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2017.03.29

정치

15분에 1억? 기탁금이 너무해

자유한국당 경선 후보들 기탁금 큰 고민…탄핵인용 후 모금시간 없어, “집 팔아야 할 판”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7-03-27 11: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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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은 전체 의석의 3분의 1에 달하는 93명. 여기에 광역자치단체장(6명)과 기초단체장(112명) 등 외형만으로 보면 제1당 부럽지 않은 거대 제2당이며, 1년 전만 해도 과반 의석을 가진 절대 위상의 집권여당이었다.

    하지만 촛불정국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유권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대선 이후 존립과 정체성을 걱정해야 할 절박한 처지가 됐다. 당장 이번 대선부터 새누리당에서 갈라진 바른정당과 누가 ‘보수 적통(嫡統)’인지를 놓고 쉽지 않은 싸움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당 대선후보만큼은 여느 정당과 비교해 가장 풍족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무려 9명이 19대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해 1, 2차 컷오프(예비경선) 경쟁을 치른 것. 1억 원이라는 기탁금(경선후보 등록비용)을 지불한 9명 외에도 선거비용 부담으로 후보 등록에 나서지 못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정진석, 정우택, 인명진 등 전·현직 지도부까지 더하면 차기 당 지도부 후보군이 1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얘기다.

    경선 참여자는 각자 대선 출마로 정치적 중량감을 키우면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계산인 셈. 자유한국당의 미래가 아직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기이면서도 상당수 정치인에게는 새로운 기회임을 입증하는 증거다.





    유세 분당 700만 원…돈 낼 일 ‘첩첩산중’

    “집을 팔아야 될 판입니다.”(김진태 의원)
    “경선 기간에 비해 기탁금이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조경태 의원)

    자유한국당 1차 예비경선의 최대 화제는 단연 1억 원이라는 적잖은 규모의 예비경선 참여비용이었다. 이전 두 차례 대선에서 2억5000만 원의 경선 기탁금을 받은 적이 있지만 본선과 예선으로 나눠 기탁금을 걷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월 17일 단 하루 15분간 정견 발표 뒤 치르는 이틀간의 여론조사(책임당원 70%, 일반국민 30%)를 통해 탈락자 3명이 결정되기 때문에 여의도에서는 “유세 분당 700만 원”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돌았다(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예비경선 참여비용이 5000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선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을 치르려면 전당대회와 여론조사에 들어갈 비용이 필요한데, 이를 기탁금 명목으로 후보들로부터 갹출한 것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1차와 2차 컷을 통과한 본선 경쟁자 4명에게는 추가로 2억 원을 더 걷는다. 게다가 이는 참여비용일 뿐이고 실제 전국을 돌며 유세를 하려면 별도의 선거비용이 필요하다. 나아가 정식으로 당 대선후보가 되면  3억 원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해야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충분한 자금력 없이는 큰 꿈을 꾸지 말라는 얘기다.

    정치인은 대개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모금한 후원금으로 이를 충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이 처한 상황이 무척이나 특이했다. 1, 2차 예비경선은 후원금을 모을 시간적 여유가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지난해 촛불집회 시작과 동시에 차기 대선 경쟁이 본격화됐지만, 박 전 대통령을 보호해야 할 당시 여당 처지에서는 탄핵이 확정될 때까지 ‘차기(次期)’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묘한 상황이었던 것.

    그사이 민주당 후보들은 짧은 시간에 11억 원(이재명), 7억 원(문재인), 5억 원(안희정)을 모금하는 기세를 올렸지만 자유한국당 후보들은 탄핵(3월 10일) 직후 불과 사나흘 안에 1억 원을 만들어야 했다. 생짜 자기 돈으로 기탁금을 마련해야 했던 것.

    실제 3월 17일 열린 자유한국당 비전대회 정견 발표 당시 김진태 의원은 “이 연설은 1분에 700만 원이 넘는다”며 “내 이야기를 잘 들으셔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바람과 달리 정견 발표는 당 밖에선 화제가 되지 못했다. 당시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된 정견 발표 시청 인원은 1000여 명에 그쳤다.

    자유한국당 당직자는 “9인의 예비경선과 4인의 본경선 참여로 당이 거둬들이는 기탁금은 총 17억 원이다. 당에서는 전당대회, TV토론회, 여론조사 등의 비용을 추계해 총비용을 맞춘 것”이라며 “기탁금은 모두 비용으로 쓰여 당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3월 18일 공개된 1차 컷 탈락자는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용한 전 청와대 직속 청년위원장, 조경태 의원 등 3명이다. 김 전 논설위원은 TV토론회 등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쌓은 대표적인 보수논객이지만 책임당원 비중이 워낙 높은 투표의 특성상 1차 관문을 넘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실제 불리한 상황임을 알고 경선 참여를 주저했지만 “보수의 기치를 새로이 세워 할 정도의 엄중한 상황”이라는 의지로 1억 원을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신 전 위원장과 조 의원 역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지역기반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어 1차 탈락이란 쓴잔을 마셨다.



    무주공산 ‘우파당’…친박이냐, 아니냐

    3월 20일 공개된 2차 컷오프 역시 같은 과정으로 진행됐다. 여기서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의 중간에 위치한 원유철, 안상수 후보가 탈락했다.

    정확한 순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탈락한 후보들은 친박과 비박 사이에서 뚜렷한 색깔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자유한국당은 1, 2차 컷오프를 통해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진태 의원, 홍준표 경남도지사(이상 기호순) 등 총 4명의 본경선 진출자를 확정했다.

    당내 역학구도로만 보면 비박계인 홍 지사와 친박계인 나머지 3명의 대결이 된 셈. 6명의 2차 컷오프 진출자 가운데 친박계 인사가 절반을 넘어 친박계가 여전히 당의 주류임을 입증한 셈이기도 하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예비경선 결과 자유한국당은 역시 ‘친박당’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친박계가 어려울 때 더욱 똘똘 뭉쳐야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기류는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비전대회 때부터 드러났다. 친박계 지지자들은 인명진-정우택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했다.

    반면 김진태, 김관용 등 친박 성향의 후보들에게는 대놓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당 이름까지 바꾸며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밝힌 신당이 다시금 ‘친박당’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정황 증거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탄핵정국의 책임을 지고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경북 상주)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던 방침을 뒤집고, 김재원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을 후보로 내세운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10월 사퇴한 인물.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나서 “탄핵정국에 책임 있는 분이지만 부득이 공천됐다”며 “당의 책임자로서 어떤 비난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불만을 표출할 정도였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이번 경선은 당의 진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 같다”며 “친박 후보가 이길 경우 친박당으로 쪼그라들 수 있어 경선이 흥행하지 못하면 당의 미래가 어두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3월 22〜24일 최종후보 4명의 권역별 비전대회와 TV토론 뒤 실시하는 책임당원 현장투표(50%) 및 일반국민 여론조사(50%) 결과를 토대로 3월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확정,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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