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4

2018.01.31

영주 닐슨의 글로벌 경제 읽기

미국 경영대학원의 변신은 무죄!

시간 · 비용 부담 큰 풀타임 과정 없애고, 전공 특화한 파트타임 프로그램 개설

  • 입력2018-01-30 14: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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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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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과정수료.’ 한국 최고 금융기관 펀드의 마케팅 자료에서 발견한 펀드매니저 약력 중 가장 먼저 나온 내용이다.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펀드매니저를 소개하는데 왜 하필 ‘박사과정수료’를 가장 앞에 내세웠는지 이해할 수 없어 “왜 그렇게 약력을 썼느냐”고 물어본 기억이 있다. 한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우 훌륭한 경력을 가졌음에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수강한 과목까지 밝힌 것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인의 학벌 사랑은 정말 유별난 것 같다. 

    물론 미국 월가나 실리콘밸리 회사 역시 학벌이 좋은 사람을 선호한다. 많은 회사가 쉽고 편리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학 졸업자 채용 때 특정 학교 10곳 정도에서만 관련 행사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중간 매니저급으로 올라갈수록 그들의 백그라운드는 비교적 다양해진다. 어느 대학, 대학원 출신인지는 경력의 가장 마지막 줄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MBA 출신 엘리트 코스도 변화

    위스콘신 대학교 메디슨 캠퍼스. [페이스북]

    위스콘신 대학교 메디슨 캠퍼스. [페이스북]

    미국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대학원 졸업장이 경력에 큰 프리미엄으로 작용했다. 특히 MBA(경영학석사학위) 졸업이 그랬다. 일반적으로 미국 MBA 하면 2년간 풀타임(full time)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취업하는데, 졸업생들이 어떤 회사에 얼마의 연봉을 받고 들어가느냐가 경영대학원 순위를 좌우한다. MBA 졸업 후 고액 연봉을 받고 월가에 진출하는 것이 엘리트 코스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MBA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 가운데 월가 대신 실리콘밸리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미국 금융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경영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트렌드에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해 10월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영대학원 가운데 하나인 위스콘신 경영대학원이 풀타임 MBA 프로그램의 종료를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전혀 예상 못 한 일도 아니었다. 미국 비즈니스 스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고, 몇몇 학교가 비즈니스 스쿨의 핵심으로 여겨지던 풀타임 MBA 프로그램을 없앨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GMAC(경영대학원 입학 요건인 GMAT 시험을 주관하는 곳)의 2017년 리포트는 미국 경영대학원이 겪고 있는 ‘경영난’을 잘 보여준다. 미국 경영대학원이 지금까지 누려온 압도적인 인기를 찾아보기 힘든 대신, 유럽과 캐나다 등 다른 나라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경영대학원의 인기가 시들해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비용이다. 미국 경영대학원의 2년 평균 등록금은 6만 달러(약 6415만 원)가 넘는다. 톱클래스에 속한다는 경영대학원은 등록금이 10만 달러를 상회한다. 이에 미국 경영대학원에 유학한 외국 학생 상당수가 MBA 졸업 때쯤 엄청난 빚을 떠안곤 한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부분 대출받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학생 대출 규모가 1조3000억 달러(약 1390조 원)에 이르고, 이 중 40%는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 15%가 빌린 것이라고 한다. 대학생보다 대학원생이 훨씬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GMAC 2017년 리포트에 의하면 최근 미국 경영대학원 70% 이상에서 지원자 수가 늘었다. 재정난 탓에 이름난 미국 풀타임 경영대학원이 문을 닫는 마당에 어찌된 일일까. 막대한 학비 부담으로 풀타임 경영대학원 진학을 꺼리던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많은 경영대학원 지원자가 2년 풀타임 프로그램 대신, 일하면서 대학원에 다닐 수 있는 파트타임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풀타임 경영대학원을 없애는 대학들도 파트타임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고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많은 경영대학원이 여러 분야를 폭넓게 다루는 프로그램 대신 특화된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대학원 지원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인 동시에 특화된 학위를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문지식 습득 중요성 더 커져

    풀타임 MBA 프로그램을 폐지키로 한 위스콘신 경영대학원 역시 최근 파트타임 경영대학원과 회계·금융에 특화된 새로운 석사과정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처럼 많은 세계 대학이 아주 좁은 분야에 전문화된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변화하는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면 영국 레딩대는 수료증을 주는 헤지펀드 운용 프로그램을 올해에는 홍콩, 싱가포르, 도쿄, 뉴욕에서도 운용한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강의를 접목한 파트타임 프로그램으로,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수강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 역시 교수뿐 아니라 최고 헤지펀드 커리어를 가진 실무자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금융권에 종사하면서 헤지펀드 등의 자금을 투자하거나 운용하는 쪽으로 커리어 전환을 원하는 사람에게 상당히 유익하게 짜여 있다. 학위 대신 수료증을 주지만 경력 전환을 꾀하는 이들이 꽤 많은 돈을 내고 수강한다. 이제는 학위보다 전문화된 지식 습득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최근에 출간된 ‘획기적인 대학(The Innovative University)’의 저자 클레이턴 크리스턴슨(Clayton Christensen)과 헨리 아이링(Henry Eyring)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대학의 절반 이상이 10년 안에 파산하고 문을 닫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학들이 지금 같은 경영구조로는 테드(TED) 등 온라인 강의와 경쟁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온라인 강의가 줄 수 없는 것을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에게 지식 전달뿐 아니라 삶과 커리어에 영감을 줄 수 있는 훌륭한 교수다. 대학이 시대 변화에 맞춰 살아남아야만 훌륭한 교수도 캠퍼스 안에서 그 존재 가치를 계속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영주닐슨
    •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
    •전 Citi 뉴욕 본사 G10 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J.P.Morgan 뉴욕 본사 채권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Barclays Global Investors 채권 리서치 오피서
    •전 Allianz Dresdner Asset Management 헤지펀드 리서치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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