을 이용해 뼛속에 남아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를 해독하는 작업에 도전했다. 2010년 불가능할 것 같았던 도전이 성공하면서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인간의 유전체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가 2%가량 겹쳤다. 2%의 함의가 만만치 않다. 과거 어느 시점에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서로 관계를 맺어 그 후손을 낳았고, 그 흔적이 바로 우리 몸속에 남아 있다는 것. 심지어 아시아인의 경우 유럽인보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의 흔적이 더 짙다. 

    도대체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남아 시아 같은 곳에서 이 둘은 서로 교류하며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이 맞은 호모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 커플 사이에서 이종교배의 신인류가 태어났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살아남아 호모사피엔스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네안데르탈인 비밀 파헤친 한국인 닥터 본즈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호모사피엔스. [동아DB]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호모사피엔스. [동아DB]

    과학자의 추적 연구 결과를 들어보면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몸속에 새긴 호모사피엔스는 어쩔 수 없이 네안데르탈인의 몇몇 특성을 보유하게 됐다. 대부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였는데, 그 가운데는 아프리카와는 다른 유라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있고, 사냥한 고기의 지방을 더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있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전달받은 호모사피엔스는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호모사피엔스는 사라졌다. 그 결과 몸속에 2%가량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진 현생 인류가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네안데르탈인이든 호모사피엔스든 ‘다름’을 배척하고 ‘순수’에 집착하던 이들은 결국 도태됐다. 반면 그 과정이야 어떻든 ‘다름’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잡종’이 됐던 이들은 살아남았다. 네안데르탈인의 이야기는 앞으로 현생 인류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묵직한 교훈을 던진다. 

    그나저나 이렇게 흥미진진한 네안데르탈인 이야기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어떤 이들일까. 2005년 시작해 2017년까지 12년간 방송된 미국 인기 드라마 ‘본즈’가 있다. 이 드라마에는 뼈만 남은 시신을 분석해 과거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닥터 본즈’가 등장한다. 드물지만 한국인 가운데도 뼈만으로 과거의 온갖 비밀을 파헤치는 닥터 본즈가 몇몇 있다. 

    우은진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정충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조혜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데이비슨칼리지 교수도 바로 닥터 본즈다. 이들은 서로 의기투합해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추적하고 밝힌 비밀을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뿌리와이파리)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상희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캠퍼스 교수,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의 ‘인류의 기원’이 한국어로 나온 다음 영어로 번역됐는데, 이제는 한국인 닥터 본즈 셋이 네안데르탈인의 비밀을 파헤치는 한국어 책을 펴냈다. 대한민국의 격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아 도움 하나 준 것 없어도 괜히 으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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