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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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v s 2016 나쁜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11-18 17: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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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이 지나치게 한 곳에 쏠리면 독재를 낳는다. 반대로 권력이 분산되고 약화될수록 질서도 없는 무정부 상태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양극단 어느 쪽도 흔한 일은 아니다. 아주 극악한 독재 체제일지라도 갈라진 틈이 있고, 아주 심각한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결국 어느 정도 질서와 권력체계가 잡혀 혼돈 상태가 가라앉는다. 여기서 요점은 권력이 소수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상황은 권력이 지나치게 약해빠지거나 주도 세력이 무능할 때라는 점이다. 권력이 지나치게 쇠퇴하여 모든 주요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의 제안에 거부권은 행사할 수 있어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내세울 힘이 없다면, 국가 체제 자체는 물론이고 정치 체제와 사회, 공동체나 가족까지 큰 위기로 내몰린다. 권력이 그렇게 위축될 때, 국가는 마비 상태에 빠지고 안정성, 예측 가능성, 안전, 물질적 번영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 모이제스 나임의 ‘권력의 종말’ 중에서


    2016년 11월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 자체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4년 전 국민 과반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 사유화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국민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쓰라고 위임한 대통령 권한을 사실상 비선(秘線) 실세인 최순실 씨 등의 국정 개입을 용인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11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100만 국민은 한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이 대통령에 대해 ‘거부권’을 발동한 것이다.

    리더십 위기를 겪는 것은 박 대통령뿐이 아니다. 집권 여당이자 원내 제1당인 새누리당에서도 이정현 당대표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사실상 ‘유령 대표’ 취급을 받고 있다. 당대표가 소집한 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당내 차기주자 등 당 중진들이 꾸린 ‘비상혁신위원회’에 의원이 대거 몰리고 있다. 당원과 대의원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한 당대표가 당의 주요 구성원인 의원들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은 새누리당이 공당으로서 기능을 상실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촛불 정국에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추 대표는 촛불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겠다며 11월 14일 전격적으로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당내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당일 저녁 취소했다. 제1야당 대표의 영수회담 결정을 의원들이 무력화한 것에 대해 ‘민주정당의 바람직한 의사결정’으로 보는 국민은 많지 않다.

    대통령도, 여당 대표도, 심지어 제1야당 대표까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자 국정 표류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국내각 물거품, 하야·퇴진 목소리만

    박 대통령은 11월 12일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100만 촛불 민심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박 대통령은 국정 정상화를 이유로 사실상 ‘하야’를 거부한 것. 그뿐 아니라 16일에는 법무부 장관에게 부산 엘시티(LCT)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의 고삐를 다시 죄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사이 민주당은 ‘국회 추천 총리로 전권 이양과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주장에서 대통령 하야·퇴진으로 당론을 선회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 다른 야당은 이미 대통령 하야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 이처럼 야당이 모두 대통령 하야를 당론으로 정하면서 국회 추천 총리를 통한 거국내각 구성 방안은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야권은 ‘박 대통령 퇴진 요구’라는 공동목표를 밝혔지만 11월 17일 현재 정당마다, 또 차기 대권주자마다 주장하는 바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요구한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여야 합의로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를 선출한 뒤, 새 총리가 대통령의 법적 퇴진을 포함한 향후 정치 일정을 발표토록 하자는 단계적 퇴진론을 제시했다.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새로운 헌법에 따라 새로운 체제를 갖추면서 제7공화국을 열어가자”며 “개헌으로 촛불 민심을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제시하는 방법론이 제각각이다 보니 ‘과연 대통령 퇴진을 현실화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구심이 드는 실정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광화문광장에 모인 100만 촛불이 한목소리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고 그 자체로 대통령 퇴진이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100만 국민이 한자리에 모여 대통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도 새로운 리더십을 세울 수 있는 힘과 권위를 인정받은 것도 아니다”라며 “광장에 나오지 않은 더 많은 국민이 승복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권력을 교체하기 전까지는 그저 ‘요구’에 그칠 뿐이다. 하야를 요구하고 퇴진을 요구할 수는 있어도 하야나 퇴진을 강제할 수단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은 정치인 누구를 만나도 한탄성 질문만 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 ‘이러다 어떻게 되느냐’는 것 등이 단골 질문이다. 해법을 물으면 ‘끝이 보여야지’ 하는 식의 막연한 대답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2016년 11월 대한민국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위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작년(1995년) 말 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와 신년 초 김영삼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정국은 ‘한보사건’이라는 태풍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이 총체적 방향감 상실과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셈이다.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이는 1997년 5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일부다.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와 관련한 각종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92년 대통령선거(대선) 자금 의혹으로 번져가던 때로,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져 정권의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정권이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1997년 차남 현철 씨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리더십이 붕괴한 이후 국정혼란이 반년 동안 지속됐고, 그 결과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그해 11월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철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국정 마비 상태가 장기화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통령의 리더십 붕괴가 환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로 번진 것이다.



    1997년 리더십 붕괴의 교훈

    2016년 11월 대한민국이 처한 경제상황 역시 19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정운영 키를 쥐고 미래를 개척해야 할 대통령의 리더십은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 자신이 검찰 조사 대상자로 거론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일치된 견해다. 특히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야권은 박 대통령이 끝내 ‘하야’나 ‘퇴진’을 거부할 경우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대통령 탄핵’으로 나아갈 태세다.

    대통령과 야권이 대화, 타협을 통해 ‘질서 있는 수습’에 나서기보다 ‘할 테면 해보라’ 식의 강 대 강 맞대결로 치달으면서 어정쩡한 촛불정국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무너진 리더십을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이냐를 두고 여전히 백가쟁명식 해법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대통령의 리더십 붕괴를 틈타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려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한국 경제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난파선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총체적 위기 상황에 놓였다. 한국 경제에서 버팀목 구실을 해온 전자·자동차·조선 등 주요 산업은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대선에서 고립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함으로써 대외 불확실성도 더욱 커진 상황이다.

    정부는 국가신용등급이 양호하고, 기업부채 비율과 단기외채 비중이 낮아 경제 펀더멘털이 1997년 외환위기 때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몇몇 국내 주요 경제지표는 이미 외환위기 직전인 96년보다 크게 나빠진 상태다. 경제성장률은 물론,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도 하락해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회의론이 커졌고, 제조업 평균 가동률과 가계소득 증가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가계부채 비율과 청년실업률은 1996년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져 경제위기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경제 동향 11월호’에서 우리나라 전체 경기가 둔화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수출 부진을 상쇄해온 내수마저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경제 분야를 힘 있게 끌고 갈 컨트롤타워까지 마비된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경제부총리는 유일호 재정경제부 장관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후임 경제부총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대통령의 ‘2선 후퇴’와 ‘하야’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동안 후임 총리와 부총리 후보자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경제는 국민생활의 바탕이다. 경제를 더 이상 표류하도록 놓아둬서는 안된다. 경제가 무너지면 국민들은 일터를 잃고 그로 인한 실업으로 사회불안을 가중시킨다. 한번 무너진 경제는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 국제적인 신용도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정부가 신뢰 회복을 통해 뼈를 깎는 각오로 경제회생에 앞장서라고 주문한 1997년 3월 24일자 ‘동아일보’ 사설 중 일부다. 그러나 당시 조언은 현실화하지 못했고, 결국 8개월 뒤 국가적 환란을 경험해야 했다. 나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100만 촛불을 든 국민과 그것을 바라보는 4900만 국민은 자칫 최순실 게이트가 ‘최순실 리스크’로 바뀌어 한국 경제를 집어삼키는 건 아닐까 우려하면서 불안한 눈으로 정치권의 최순실 게이트 처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동아일보’ 1면으로 본 1997년 3월 vs 2016년 11월◆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1997년 3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 헤드라인이다. 당시는 한보그룹 특혜대출 비리사건과 측근의 청와대 무적 근무 등 당시 김영삼 대통령 차남 현철 씨의 국정농단이 정국을 뒤덮던 시점. 일각에서는 김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기도 했지만 다수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오지는 않았다. 그 대신 각계 원로는 김 대통령을 향해 현철 씨에 대한 각종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고 엄중 문책함으로써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무엇보다 경제회생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원로들은 일반 국민에게 “대통령 하야나 탄핵운동 같은 극한운동을 자제해 이 정부가 저지른 과오를 이 정부 책임 아래서 바로잡도록 한 뒤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19년이 흐른 2016년 11월. 대한민국에는 분노한 군중의 함성이 차고 넘친다. 차분히 시국을 걱정하는 원로의 조언은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동아일보 11월 14일자 1면은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참가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소식을 전하면서 ‘성난 민심은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데,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정치 위기를 국가 위기로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1면에 ‘정치권이 민심에 편승해 하야를 외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며 ‘정치의 역할은 민심의 에너지를 헌정 질서에 맞게 풀어내는 것’이라면서 ‘대통령 탄핵 절차를 밟으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이라도 퇴진 절차는 헌법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요, 법치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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