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7

20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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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멍청한 소화기관이라고? 천만에! 슈퍼컴퓨터 같다니까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2017-07-18 1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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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와 장의 은밀한 대화 : 더 커넥션
    에머런 메이어 지음/ 김보은 옮김/ 브레인월드/ 348쪽/ 1만9000원


    장(腸)에 대한 당신의 인식은 어떤가. 위장, 소장, 대장으로 나뉘어 음식을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흡수한 뒤 찌꺼기를 내보내는 몸속 기관? 그렇다면 당신은 급속도로 발전한 장에 관한 최신 과학이론에 무지한 셈이다.

    또한 대장에 집중 분포하는 대장균, 유산균 같은 장내 미생물을 그저 생존을 위해 음식물을 분해해 먹는 기생 생물 정도로 생각한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책은 우리가 몰랐던 장과 장내 미생물의 놀라운 기능에 대해 들려준다. 먼저 장의 제원부터 알아보자.

    장의 고유한 신경세포 수는 5000만~1억 개로 척수의 신경세포와 맞먹는다. 장은 넓게 펼치면 표면적이 농구장만 하고, 흔히 우울증 치료 호르몬이라 부르는 세로토닌의 95%를 보유한 거대한 저장고다. 더구나 입에서만 느끼는 것으로 아는 쓴맛, 단맛, 차가움, 뜨거움, 매콤한 맛, 부드러운 맛 등을 파악하는 수천 개의 감지기도 들어 있다. 장 내벽에 어마어마하게 분포하는 내분비세포는 호르몬을 20개 이상 함유하고 있다 신호를 받으면 혈액 속으로 분비한다. 이 내분비세포는 생식샘, 갑상샘, 뇌하수체, 부신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분비기관을 합친 것보다 많다. 



    얼핏 훑어봐도 심상치 않은 스펙을 가진 장은 우리 몸속에서 과연 어떤 기능을 할까. 스펙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장에 있는 5000만 개 이상의 신경세포는 뇌의 도움 없이 소화 과정을 완벽히 수행해낸다. 그뿐 아니라 소화 과정에서 생기는 무수히 많은 생체신호를 모두 뇌에 보낸다. 여기에 수많은 감지기와 내분비세포를 통해 계속해서 몸의 상태를 뇌에게 알려준다. 이는 장이 신체 어떤 기관 못지않게 민감하고 복잡한 감각기관임을 증명한다. 미주신경을 타고 뇌로 가는 신호 정보의 90%를 장이 담당하며, 나머지 10%만 뇌가 장에게 내려보내는 것이다. 장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소화에만 열중하는 기관이 아니라, 뇌를 깨우고 경고를 하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생체리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장을 ‘제2의 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앞서 말한 장내 미생물. 한 사람의 장속에 들어 있는 미생물 수는 지구에 사는 인구보다 10만 배나 많다. 1000여 종의 미생물은 700만 개가량의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주로 대장에 사는 이들은 막중한 기능을 담당한다. 인간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음식 성분을 소화하고, 물질대사를 조절하며, 위험한 화학물질을 해독시키고, 인간의 면역체계를 교육시키며, 위험한 병원체의 성장을 막는다. 언뜻 어려워 보이지만 미생물은 장내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원으로, 장은 이들이 물어온 정보를 적절한 방식으로 뇌에 전달한다.

    장내 미생물은 매우 다양하고 대부분 유익한 균이지만, 항생제 복용 등으로 균형이 깨지면 병원체가 활성화돼 만성 장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어릴 적 장내 미생물이 다양하지 못하면 우울증, 자폐증, 과민성대장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높고, 늙어서 다양하지 못하면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덧붙여 특정 미생물의 존재가 적극성 등 성격과 흔히 육감이라 부르는 직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이 책의 결론은 장과 장내 미생물의 건강이 인간의 건강 및 균형 잡힌 삶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장에 대해 알면 알수록 곡물, 과일, 채소, 발효식품 등을 많이 먹고 붉은 고기와 동물성 지방, 첨가제가 들어간 식품을 적게 먹으라는 평범한 상식에 확신을 갖게 된다.



    설렁탕은 so-long탕


    맛있는 코리아
    그레이엄 홀리데이 지음/ 이현숙 옮김/ 처음북스/
    512쪽/ 1만5800원

    저자는 노마드(유목민)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1996년 한국 전북 익산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이듬해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한때 로이터통신의 르완다 해외특파원이었고, 지금은 세네갈 다카르에서 살고 있다. 그가 2015년 6주 일정으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목적은 오직 하나, 한국 음식 순례였다. 그것도 평범한 음식. 그가 다닌 음식점 20여 곳은 국내 방송 등에서 흔히 언급하는 전형적인 맛집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음식을 내는 곳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저자는 한국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으며 ‘먹방’처럼 맛을 논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얘기한다. 같이 간 한국인, 음식점 주인, 주방장 등과 대화하며 한국 음식에 담긴 한국의 특질을 들려준다. 우리는 당연해서 깜빡 놓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얘기들이다. 해삼은 해저 케이블을 씹는 것 같아 싫어하지만 멍게의 바다 향기는 좋아하는 그는 ‘가장 부드럽고 맛있는’ 산낙지로 한국 음식 여행을 마쳤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은 종종 한국 음식이 냄새난다, 맵다며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한국 음식은 매우 훌륭하다.”




    SF 꿈이 만든 현실
    토머스 M. 디쉬 지음/ 채계병 옮김/ 이카루스미디어/
    364쪽/ 1만8000원

    SF는 한때 ‘ET’ ‘스타트렉’ 등에서 보듯 우주와 외계인을 주로 다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 사이버스페이스의 내적 우주로 돌아서고 있다. 책은 SF의 기원, 최초 우주여행지인 달의 의미, 냉전시대 핵에 대한 공포 등 SF가 발전해온 역사를 다룬다. 또 종교, 군사전략, 양성평등 측면에서 SF가 가진 함의도 엮어냈다. SF가 꿈꾼 미래가 현실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고전(1998년 출간)이다.





    동사강목의 탄생
    박종기 지음/ 휴머니스트/
     364쪽/ 1만8000원

    ‘동사강목’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역사를 다룬 최초 민족주의 역사서다. 저자인 순암 안정복은 1754~1760년 ‘동사강목’을 집필하면서 스승인 성호 이익에게 편지를 보내 고대 국가의 영토와 지리 고증, 사료 해석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익도 일일이 답하며 제자의 역사서 편찬을 독려했다. 책은 두 사람의 치열한 필담을 통해 ‘동사강목’이 어떻게 완성됐는지를 소개하면서 18세기 지식인의 역사 인식과 사명 의식을 함께 보여준다.






    광신자 치유
    아모스 오즈 지음/ 노만수 옮김/ 세종서적/
    144쪽/ 1만2000원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아모스 오즈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 그것의 밑바탕이 되는 광신주의를 다룬 에세이집. 유대인인 그는 양자의 갈등이 민족의 유일한 고향을 되찾거나 지키려는 싸움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해법은 땅을 나눠 갖는, 즉 합의이혼처럼 팔레스타인이 독립하는 것이다. 이어 상대를 죽여도 시원찮아 하는 광신주의를 치유하기 위해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보는 것’을 제시했다.




    푸티니즘
    월터 라쿼 지음/ 김성균 옮김/ 바다출판사/
    510쪽/ 2만5000원

    러시아 관련 저술만 25권을 쓴 러시아 전문가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푸틴 현상’을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은 세계 최강대국 소련에 대한 향수, 서구에 주도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서구 공포증을 적절히 자극한 결과라고 본다. 푸틴 체제는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가미한 국가자본주의로, 그 방법론은 철저히 반(反)서방적이다. 푸틴은 KGB, 경찰, 군대 출신인 실로비키(제복 입은 남자)를 새로운 실세로 삼아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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