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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물 만난 맥주시장

맥없는 맥주는 가라

‘보리  +  홉   + 물’이 빚어내는 오감만족 수제맥주의 세계

맥없는 맥주는 가라

맥없는 맥주는 가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수제맥주들. 왼쪽부터 Peach Wheat, Highway to Helles, Cheer Beer, Duck Duck Goose, Southside IPL, Goose IPA.[홍중식 기자]

바야흐로 ‘맥덕’(맥주덕후의 준말로, 맥주애호가를 이르는 말) 시대다. 맥주를 소주에 타 먹는 술, 혹은 거나하게 취한 뒤 입가심으로 마시는 술 정도로 여기던 이들에게 맥주 ‘맛’은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이제는 다르다. 요즘 사람들은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맛과 향, 재료와 발효 방식을 논한다. 한 테이블 위에 다양한 색과 풍미를 자랑하는 맥주 여러 잔을 시켜놓고 ‘테이스팅’을 즐기는 이도 있다.

그렇게 맥주에 푹 빠진 이들은 더 맛있는 맥주를 찾아 마트 수입맥주 판매대와 보틀숍(해외 수제맥주 전문점), 직접 맥주를 빚어 내놓는 수제맥주펍 등을 돌아다닌다. 양조시설과 펍이 같이 있어 마치 목장 우유를 마시듯 갓 생산한 맥주를 마실 수 있게 꾸민 브루펍(brew pub)도 인기가 높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다품종 소량생산 맥주의 매력

“자, 이건 어떤가요?”

필립 랭크모어 ‘구스 아일랜드 브루 하우스’ 브루어(brewer·맥주양조자)가 맥주잔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직접 빚은 ‘Cheer Beer APA’를 시음해보라고 건넨 참이다. 직전에 따랐던 ‘Peach Wheat’에 비해 색도, 맛도 확실히 진했다. 전자는 맥주 종류 중 ‘아메리칸 페일 에일’, 후자는 ‘바이젠’에 속한다. 호주 출신으로 화학을 전공한 필립은 다양한 맥주의 세계에 반해 양조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Sofie’예요. 와인 배럴에서 숙성시켜 일반 맥주보다 풍부한 맛을 내죠.”

필립에 따르면 ‘Sofie’는 에일의 한 종류인 세종(Saison)이다. 와인병처럼 생긴 병에 담겨 색다른 멋을 느끼게 했다.

흔히 수제맥주 하면 생맥주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이 그 나름의 취향과 비법을 담아 빚은 맥주는 모두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로 불린다. 해외의 크고 작은 양조장은 이렇게 생산한 맥주를 병에 넣어 세계 각국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해외 마트 매대에 올라가는 ‘상품’이 된 경우에도 ‘수제’맥주라는 고유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 맥주의 각양각색 병 모양과 개성 넘치는 레이블 디자인, 그리고 독특한 맛과 향은 맥주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수제맥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8년 미국 시카고에서 ‘동네’ 수제맥주 전문점으로 출발해 이제는 세계적 맥주 브랜드가 된 ‘구스 아일랜드’ 역시 ‘Sofie’를 비롯해 수많은 수제맥주 상품을 판매 중이다. 우리나라도 ‘동네’ 맥주가게에서 시작해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브루펍이 많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히든 트랙’은 로고에 동대문 그림을 넣었을 만큼 ‘지역색’이 뚜렷하다. 매장 내 메뉴판에는 ‘ANAM, KOREA UNIV.’라고 써넣었다. 이 펍이 안암동 고려대와 가까운 곳에 있음을 특징으로 내세운 것이다. 2014년 친구 두 명과 함께 ‘히든 트랙’을 오픈한 정인용 대표는 “많은 수제맥주가 지역성을 강조한다. 자신이 출발한 장소의 개성을 맥주에 담아내고, 그에 공감하는 ‘단골’을 바탕으로 성장해가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이 펍의 대표 맥주에 ‘엘리제’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엘리제’는 고려대 응원가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이다. 제기동과 안암동 일대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름에서 아련한 향수와 호기심을 동시에 느낄 법하다.

인상적인 건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의 ‘Cheer Beer’와 같이 아메리칸 페일 에일 종류인 ‘엘리제’의 맛이 상대적으로 좀 더 가볍고 부드러웠다는 점이다. 정 대표는 “나와 공동창업자 모두 쓴맛을 싫어한다. 우리 입에 맞는 맥주를 만들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게 브루어리를 운영하는 기쁨”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브루어의 기호에 따라 양조법과 첨가물이 달라지고, 그 결과로 같은 종류에서도 천차만별의 맛과 향을 낼 수 있는 게 수제맥주의 특징이다. 맥주 애호가가 수제맥주의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정 대표는 “우리와 취향이 맞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근처에 맛있는 맥줏집이 있어’ 하면서 친구들을 데려오고, 그렇게 ‘히든 트랙’이 점점 알려져 더 많은 사람이 우리 맥주를 마시게 되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히든 트랙’의 맥주는 서울 성수동, 충정로 등 여러 지역의 수제맥주펍에 팔려나가고 있다. 정 대표는 “언젠가 ‘히든 트랙’이 다른 지역에 진출한다 해도 로고의 동대문과 대표 맥주 ‘엘리제’가 담고 있는 ‘고려대 앞 동네 펍’의 개성은 유지해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 시작해 세계로

맥없는 맥주는 가라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의 양조 장비. 양조장과 펍이 한 자리에 있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히든 트랙’. 히든 트랙의 인기 맥주 중 하나인 Blackout. 초콜릿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스타우트다(위부터).[홍중식 기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기업인과 만남 자리에서 건배주로 사용한 ‘강서맥주’도 바로 이 개성 덕에 인기를 끌고 있는 맥주다. 지난해 10월부터 강서맥주를 판매해온 홈플러스 관계자는 “강서맥주가 올해 3~6월 500㎖ 미만 병맥주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처음 출시했을 때부터 지역명을 붙인 맥주에 대한 선호가 뚜렷이 나타나 3월 ‘달서맥주’, 6월 ‘해운대맥주’, 8월 ‘서빙고맥주’ 등 다른 지역 이름을 붙인 수제맥주를 추가로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이름만 ‘달서’ ‘해운대’가 아니다. ‘해운대맥주’를 만든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의 김우진 팀장은 이 맥주에 대해 “해운대라는 이름에 맞게 여름 해변에서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콘셉트로 삼았다. 이를 위해 알코올 도수(4.2%)를 낮추고 향도 은은하게 했다. 캔 디자인에는 해운대를 대표하는 건축물과 해변을 산책하는 커플의 모습을 넣었다”고 밝혔다.

전국 각지 수제맥줏집에서도 이처럼 지역 이름을 붙인 개성 만점 맥주를 만날 수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에선 ‘성수맥주’, 은평구 역촌동 ‘브릭하우스 76’에선 ‘은평맥주’를 각각 판매한다. 부산 기장의 브루어리 ‘아키투 브루잉’의 대표 맥주는 부산 달맞이 고개를 연상케 하는 ‘달맞이’다. 

사단법인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6월 현재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은 71개이며 대부분 최근 몇 년 새 문을 열었다. 2014년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양조장의 일반 유통이 허용된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소규모 맥주 양조가 허용된 건 2002년부터지만, 그동안 수제맥주는 양조 현장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경쟁력을 갖추기만 하면 대형마트에서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마침 국내 맥주 문화가 성숙하고, 정부가 수제맥주 첨가물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등 수제맥주를 둘러싼 환경이 빠른 속도로 좋아지면서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는 중소규모 양조장은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구스 아일랜드 브루하우스’ 마케팅 담당자 저스틴 김 씨는 “수제맥주를 젊은 층의 전유물로 아는 분이 많은데 실제로는 40, 50대 직장인 상당수가 이미 수제맥주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맥없는 맥주는 가라

홈플러스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지역 맥주들. [사진 제공 · 홈플러스


눈으로, 입으로 즐기는 명품 브루어리 7‘수제맥주 전성시대’에 특히 눈여겨봐야 할 건 맥주 양조장, 즉 브루어리다. 같은 종류의 맥주라도 어디서 누가 생산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고를 때 생산지역, 생산자명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맥주 전문가 3인이 추천한 브루어리를 소개한다. 수제맥주펍 메뉴판에서 이들 브루어리의 이름을 발견한다면 한 번 믿고 선택해보자.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우리 술 전문가인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은 ‘맥주학교’를 운영하며 수강생들에게 맥주 제조법을 전수한 맥주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서구에서는 지역마다 해당 지역 특산물 등을 활용한 맥주가 생산된다. 서구 맥주가 한국 막걸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우리 지역 문화와 결합해 토착화에 성공한 브루어리를 눈여겨볼 만하다”고 소개했다. 부산 기장 ‘아키투 브루잉’, 충북 제천 ‘뱅크 크릭 브루어리’, 그리고 서울 동대문 ‘히든 트랙’이 그가 강추하는 ‘한국형’ 브루어리다.

김성준 자가양조공간 SOMA 대표
서울 성동구 옥수동 자가양조공간 SOMA는 술 빚는 법을 알려주고, 직접 술을 빚을 수 있도록 장소도 빌려주는 독특한 공간이다.

2012년 9월부터 이곳을 운영해온 김성준 대표는 “과거엔 자신이 마실 와인을 만들어보려는 이가 주였다면, 최근엔 맥주 제조가 인기 있다”며 “자기 취향에 맞는 맥주를 만드는 데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가 추천하는 ‘개성만점’ 브루어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경기 남양주 ‘더 핸드 앤 몰트 브루어리’, 마지막으로 충북 제천 ‘뱅크 크릭 브루어리’다.

조재기 ‘웨이베터’ 셰프, 시서론(cicerone)

와인에 소믈리에가 있다면, 맥주에는 시서론이 있다. 시서론은 2007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문 자격으로 다양한 맥주 스타일을 이해하고, 재료와 맛 향 등을 감별하며, 각각의 맥주에 어울리는 음식을 매칭하는 전문가로 통한다. 미국 유학 중 이 자격을 취득한 조 셰프는 우리나라 1세대 시서론으로 손꼽힌다. 그는 질 좋은 맥주를 생산할 뿐 아니라, 직접 방문하면 맥주의 멋과 매력을 새삼 깨닫게 할 수 있는 브루어리로 제주 한림읍 ‘제주 브루어리’, 충북 음성 ‘코리아 크래프트 브루어리’, 경기 남양주 ‘더 핸드 앤 몰트 브루어리’를 꼽았다.





입력 2017-08-04 17:25:10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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