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2

2017.01.18

르포

“문재인? 문제가 참 많아요잉” “안철수? 애시당초 글러먹었어” “반기문? 어쩔랑가 함 봐야제”

호남의 선택

  • 광주·전주=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1-13 17: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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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분은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기를 바라나요.”

    “….”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호남 평가는 어떻습니까.”

    “그 양반은 여서 별로야.”

    “새해 들어 여러 언론사에서 대통령선거(대선)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문 전 대표가 대부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뭐시 쪼까 잘못됭 거 같은디? 여그 분위기는 안 그런디.”

    “지난 총선 때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크게 승리하고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의 인기도 상당히 높았는데, 요즘은 어떤가요.”

    “그 양반도 별로야. 중심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니께. 요번 (대통령) 탄핵 때도 이랬다저랬다 안 그랬당가요.”

    “그럼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는 게 낫다고 보세요.”

    “그… 뭐시냐. 그… 시장 있잖소.”

    “박원순 서울시장이요?”

    “아니. 그 거시기 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이요?”

    “맞아. 이재명. 그 양반, 말을 시원하게 참 잘합디다.”

    “그럼 다음 대선후보로 이 시장을 지지할 생각이세요?”

    “말을 잘하는 것은 잘하는 거시고…. 탄핵도 안 끝났고 아직 멀었는디, 쪼매 있어봐야 않겠어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어떠세요.”

    “아따. 뭐, 그 양반은…. (한국에) 돌아온당께 어쩔랑가 함 봐야제.”



    호남에 부는 이재명 바람

    1월 8일 광주송정역에서 광주 남구청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택시기사 강모 씨는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소 거리가 먼 얘기를 했다. 9일 오전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주 풍남문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50대 초반의 택시기사 조모 씨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택시기사는 문재인, 반기문, 이재명, 안철수 등 대선주자 4명에 대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생각을 밝혔다. 강씨는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해 “말을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라며 말끝을 흐린 반면, 조씨는 “말하는 것 보면 일도 야무지게 할 듯하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강씨는 “문 전 대표가 새해 첫날 무등산에 오르는 등 호남에게 열심히 구애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싫다는데도 자꾸 쫓아오면 좋겠나”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빨라질 수 있는 다음 대선에서 호남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문 전 대표는 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전국적으로 1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호남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광주일보’와 ‘전북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2016년 12월 22~25일 광주·전라권 만 19세 이상 유권자 10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26%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이 시장으로 14.4%였고, 3위는 12%인 안 전 대표였다. 반 전 총장은 9.6%로 4위였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지난 총선 때 ‘호남이 버린 문재인’이라 할 정도로 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참패였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정국을 맞아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반감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일까. 여론조사에서는 호남 유권자 4명 중 1명꼴로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광주와 전주 거리에서 만난 시민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문재인 거부’ 정서가 짙게 배어 있었다.

    “문재인? 문제가 아주 많아요잉.”


    1월 9일 오후 풍남문광장에서 만난 전주 팔복동에 거주하는 70대 초반의 국모 씨와 송천동에 거주하는 60대 후반의 박모 씨, 그리고 전주·완주혁신도시에 거주하는 70대 초반의 조모 씨 등 전주시민 3명은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  “문 전 대표가 왜 문제가 많다고 보세요.”

      “말하는 거하고 행동하는 거시 많이 다릉께 그렇지.”

      “스스로 한 말도 안 지키는 사람을 어찌 믿고….”

    기자  “지난 총선 때 호남이 지지를 철회하면 대선에 불출마하고 정계은퇴하겠다는 얘기 말인가요.”

      “그래서 여그 사람들이 다들 국(민의)당 (후보를) 찍었잖소. 그런데 시방 그 사람(문재인) 뭐라고 하며 돌아댕기고 있어요?”

    문 전 대표는 1월 1일 광주 무등산에 오르면서 지난해 총선 때 광주 충장로에서 한 발언을 두고 “호남에서 지지를 받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이 같은 문 전 대표의 해명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기자  “안철수 전 대표는 어떠세요? 총선 때 국민의당 후보를 많이 뽑았는데.”

      “애당초 글러먹었어.”

    기자  “네?”

      “이미 틀렸다고.”

      “그 양반은 도통 뭐 하자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기자  “그럼 이번 대선에서는 누구를 지지할 생각이세요.”

      “음…, 나는 반기문.”

      “이재명.”

      “나도 이재명.”

    기자  “이재명 성남시장을 두 분이나 꼽으셨네요.”

      “이번에는 젊고 참신한 사람이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암, 그럴 때도 됐지.”

      “암만 그래도 경험 많은 사람이 나라를 한번 바로잡아야지.”

      “그란디 이재명 씨가 경선은 통과하겄소?”

    이 시장은 호남지역 대선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거리에서 만난 시민 가운데는 ‘이재명 시장’에게 기대를 표하는 인사가 적잖았다. 전주 시내 객사길에서 만난 두 젊은이도 ‘이재명 시장’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한 의류매장에서 일한다는 김모(27) 씨는 “이 시장은 흐지부지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고,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취업준비생이라는 박모(28) 씨도 “우리 처지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박씨는 “이 시장을 대선후보로 지지하겠느냐”는 물음에는 “이 시장이 시원하기는 하지만, 막상 찍으라면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이 시장은 혼자처럼 보이는데, 나라를 혼자 운영할 수는 없잖아요. 안 지사는 문 전 대표를 (경선에서) 이기면 그 팀을 흡수해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새 인물 트라우마 “지켜보고 검증하자”

    박씨에게 “문 전 대표를 왜 지지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문 전 대표는 좀 그래요. 매가리도 없고. 사람이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깨끗이 인정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뭉개고 버티는 것 같아서 싫어요.”

    광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참여자치21’의 나기백 운영위원장은 “촛불정국 이후 젊은 층 사이에서 이 성남시장 선호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며 “굳건한 지지라기보다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는 욕구가 투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호남,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불고 있는 ‘이재명 바람’이 ‘이재명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나 위원장은 회의적이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광주·호남에 잠복해 있던 반문재인 정서가 안철수 현상으로 폭발했죠. 한때 지지율이 50%를 훌쩍 넘겼으니까요. 그런데 (안 전 대표가) 그에 걸맞은 비전과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해 지지율이 하락했어요. 기대와 희망이 급속도로 실망으로 변한 거죠. 안철수 현상에 대한 그 같은 기억이 오히려 이재명 바람이 커지는 것을 막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새 인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안철수 현상을 경험한 이후 이제는 ‘지켜보고 검증하자’는 신중한 태도로 바뀐 거죠.”

    호남 유권자는 대선이 코앞에 닥쳤지만 아직 선택을 유보하고 있었다. 좋게 보자면 ‘전략적으로 인내’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강력한 문재인 비토 정서’에 갇혀 아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호남 정서는 ‘문재인만이 정권 창출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냐’는 물음에 지극히 회의적”이라면서 “지도자라면 집권보다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 국가 운명을 개척해나갈 것인지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문 전 대표는) 그 같은 지도자로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한 것과 달리, 호남 유권자 가운데 일부는 “정권교체를 하려면 그래도 지지율 높은 문재인을 (후보로) 세워야 확실하지 않겠느냐”며 문 전 대표 지지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광주 광산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강모(44) 씨는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꼭 해야 한다는 게 주변 여론”이라며 “좋든 싫든 지지율 높은 문재인으로 가야 확실하지 않겠나”라고 했고, 전주 인후동에 거주하는 50대 후반의 개인택시기사 김모 씨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될 사람을 밀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문 전 대표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견고한 문재인 비토 정서

    광주에서 활동하는 한 정치권 인사는 “호남 유권자는 아직 보수진영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선뜻 속내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다만 문 전 대표에 대한 거부감은 지난 총선 때처럼 강하지 않지만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호남의 가치와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호남이 차기 정권에 당당히 참여할 수 있는 후보에게 지지를 몰아줄 개연성이 있다”며 “결국 이번 대선이 특정 계층과 지역, 정당 중심이 아닌 연정과 협치가 가능한 대선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호남 유권자의 표심이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남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는 “호남은 정권교체를 이룰 후보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데, 문 전 대표를 대신할 더 좋은 후보를 찾고 있다”며 “정당 지지율은 40% 가까이 되지만, 문 전 대표 지지율이 20%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호남 민심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광주 남구 주월동에 거주하는 회사원 장모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당장 선택해야 되는 것은 아닝께, 다들 대선이 어떡코롬 흐를랑가 지켜보고 있는 거죠잉. 그란디 지난번처럼 원치 않는 선택을 다시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라 하구만요. 그때는 최악(박근혜 후보)을 피하려고 차악(문재인 후보)을 어쩔 수 없이 선택했죠잉. 그란디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싶구만요. 돌아가는 폼새가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구요. 지난 총선 때도 그랬지만, 문재인 씨나 그 주변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최악 같아요잉. 싸우면서 닮는다드만, 친문 행태가 딱 친박 맹키로 보여요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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