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2017.03.01

인터뷰 | 권영해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공동대표

“탄핵 인용되면 국민저항권 발동”

“제대로 심리 안 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결정 수긍 못 한다”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7-02-27 16:11:0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촛불민심, 광우병 때처럼 나중에 후회할 것
    • 박근혜 대통령 잘못은 최순실을 곁에 둔 인간적 실수
    태극기집회에 나오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처음엔 촛불집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규모였지만, 이젠 촛불집회에 버금갈 정도로 참가자가 몰리면서 서로 세 대결까지 벌이고 있다. ‘일당 받고 나오는 노인네의 집회’라는 비아냥거림이 쏙 들어갈 정도로 토요일 오후 서울광장을 수십만 인파가 꽉 채우는 건 분명 사회 현상이다.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든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주장을 듣고자 집회 주도 단체인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의 권영해 공동대표(80·사진)를 2월 21일 인터뷰했다. 권 대표는 김영삼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부장을 지냈다. 이런 경력이나 사회적 위상을 고려할 때 권 대표는 탄기국의 정신적 구심점이라 할 만하다. 태극기집회의 개회사도 그가 한다. 올해 80세인데도 2시간 반 동안 인터뷰하는 내내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현재 ‘사단법인 대한민국 건국회’ 회장과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요일엔 경기 수원시 안디옥교회와 서울 용산구 국방부 내 국군중앙교회에 다닌다.



    ▼ 촛불집회가 먼저 시작됐는데 어떻게 봤나.  

    “지난해 11월 초 첫 촛불집회가 있은 뒤 촛불민심이란 표현이 나오고 정치권이 일사천리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를 무력화하는 광우병 사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고 하지만 최순실을 제대로 조사하기도 전 국회가 ‘촛불민심’을 들어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일련의 사태를 보며 대북정보기관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음험한 기획이 있다고 판단했다.”



    ▼ 촛불집회에는 가봤나.

    “11월 19일과 26일 두 번 가봤다. 그런데 경기 김포시 쪽에서 왔다는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방송 인터뷰를 하고 사람만 바꿔 종각 쪽에서도 인터뷰했다. 뭔가 이상했다. 또 ‘이석기 석방하라’ ‘문제는 자본주의다’ 같은 구호를 들으면서 내 생각이 맞다고 느꼈다.”  

    ▼ 하지만 촛불민심이 북한과 연계됐다고 보긴 어려운 것 아닌가.

    “집회에 참여하는 단체를 봐라. 이적단체 판정을 받거나 통합진보당과 연계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등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현 대한민국의 혼란은 북한 공작의 산물’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 실체를 알리려고 하면 ‘색깔론’이라고 뒤집어씌운다.”  

    ▼ 설령 그렇다 해도 촛불집회 참여 시민들이 그것에 동조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물론 촛불집회에 나간 사람은 이를 모르고 이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건은 이것을 주동하는 핵심 세력이 누군가 하는 점이다. 핵심 세력이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

    ▼ 그래서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것인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에게 앉아서 지느니, 서서 그들과 싸우다 죽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1988년 안기부장 시절 북풍을 기획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 대한민국을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감에 할복까지 했으나 살아남은 건 지금 이 일을 하라는 소명이었던 듯하다.”

    ▼ 공동대표를 맡게 된 과정은.

    “지난해 12월 3일 애국단체총연합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처음 집회를 가졌고, 그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서울 동대문에서 시위를 했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이 집회 후 광화문까지 행진하겠다고 해서 ‘태극기를 두르고 가라’고 했고, 그 후 태극기가 상징이 됐다. 12월 10일 집회는 해외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17일 헌법재판소(헌재) 앞 집회부터 본격적으로 참가했다. 평소 아는 사이인 정광택 탄기국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아달라고 해 수락했다.”

    ▼ 참가인원이 점점 늘어 이제 촛불집회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12월 3일 여의도 집회 때는 3000개 좌석이 다 차고 옆에 선 사람까지 치면 4000명가량 됐을 거다. 12월 17일엔 헌재 앞에서 했는데, 종로 부근까지 인파가 꽉 찼다. 당시 주최 측은 70만 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솔직하게 30만~40만 명가량 됐다고 본다. 느낌으론 집회 때마다 30%씩 느는 것 같다.”   

    ▼ 헌재 집회 때 기자 폭행 얘기가 나왔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집회를 보도하는 방송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었는데, 참가인원 수를 1500명이라고 했다. 그걸 보고 분개한 일부 참가자가 해당 방송기자가 거기에 있는 걸 알고 쓰레기를 집어던졌다. 이후 방송사 기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밀고 당기고 하다 보니 폭행으로 비친 것이다. 절대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다. 질서 유지와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 일당을 준다, 동원한다 같은 얘기도 나온다.

    “초기에는 박사모 회원 수만 명이 집회 때마다 2만 원씩 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은 현장에서 들어오는 자발적 모금과 후원도 제법 된다. 최순실 돈이 흘러왔다느니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 돈을 어떻게 지금 받겠나. 또 주최 단체가 아닌 단체가 돈봉투를 주는 것처럼 꾸미다 적발되기도 하고, 집회에서 술판을 벌였다고 매터도어(흑색선전)를 한다. 물론 작은 흠이야 없겠나. 하지만 전체적으론 문제가 없다고 본다.”  



    ▼ 노인들 위주라는 얘기가 있다.

    “처음에는 50~70대가 주류였다. 젊은이가 가끔 나와도 얼굴을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촛불집회 갔다가 실망한 젊은이들이 온다. 요즘 집회에 와보면 노인들만 있다는 얘기를 못 할 거다. 참가자들의 공통된 얘기는 이렇다. ‘이 나라를 어떻게 세우고 지켰고 발전시켰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가 어디 있나.’ 그런데 제대로 된 법적 절차 없이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하면 나라가 무너진다. 대통령 탄핵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탄핵된 거다.”

    ▼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세대 갈등이 심각해 보인다.  

    “지금까지 2명의 열사가 있다. 한 명은 ROTC(학생군사교육단) 출신으로 1월 14일 마로니에공원 집회에 참석한 후 그다음 날 심장마비로 숨졌다. 탄기국에서 조문을 하려 했더니 자녀들이 거절했다. 들어보니 야권 쪽 인사가 가족 중에 있다고 했다. 또 조모 씨는 태극기집회 참석을 두고 자녀들과 옥신각신하다 분에 못 이겨 아파트 6층에서 투신했다. 이 같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과제다.”

    ▼ 탄핵은 왜 문제라고 보나.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범이라고 하는데, 만약 최순실이 무죄 판결을 받거나 공모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대통령만 탄핵되는 사태가 온다. 그게 무슨 꼴인가. 원래 최순실부터 수사해 관련 죄가 드러났을 때 탄핵했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

    ▼ 그런 논리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도 잘못된 것 아닌가.

    “그렇다. 탄핵 법 자체가 잘못됐다.”

    ▼ 특검 수사도 비판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 JTBC의 태블릿PC 조작설이나 고영태 기획설 등은 수사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대통령을 잡아넣으려고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하고 있다. 고영태 녹취록은 검찰, 특검 모두 깔고 앉아 있다 뒤늦게 공개했다. 고영태 건은 일종의 반란 모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대통령을 ‘걔’라고 부르면서 끌어내리자고 하지 않았나.”

    ▼ 헌재 탄핵심판 절차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  

    “재판관 임기 만료 때문에 결정을 서둘러 한다는 건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 운명이 달린 중요한 결정을 날짜를 정해놓고 해선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충분히 심리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지연술을 쓴다며 오히려 비난하고 있다.”



    ▼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돼 박 대통령도 뇌물 혐의를 받게 될 것 같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구속 사유가 재산국외도피와 도주 우려다. 이게 맞는다면 대통령과 무슨 상관이 있나. 탄핵과 어떻게 연결되겠나.”

    ▼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로 구속됐다.

    “블랙리스트는 당연하다. 그동안 문화계를 잡고 흔들던 좌파는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만드는 건 자유지만,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선 안 된다. 블랙리스트는 실은 화이트리스트다. 김 전 비서실장이 청문회에서 왜 블랙리스트가 필요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나 모르겠다. 좌파로 점철된 문화계에서 지원에 차등을 두는 건 당연한 직무 수행이라고 본다.”

    ▼ 집회를 이끄는 데 어려움은 없나.

    “태극기집회도 한결같은 애국심을 가진 사람만 모이는 것은 아니다. 한번 가보자는 사람,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이 집회의 열망을 어떻게 이끌고 나가 결실을 맺어야 할지 책임감이 든다.”

    ▼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면 태극기집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당한 절차면 수긍한다. 처음엔 어떤 결정이든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수용하겠다는 처지였다. 하지만 헌재의 탄핵심판이 지금처럼 불공정한 절차로 진행된다면 국민저항권을 쓸 수밖에 없다. 조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항을 이어나갈 것이다.”

    ▼ 박 대통령도 분명 잘못한 게 있지 않나.

    “전횡이라면 그전 대통령도 다 있었다. 정도 차이가 있었을 뿐 부당하게 개인의 이권을 챙긴 건 모두 사법처리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적이 있나. 국정수행 잘잘못을 갖고 탄핵할 수는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등 업적도 많이 세웠지만 외환위기 사태를 막지 못해 국가가 큰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탄핵되거나 퇴임 이후 구속되지 않았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경제수석비서관 둘만 기소됐고,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쓰레기를 옆에 두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지만, 인간적 실수다. 이건 사법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 왜 곁에 뒀는지는 알고 있지만, 여기서 얘기하지 않겠다.”

    ▼ 어쨌든 이번 사태로 보수세력이 크게 위축됐다고 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국민이 택한 대통령이 어쭙잖은 일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 자체가 개탄스럽다. 나는 보수세력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보수다운 보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오늘날처럼 남북과 좌우가 대치된 상황에선 ‘대한민국 세력과 반(反)대한민국 세력’으로 나누고 싶다.”

    ▼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어떤 대통령이 필요한가.

    “지금까진 국민 마음에 ‘제왕적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고쳐야 한다. 주권재민 정신에 따라 ‘내가 뽑는다.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언제 대한민국에 필요한 지도자의 조건을 생각하고 뽑은 적이 있나. 지연, 혈연, 학연 등등으로 뽑았지. 이걸 자각하고 바꿔야 한다.”

    ▼ 지도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준수하고 남침을 노리는 집단과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사람, 안보를 제1 가치로 삼고 그 바탕 위에서 복지를 추진하는 사람,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는 사람, 법치를 준수하는 사람, 재임 중 개헌을 통해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등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사람 등이라고 본다.”

    ▼ 촛불과 태극기 민심은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 같은가.   

    “촛불민심은 뼛속까지 공산주의자가 아닌 바에야 나중에 광우병 사태 때처럼 ‘내가 왜 그랬지’ 하고 후회할 것이다.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에겐 어떤 걸 들이대도 믿지 않는다. 일부에선 태극기민심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화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지금 애국세력이 희망을 걸 곳이 없다. 아마 건전한 보수정당이 새로 나올 것이다. 물론 나는 참여하지 않겠지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