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6

2018.02.14

경제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 패소로 보험업계 술렁

보험 원금 손실 나 설계사에게 책임 전가했다 80% 책임 판결 나와

  • 입력2018-02-13 11: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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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 보험설계사들이 낸 집단 소송에서 패소해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 제공 · ABL생명]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 보험설계사들이 낸 집단 소송에서 패소해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 제공 · ABL생명]

    보험 불완전판매(가입자에게 위험성과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는 보험사와 보험설계사 가운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이와 관련해 최근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 측이 소송에서 패소하자 보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1월 2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ABL생명을 상대로 보험설계사들이 회사의 보험판매 수수료 환수가 부당하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회사에 80%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해당 소송은 2016년 11월 알리안츠생명의 보험을 판매한 보험설계사 44명이 제기했다.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상대로 승소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험설계사와 보험사 간 책임 소재가 명확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보험설계사 60여 명이 이번 소송과 같은 사안으로 집단소송 중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해당 사건은 12년 전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알리안츠생명은 연금보험상품인 ‘파워덱스 연금보험’을 출시했다. 해당 보험은 주가지수 연동형 상품으로, 주가 하락 시에도 원금이 보전되는 상품이라고 알려지면서 당시 누적거래금(고객이 납부한 돈)이 1조 원에 육박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단일 상품으로 이렇게 많이 판매된 보험이 당시엔 없었다.

    수수료 환수당해도 해촉될까 ‘쉬쉬’

    보험계약자는 최초 가입일로부터 5년간 보험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며, 이 5년 동안은 주가지수와 연동된다. 즉 기본적으로 순보험료에 1.5% 이율로 계산한 금액은 보장해주고, 당시 주가지수가 플러스(+)일 때는 추가로 이율을 얹어주고 마이너스(-)일 때도 이율을 0%로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주가지수 연동 기간 후에는 순보험료에 공시이율로 계산한 금액을 돌려준다는 조건이다. 반면 보험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해약환급금은 납부한 보험료에서 경과된 기간의 위험보험료, 사업비 등이 차감되므로 납부보험료보다 적거나 없을 수도 있다고 돼 있다. 

    문제는 상품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원금이 보장되는 것으로 알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이 폭락하면서 해당 상품은 수익을 내지 못했고, 5년이 지난 후에도 운영사업비 등이 차감되면서 오히려 환급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고객들이 회사를 상대로 원금을 돌려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알리안츠생명은 해당 상품은 처음부터 원금을 100% 보장한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보험설계사들의 불완전판매를 문제 삼았다. 계약자에게 납부보험료를 전부 반환해주는 대신 해당 계약을 모집한 보험설계사들에게 지급했던 수수료(수당)는 전액 환수했다. 



    심지어 알리안츠생명 소속 일부 지점장은 고객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보험설계사들에게 직접 물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설계사는 독립사업자인 데다, 설계사 위촉 계약서에도 ‘보험계약이 불완전판매로 입증될 경우 해당 보험계약과 관련해 지급받은 보수 일체를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보험설계사들 역시 불완전판매 관련 민원이 제기되면 회사로부터 해촉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수수료 환수조치를 거부하지 못한 채 자비로 고객의 손실금까지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설계사 조모 씨는 이 상품으로 ‘보험왕’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는 회사로부터 억대 수수료를 환수당한 데다 고객들로부터 사기꾼이라는 비난에 시달리자 2012년 2월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오세중 보험설계사 노조위원장은 “알리안츠생명에서 일했던 많은 보험설계사가 지금까지도 이 상품 때문에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당시 알리안츠생명은 수수료를 급여에서 차감했는데, 이미 회사를 그만둔 설계사 중에는 회사 측 요구에 불응하고 수수료를 반납하지 않았다 보증보험으로부터 가압류를 당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도 많다. 보험설계사는 입사 전 의무적으로 보증보험에 가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번 사건의 최종 책임이 보험설계사가 아닌 보험사 측에 있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보험설계사들에게 보도자료, 홍보자료, 교육자료 등을 통해 해당 상품을 원금보장형인 것처럼 교육했다는 게 이유다. 보험설계사들은 이를 믿고 계약자를 모집했고, 상품 출시 후 5년이 지났을 때야 원금보장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적절한 교육하지 않은 회사가 잘못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보험설계사들이 소송에 앞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왼쪽). ABL생명의 설계사 수수료 환수조치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보험설계사 조모 씨. [사진 제공 · 한국보험설계사협회]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보험설계사들이 소송에 앞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왼쪽). ABL생명의 설계사 수수료 환수조치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보험설계사 조모 씨. [사진 제공 · 한국보험설계사협회]

    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알리안츠생명이 배포한 ‘파워덱스 유니버셜 안내문’에는 ‘마이너스 수익률 없이 주가지수에 투자하는 보험’ ‘Power of No Minus 최저 연 1.0%의 확정이율은 기본! 옵션 투자로 주가상승 시엔 추가 수익을 올리고 주가하락 시엔 수익률을 마이너스가 아닌 0%로 처리해드립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또한 회사가 제작한 보험 관련 안내문 등에도 ‘무배당 알리안츠 파워덱스 연금보험은 수익확정(Lock-In) 상품입니다. 수익확정 투자방식은 주가하락 시에도 손실이 없습니다’ ‘내려갈 길이 없습니다. 올라갈 줄만 알았지 내려갈 줄은 모르는 신기한 주가지수 연동형 보험을 만나보십시오!’라고 돼 있다. 

    이를 토대로 그동안 언론에서도 해당 보험이 원금보장상품이라는 취지로 보도했지만 보험사 측은 보험계약의 실제 내용과 다르다는 점을 알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2007년 해당 보험 누적거래금액만 9668억 원에 달해 보험사 최초로 1조 원에 육박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재판부는 전국적으로 해당 보험 관련 민원이 제기된 점을 들어 보험설계사 대부분이 회사로부터 해당 보험계약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2013년 알리안츠생명은 해당 보험상품과 관련해 금융감독원(금감원)으로부터 주의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감원은 보험 안내자료에 사업비가 공제되지 않은 납부보험료 총액을 기준으로 이자가 산출된다는 식으로 보험계약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기재된 점을 문제 삼아 담당 직원에게 주의조치를 내렸다. 또한 원금보장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는 문구를 고쳐 보험 안내자료를 다시 만들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소송대리인인 남오연 법무법인 청오 변호사는 “회사 측은 보험업법 제95조의 2에 따라 보험설계사에 대한 설명 의무가 면제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설계사들이 비록 독립사업자라 하더라도 회사의 설명과 교육을 통해 해당 상품을 이해하고 보험 모집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 더 무게를 뒀다”고 설명했다. 

    또한 오세중 위원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보험설계사의 권익이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많은 보험사에서 설계사에게 잘못된 교육을 시키고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런 관행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보험설계사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수당 환수금액의 80%만 돌려주라고 판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머지 20%에 대한 책임은 보험설계사들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보험설계사들이 보험사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입자 보관용 상품설명서나 가입설계서 말미에 작게나마 ‘중도해지 시 해약환급금이 납부보험료보다 적거나 없을 수 있습니다’라고 기재돼 있는 만큼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상품에 대한 설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해 오 위원장은 “보험설계사들의 책임도 분명 인정한다. 과거 회사 측에서는 보험설계사에게 ‘이 상품을 팔지 않으면 바보’라고 할 만큼 상품 판매를 종용했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상품을 팔지 않은 설계사도 더러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험설계사 스스로 불완전판매에 대한 자체 검열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ABL생명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 판결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보험사 간 과당경쟁이 문제

    한편 불완전판매의 근본적인 원인은 보험사 간 과당경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법인대리점(GA)에서 활동하는 보험설계사의 경우 보험사가 수수료 등을 많이 주면서 미는 상품을 고객에게 주로 권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보험사는 무리한 수수료를 제시하며 보험설계사 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다양한 상품을 소개받지 못할 뿐 아니라 과도한 수수료로 보험료까지 올라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GA를 대상으로 한 보험상품 교육도 전부 원보험사에서 한다. 특히 중소형 GA는 특정 회사 상품만 판매하는 조건으로 시중보다 높은 수수료를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보험사는 설령 불완전판매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보험설계사에게 떠넘기면 되기 때문에 ‘무조건 상품을 팔고 보자’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업계가 일반 점포를 줄이고 은행·증권·보험을 한 곳에서 거래하는 금융복합점포를 늘리고 있다는 점도 보험설계사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2015년 금융당국과 생명·손해보험협회가 출범한 온라인 보험슈퍼마켓 ‘보험다모아’ 역시 보험설계사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 그렇기에 보험설계사들은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 위원장은 “보험설계사들은 회사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전국에 약 40만 명의 보험설계사가 있지만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단체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보험설계사협회(옛 대한보험인협회) 노조가 설립되긴 했지만 법외노조에 불과하고, 아직까지 합법 단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 위원장은 “보험설계사는 특수고용직임에도 독립사업자로 인정돼 노동3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불완전판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험설계사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조 설립을 비롯한 제도적 보호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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