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커버스토리

인용이 대세? 기각설 모락?

“국민주권, 대의민주제 위반” vs “혐의 입증 안 됐고, 짧은 심리도 문제”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3-03 17: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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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 25일 취임식에서 헌법 제69조 규정에 따라 위와 같이 선서했다. 그로부터 임기 3년 10개월째에 접어든 지난해 12월 9일, 국회는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20대 국회 의안번호 4092번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234, 반대 56, 무효 7,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헌법재판소(헌재)는 빠르면 3월 10일, 늦어도 13일에는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의 최종 결정에 앞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인용’과 ‘기각’을 주장하는 양쪽 논거를 들어봤다.



    탄핵 인용 불가피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공직으로부터의 파면은 대통령의 직무수행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을 상회하는 ‘손상된 근본적 헌법질서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의 신임을 잃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며 주요 국가정책에 대하여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파면은 국론의 분열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론의 통일에 기여할 것이다. 이 탄핵소추로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의사와 신임을 배반하는 권한행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준엄한 헌법원칙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의결서’ 중 일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의결서’에 언급된 것처럼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최순실,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주요 인물의 공소장에 기초하고 있다. 즉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범죄 사실과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관련성이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더는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게 탄핵소추안의 주요 내용이다.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J씨는 “다수 국민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며 대통령이 헌법 가치를 위반했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정치 재판 성격이 짙은 헌재가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박영수 특검팀에서 밝힌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사건도 박 대통령이 국민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헌법 가치 위반 사항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등에 관여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청와대 문건 유출에 관여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이 모두 구속됐다”면서 “구속된 피의자들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고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덧붙였다.

    J 변호사는 또한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 기각 이후 잔여 임기가 더 많아 기각의 실익이 컸지만, 박 대통령은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아 기각에 따른 실익이 크지 않다”며 “헌재가 이 같은 ‘실익’까지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중점적으로 심리하기로 한 5가지 쟁점(비선 조직, 대통령 권한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위반, 뇌물수수) 중 하나만 혐의가 인정돼도 탄핵은 가능하다. 따라서 헌법재판관 중 일부가 사안에 반대하더라도 대통령 탄핵안 자체는 만장일치로 인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대통령 변호인단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방식을 문제 삼은 것에 대해서는 “물론 국회에서 13개 내용을 각각 표결에 부쳤으면 아예 이런 시비조차 없었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때도 선거법 위반, 측근 비리, 국가경제 악화 3가지 항목을 한번에 의결했다. 이미 전례가 있고 헌재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탄핵=대통령 지지표 무효화

    증거 불충분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형사재판과 헌법재판을 동일시해 생기는 문제다. 물론 헌법재판소법에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형사재판과 똑같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증거의 범위나 종류가 다를 수 있다. 이 또한 헌재에서 증거로 받아들인 부분이므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헌법재판관이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기각’을 결정하려면 탄핵 사유로 적시된 사안마다 ‘기각 사유’를 서술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해 국민주권주의와 대의제를 위반한 것과 공무원 임면권 위반이 주요 인용 사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은 주권자인 자신들을 대신해 국정을 수행해야 할 책임자로 박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데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통해 최순실에게 전달된 청와대 문건이 수백 개에 이르고, 최순실의 의견이 정 전 비서관을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최순실 얘기대로 국정이 수행된 사례도 여럿 나왔다. 결국 최씨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한 꼴 아닌가.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를 통해 권한을 위임한 것을 위배했다. 또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관련해 대한승마협회 등을 조사한 뒤 양측이 문제 있다는 보고서를 쓴 공무원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해 좌천시키고, 나중에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말로 사실상 (대통령이) 해임을 지시한 것은 공무원 임면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맞서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맞불 시위대가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정기승 전 대법관, 김평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원로 법조인 9명이 2월 들어 주요 일간지에 ‘탄핵심판에 관한 법조인의 의견’이라는 광고를 내고 공개적으로 탄핵심판에 반대 의견을 밝힌 데 이어, 대통령 변호인단에 뒤늦게 합류했다. 특히 김평우 변호사는 ‘법치와 애국모임’(애국모임)이라는 인터넷 네이버 카페를 개설했다. 애국모임은 2월 하순 주요 일간지에 박근혜 대통령은 죄가 없다는 광고를 연달아 게시하며 박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애국모임 회원이자 대통령 변호인단 일원인 조원룡 법무법인 범무 대표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논의부터 신중했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 대통령은 전 국민의 51.6% 지지율을 얻어 당선했다”며 “탄핵은 대통령 임기를 조기에 종결하는 의미 외에도 2012년 당시 박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의 표를 무효화하는 뜻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다수 국민의 선택을 저버리는 일인 만큼 대통령 탄핵은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해 신중하게 이뤄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변호인단의 서석구 변호사 역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추천, 사단법인 미르 모금, 차은택 추천 등 단 하나도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내용이 없다. 전부 주변인들의 책임일 뿐이다. 따라서 고영태와 차은택 등이 처벌받아야지, 대통령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세월호 참사 관련 부분이다. 김평우 변호사는 2월 22일 대통령 탄핵심판 16차 변론에서 “세월호 참사를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려 탄핵소추안에 넣은 것은 문제다. 탄핵소추안에는 헌법 제10조의 생명권 보장을 침해했다고 쓰여 있지만 대통령이 해당 사건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만일 13개 사안을 개별 투표했다면 다른 사유는 몰라도 세월호 참사는 탄핵 사유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도 “법조인 출신 의원들만 해도 이 사안이 탄핵 사유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모호한 13개 혐의의 위법성을 한번에 표결하도록 뭉뚱그리면 각 표의 의사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 일부 의원이 대통령에 대한 나쁜 여론에 흔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회에서 13개 항목 전체를 두고 탄핵소추안 표결을 했다면 아예 헌재로 탄핵소추안이 가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고도 말했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법조인들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적힌 13개 혐의 가운데 일부가 인정된다 해도 이것이 반드시 탄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을 예로 든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됐지만 헌재는 ‘대통령의 법 위반이 헌법질서를 역행하거나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반행위라 볼 수 없다’며 탄핵을 기각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도 혐의가 일부 인정된다 해도 탄핵이 인용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이들은 탄핵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관이 8명인 것도 ‘헌법의 평등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헌재가 인용할 경우에 대비해 재심 청구도 준비 중이다.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로 활동해온 이중환 변호사는 “짧은 심리 기간으로 국가 최고책임자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하겠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 변호인단은 “무능으로 비치는 대통령의 정치적 실수를 탄핵이란 중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동흡 법무법인 우면 대표변호사는 2월 27일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위,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은 탄핵심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헌재가 판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문에도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은 헌법적 의무에 해당하지만 이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헌재 결정 전 사임 결단 주장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 결정에 영향을 끼칠 마지막 변수로 대통령의 거취 표명이 거론된다. 박 대통령이 헌재의 발표 직전 스스로 물러날 뜻을 밝히고 헌재가 탄핵 결정문을 발표하기 전 청와대에서 걸어나와 ‘대통령 궐위’ 상황이 전개되면 ‘대통령 탄핵’은 ‘원인 무효’가 돼 헌재가 각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 사임을 전제로 헌재가 각하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럼에도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임에 따른 각하 의견은 ‘대통령 사임은 그 자체로 효력이 발휘되기 때문에 탄핵 대상이 없어져 탄핵 결정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고, 반대 의견은 ‘사임과 파면은 효력이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이 사임하더라도 파면 여부는 결정해 의견을 남겨야 한다’는 것.

    만약 박 대통령이 헌재 결정 전 사임하면 대통령 탄핵 중 사임에 따른 각하와 기각이란 결정도 이번 헌재가 사상 최초로 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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