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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층 아니면 못 해” 은마아파트의 고육책

재건축 층수 공방, 서울시 “원칙대로 35층 이하” vs 은마 측 “타산 안 맞아”

“49층 아니면 못 해” 은마아파트의 고육책

“49층 아니면 못 해”  은마아파트의 고육책

1979년 지은 서울 은마아파트는 서울지하철 3호선 대치역을 끼고 있고, 학원가와 인접해 강남권 재건축 사업의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위). 서울 은마아파트가 157억 원을 들여 선택한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재건축 설계안 조감도. [박해윤 기자]

서울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가운데 핵심 단지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8월 16일 열린 제14차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심의에서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추진위)가 상정한 정비계획안이 ‘미심의’ 판정을 받은 것. 이날 도계위 위원들은 1시간여 논의 끝에 “높이가 서울시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기본계획 변경 시 조건 사항이 이행되지 않는 등 심의 요건 자체가 불충분하다”며 심의 자체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시가 미심의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은마아파트 측이 현재 14층인 아파트를 철거하고 최고 49층 높이의 재건축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층수 제한을 ‘35층 이하’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2015년 12월부터 심의 상정 전 정비계획안을 조율하고자 5차례에 걸쳐 사전협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추진위는 49층 높이인 기존 정비계획안을 고수해왔다. 결국 서울시는 조정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도계위에 안건을 상정했고, 도계위도 심의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첫 도시계획위원회 미심의 판정

18년째 진행 중인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그동안 매번 암초에 부딪혔다. 은마아파트는 민간건설업체 한보주택이 1978년 5월 사업승인을 취득해 79년 9월 준공했다. 23만9224㎡ 대지에 14층 규모 건물 28개 동이 들어섰고 101㎡ 2674가구, 115㎡ 1750가구 등 총 4424가구로 구성됐다. 재건축 사업 논의는 완공 20년 후인 99년 시작됐다. 2년 뒤 추진위가 구성됐고, 2002년 7월 삼성물산과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안전진단에서 3차례 탈락하면서 사업이 늦어졌고, 2010년 3월에야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또 다른 복병은 서울시에서 마련한 정비계획안이었다. 서울시는 2010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은마아파트 단지 중간에 남북으로 관통하는 폭 15m의 도시계획도로를 신설하도록 했다. 이 도로는 버스를 포함한 모든 차량이 다니는 길로, 주민들은 단지가 둘로 나뉘면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계획 폐지를 요청해왔다. 이후 도계위는 두 차례 자문을 통해 은마아파트 단지 내 도로 신설 계획을 폐지하는 문제를 논의했고, 2015년 9월 은마아파트의 기본계획을 변경하면서 해당 도로를 설치하지 않는 대신 보차혼용통로를 만들고, 상습침수지역임을 고려해 빗물저류시설을 설치하며, 공원 등을 기부채납하는 등 공공기여 방안을 반영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49층 아니면 못 해”  은마아파트의 고육책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 캡처]


35층 층수 제한 놓고 갈등

그러나 진척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이번에는 층수 제한을 놓고 표류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4년 발표한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플랜)에서 은마아파트가 있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층수 제한을 ‘35층 이하’로 규정했다(표 참조). 서울플랜에 따르면 서울시는 층수 제한을 하면서 ‘기성 시가지 내 무분별한 초고층건물의 난립을 방지하고, 도시 경관과 도시 공간 구조를 고려한 계획적인 높이 관리가 이뤄지도록 중심지 위계별 최고 층수를 차등관리한다’고 밝혔다. 51층 이상인 초고층건물은 업무·상업·주거·문화·여가시설 등 용도가 복합된 구조로 도심·광역 중심 내 일반상업지역 및 준주거지역으로 한정해 짓도록 했다.

그러나 추진위는 ‘서울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만한 특화된 디자인의 건축물은 층수를 상향 조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며 디자인 특화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추진위는 지난해 설계용역 응모 자격을 발표하면서 최근 10년간 국내 또는 외국 정부가 발주한 국제공모전에서 입상한 실적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해외 설계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했다. 또한 설계비로 재건축 사업 사상 최고인 157억 원을 제시했다.

이에 인천국제공항, 부산 영화의전당, W서울워커힐(현 비스타워커힐서울), 동아미디어센터, 상암동 MBC 신사옥 등 주요 관공서와 기업 사옥을 설계한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희림)가 네덜란드 유엔스튜디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계 공모에 참여했다. 지난해 9월 주민총회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희림의 설계안이 최종 선정됐다. 설계안을 보면 단지 중앙에 49층 높이 6개 동을 용이 승천하는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남북을 관통하는 50m 폭의 통경축을 확보해 주민 편의를 높였다. 또 아파트 건물 지상층에는 1km가량의 가로대면형 상가와 고급 부대시설이 연계되도록 했으며, 일부 상가를 대로변 1층에 배치해 사업성도 높였다.

추진위는 이 설계안이 도계위 심의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 35층 이하 규정을 예외 없이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창환 서울시 도시계획국 종합계획팀장은 “디자인이 특화된 아파트 재건축은 50층 이하로 증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서울플랜에는 없다.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마아파트가 계속 49층을 고집한다면 도계위 심의 통과가 어려울 것이다. 추진위 쪽에서도 설계안 변경을 고민하는 걸로 아는데, 어쨌든 다시 도계위의 검토를 받으려면 대안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도계위 결정이 나고 일주일 뒤 은마아파트를 찾았다. 상가 내 빼곡히 들어선 부동산공인중개업소 벽면에는 매물을 알리는 전단이 가득 붙어 있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7월 말 은마아파트는 전용면적 101㎡가 최고 13억8000만 원에 거래됐는데, 8·2 부동산대책이 발표되고 20일 후 12억 원에 나온 급매물도 있었다. 115㎡도 7월 말 최고 15억7000만 원에 거래됐지만 14억2000만~14억8000만 원에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재건축 사업에 진척이 없고, 대통령이 집값 상승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이곳에서 20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했다는 한 공인중개사는 “언론사에서 자꾸 찾아오는데 기사가 나갔다 집값이 떨어지면 안 된다”며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지만, 재건축 사업성에 대해 재차 묻자 이내 “은마아파트는 재건축만 되면 3.3m2당 1억 원까지 갈 곳”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은마아파트는 강남구에서 개포주공1단지 다음으로 대지가 넓은 곳인데 그쪽 분양권이 현재 3.3m2당 6000만 원이니 여기는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도계위 미심의 결정, 내년부터 시행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재건축 조합원 지위 승계 불가 등 각종 악조건에 대해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더라도 강남권에서 학군, 교통, 입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아파트는 은마아파트가 유일하기 때문에 길게 보고 재건축을 추진하면 초과이익을 국가에 내고도 수익이 날 것”이라며 “이곳에 장기 거주한 입주민 중에는 70, 80대도 많은데 하나같이 ‘재건축되면 들어가 살다 죽을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49층을 고집하는 이상 재건축 사업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30층짜리 2개 동이 들어서는 것보다 49층짜리 1개 동을 세우는 것이 동 간 거리를 넓히고 삶의 질도 높이기 때문에 추진위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잠실주공5단지도 도로를 기부채납하고 용도지역을 일반주거에서 일반상업 및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해 높이를 50층까지 하기로 한 만큼 은마아파트도 고층으로 증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잠실주공5단지는 5월 서울시로부터 잠실역사거리 코너에 6개 동을 50층 주상복합으로 짓는 정비계획안을 사실상 허가받았다. 당초 서울시는 35층 층수 제한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잠실주공5단지 조합 측이 단지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폭 15m 도로를 조성하는 대신, 35층이 넘는 건물을 기존 계획보다 3개 동 추가하는 계획안을 내놓자 받아들였다. 조합 측이 재건축 사업에 따른 일대의 교통 혼잡 대책을 마련하라는 서울시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트리플 악재에 떠나는 사람도

“49층 아니면 못 해”  은마아파트의 고육책

은마아파트 단지 내 관리동 1층에 위치한 추진위 사무실. 서울 은마아파트 상가 내 한 부동산공인중개 매물을 알리는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다. 이곳 부동산 관계자들은 “8·2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이후 집값이 소폭 떨어졌다”고 전했다(왼쪽부터).[박해윤 기자]

원래 조합 측은 이 도로가 전체 대지의 20%에 해당하는 데다 신설 도로로 단지가 나뉘면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혀왔다. 하지만 층수를 35층으로 못 박으면 사업성이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도로를 기부채납하는 대신 도로 남쪽으로 50층 높이 주상복합 6개 동과 40층짜리 호텔·오피스 1개 동을 짓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역(송파구청) 사거리 인근에 50층짜리 동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나머지는 높이를 다르게 해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을 피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계획안은 8월 30일 도계위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인데, 앞서 서울시와 조율을 마친 덕에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재건축 추진 초기에만 해도 ‘재건축만 되면 대박’이라는 인식 때문에 은마아파트는 ‘금(金)마아파트’로 불렸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이 난항을 겪자 집을 팔고 이사하는 이도 생기고 있다. 6월까지 은마아파트 주민이었다는 이모 씨는 “10여 년 동안 거주했는데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더 거주할 이유가 없어 6월 집값이 상당히 올랐다는 판단 하에 집을 팔았다”고 말했다. 매도 이유에 대해서는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면 적어도 1억~2억 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고, 서울시가 35층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49층으로 짓는 것은 무리일 듯했다. 그럼 수익성도 그리 높을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35층을 고집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국토계획법 시행령) 제10조 제3항은 도시기본계획 수립기준을 ‘여건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포괄적이고 개략적으로 수립하도록 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플랜은 공동주택의 높이를 35층으로 구체적으로 제한했다. 반면 ‘2030부산도시기본계획’ ‘2030인천도시기본계획’ ‘2030광주도시기본계획’ 등 주요 거점도시의 기본계획에는 건축물의 구체적인 층수가 명시돼 있지 않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3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내놓은 ‘공동주택 높이 규제 논의와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는 ‘35층 기준이 장기간 전문가의 논의와 시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회적 합의 사항’이라고 했다. 또 서울시는 ‘용도지역에 따라 허용되는 개발밀도와 최고 높이가 비례하도록 높이 기준을 설정했기 때문에 근거가 충분하다’는 의견이다. 높이 규제는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에 대해 서울시는 ‘용적률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재산권 침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재산권 침해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원 원장은 “35층이든, 49층이든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은 정해져 있어 가구 수에는 변화가 없다. 단지 49층으로 지으면 동이 줄어들어 동 간 거리가 넓어지고, 일조권이 확보되며, 그만큼 단지 내 녹지공간이 늘어날 걸로 기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층수를 높이면 수익성이 올라간다기보다 주거의 질이 좋아진다. 주거의 질은 향후 집값 상승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49층 아니면 못 해”  은마아파트의 고육책

49층 추진하려면 공공기여 더 필요

일각에서는 아직 변경안을 추진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만약 8월 16일 열린 도계위에서 ‘부결’ 판정을 받았다면 향후 5년간 재상정이 불가능했다. 도계위가 ‘미심의’ 결정을 내린 것은 변경안을 제출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은마아파트가 49층 증축을 관철하려면 일정 부분 양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대걸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변호사는 “아파트가 사유재산이긴 하지만 재건축으로 조합원에게 돌아갈 초과이익이 크기 때문에 공공성을 무시하고 진행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은마아파트가 잠실주공5단지처럼 50층 이하 계획안을 추진하려면 잠실주공5단지 내 폭 15m 도로 신설과 같은 기부채납 방안을 수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울 시내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35층 이상 아파트가 들어선 경우는 없다. 서울시가 층수 제한을 두고 있는 만큼 다른 재건축 단지와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은마아파트도 49층을 고집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기여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은마아파트 상가 내 부동산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추진위가 다양한 공공기여 방안을 포함한 변경안을 마련해 49층 재건축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 부동산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원래 단지 안에 초등학교를 짓기로 했는데 대지가 부족한 관계로 짓지 않는 대신 추진위가 미도아파트 앞 대곡초교를 보수·증축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며 “이 밖에 서울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에 은마아파트 방향의 출입구를 신설하는 방안, 인근 도로를 정비하는 방안 등 각종 공공기여 방안을 포함해 제3종 일반주거지역을 일반상업 및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하면 49층 증축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진위 측 의견을 듣고자 8월 말 단지 내 관리동 1층에 위치한 추진위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직원들은 “위원장만 사업에 대해 말할 수 있는데 서울시에 회의를 하러 가서 자리에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후 수차례 전화했지만 추진위 측 의견을 들을 수 없었다.


입력 2017-08-28 11:12:18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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