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2017.08.30

커버스토리

경찰은 주폭이 무섭다

주폭 말리다 법적 분쟁 생겨도 대응 수단 없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8-25 16: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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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16일 늦은 저녁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신내지구대에 만취한 박모(30) 씨가 체포돼 들어왔다. 박씨가 술에 취해 한 주점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가 들어와 지구대 소속 경찰들이 업무방해 혐의로 그를 현행범으로 붙잡은 것. 박씨를 체포한 것은 박모(33) 순경이었다. 그는 현장에 출동해 박씨에게 수갑을 채워 지구대로 연행했다.

    박씨는 수갑을 찬 상태로 지구대 조사실로 안내됐다. 주점 업주를 상대로 업무방해 피해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박씨를 격리시키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조사실에 들어서자 손목이 아프다며 경찰에게 수갑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경찰은 박씨의 수갑을 풀어줬다.

    경찰 관계자는 “주취자들은 수갑으로 제압해놓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조사 후 수갑으로 인한 손목 통증을 호소하면 풀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주폭 제지하다 빚더미 올라

    10분가량 피해자 조사가 끝난 뒤 박 순경은 수사서류 작성을 위해 박씨가 있던 조사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박씨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을 쥐고 박 순경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박 순경은 박씨의 목 부분을 밀쳤다.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박씨는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전치 5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후 박씨 가족은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상해를 입었다며 박 순경을 형사고발했다. 검찰은 직권을 남용해 폭행했다며 박 순경을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박 순경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경찰공무원법 제21조에 따르면 형사재판에서 자격정지 이상 형을 선고받으면 경찰직을 잃기 떄문이다.

    결국 박 순경은 합의금 5000만 원에 치료비 300만 원을 박씨에게 지급하고 경찰직을 지키게 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는 7월 5일 박 순경에게 징역 6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유죄를 인정하되 일정 기간 형 선고를 미루는 것으로 2년이 지나면 유죄 혐의는 없던 일이 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해자가 평소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폭행을 하는 습성이 있었고, 이 사건이 벌어진 뒤인 2016년 9월에도 또 술에 취한 채 영업방해 행위를 해 유죄 판결을 선고받는 등 피해자 측 사정도 상해 피해 발생에 일부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며 선고유예 이유를 밝혔다.

    형사재판이 끝났지만 아직 박 순경과 박씨는 민사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박씨 측이 박 순경 때문에 입은 상해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며 4000만 원의 손해배상과 함께 치료비를 요구한 것.

    박씨는 지난해 9월에도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다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박 순경의 판결문에도 ‘박씨는 평소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폭행을 하는 습성이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 사건 당시 만취하여 경찰관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였고, 이 사건 9개월 정도 이전에도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돼 있을 정도다.     



    법적 분쟁 휘말리면 도와줄 사람 없어

    박 순경을 형사고발한 뒤 박씨 측이 처음 제시한 합의금은 2000만 원. 하지만 합의금을 계속 올려 올해 1월에는 3000만 원이 넘었다. 변호사 없이 박 순경 혼자 처리하려다 생긴 문제였다.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타던 차까지 판 박 순경이 변호사 선임비를 구하기는 어려웠기 때문. 박 순경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연신내지구대장이 경찰 출신 변호사를 소개해 무료 변론을 받게 됐지만 이미 합의금은 4000만 원을 넘어섰고 판결을 일주일 앞두고 5000만 원으로 올랐다.

    합의는 끝났지만 4000만 원 손해배상 소송이 아직 남아  있다. 이에 경찰 내부에서는 법적 지원이 미비해 사건이 커졌다는 시각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초기 변호사를 통해 법적 절차를 밟았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지구대장이 박 순경의 사연을 경찰 내부망(인트라넷)에 알려 성금 1억4000만 원이 모였고 빚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박 순경은 “손해배상 등을 처리하고 남은 돈은 법무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동료 경찰을 위해 쓸 예정”이라고 전했다.

    물론 경찰조직 내에 법무 지원 제도가 마련돼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각 지방경찰청마다 법률 지원을 담당하는 변호사 출신 송무관이 있어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또 정당한 공무집행 중 생긴 민형사상 소송의 경우 경찰 상조회 기금으로 변호사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지원책에는 제약사항이 많다. 송무관의 법률 지원은 상담에 그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변호사 비용 지원도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 한해 사후 지원된다. 따라서 박 순경과 같은 상황이라면 경찰청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술에 취해 경찰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매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이 주취자를 상대하다 상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는데도 주취자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미약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붙잡힌 1만4556명 피의자 가운데 1만375명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단순 계산하면 하루에 28명의 주취자가 경찰에게 난동을 부린 것. 게다가 술에 취해 경찰에게 상해를 가해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된 사람은 2011년 595명에서 2015년 926명으로 4년 만에 2배가량 늘었다.

    소방관에게도 취객은 위협의 대상이다.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소방관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 8월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취객 구급활동을 하던 119구급대원이 폭행당한 사례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총 870건에 달한다. 이는 신고된 건만 집계한 수치로 실제 폭행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중 사법처리된 건수는 21건(2.4%)에 불과하다. 술이 깨면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얼버무리거나 선처를 호소해 훈방조치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 출신 법조계 인사는 “미국 등 해외에서는 경찰의 공무집행 과정에서 피의자가 경찰을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공무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공무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폭행이나 위협도 경찰과 피의자 개인 간 분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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