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4

2014.06.30

어렵게 키운 한류 열풍에 찬물 끼얹나

‘별그대’ 중국 생수 광고 논란

  • 배선영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

    입력2014-06-30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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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키운 한류 열풍에 찬물 끼얹나

    중국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모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아래)과 포스터.

    배우 김수현과 전지현이 중국 헝다(恒大)그룹 생수 광고모델로 발탁된 뒤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수현과 전지현은 2월 종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로 중국 대륙에 제2 한류를 일으킨 인물들. 아직 중국에서 정식 방송되지 않은 이 드라마는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다 곧 신드롬급 인기로 이어졌다.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가 중국인 사이에서 유행하고, 드라마에 라면이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식품업체 농심이 중국에서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중국 내에 ‘치맥’(치킨+맥주) 열풍이 인 것도 이 드라마 때문이다. 중국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왜 자신들은 ‘별그대’ 같은 트렌디 드라마를 만들 수 없는지를 분석했다. 한중 정치계 인사가 모여 ‘별그대’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할 정도였으니, 드라마 한 편의 문화적, 경제적, 외교적 효과가 실로 컸다. 이 같은 폭발적 인기의 중심에 있는 김수현과 전지현은 그야말로 한류 최전방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들이 나란히 모델로 발탁된 헝다그룹의 생수 제품에 취수원이 ‘창바이산(장백산·長白山)’이라고 적힌 점을 들어 국내 일부 언론과 누리꾼이 비판을 시작한 것이다.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 부르는 것은 동북공정(東北工程·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의 함의를 갖고 있다. 두 한류스타가 동북공정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두 스타의 역사의식 부재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담겼다.

    취수원 ‘창바이산’으로 표기

    논란 직후 김수현 소속사 키이스트와 전지현 소속사 문화창고는 국내 언론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취수원까지 확인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며 “현재 중국 측과 신중히 논의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키이스트는 헝다그룹 측에 계약 해지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가 6월 25일에는 “중국 측과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약속인 만큼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번복했다. 문화창고는 중국 현지에서 관계자들과 만나 원만한 해결책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만 밝힌 상태다.

    그러나 중국에서 ‘창바이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건 동북공정 개념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다. 우리 조상 역시도 백두산과 창바이산이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했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2014년 현재 백두산이 중국령과 북한령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기도 하다. 백두산 일부가 중국 영토라는 뜻이다. 일본과의 영토분쟁지역인 독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에 따라 국내 학계에서도 백두산의 중국 명칭을 ‘창바이산’이라 하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백두산 대신 창바이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중국인에게 창바이산을 백두산이라고 부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으며, “취수원이 ‘창바이산’이라 표기된 생수의 모델로 나섰으니 김수현과 전지현은 동북공정의 수단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물론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동북공정의 한 내용이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중국 전문가들은 동북공정의 최우선 목적은 한반도 정세 변화를 중국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창바이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그곳 문화유적이 중국 것이며 나아가 백두산이 중국 것이라는 인식을 공고히 하는 중국 측 행태에 대해서는 우리 학계에서도 경계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국내 유명 스타와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활발히 중국 대륙에 진출하는 가운데, 두 나라 간 예민한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여지를 세심히 살피지 못한 것은 아쉽다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생수 논란’은 한류의 성장과 발전을 감안할 때 적절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논란을 설명하는 근거가 허술했고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 논란이 삽시간에 확대돼 두 스타를 코너로 몰아세우는 격이 됐다. 특히 언론이 조회 수 경쟁을 벌이며 각종 자극적인 타이틀을 걸고 기사를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온갖 악성 댓글이 쏟아져 나왔다.

    부담을 느낀 두 배우의 소속사는 결국 논란이 발생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중국 헝다그룹 측에 계약 해지 뜻을 전했다. 논란을 만들어 키운 언론과 누리꾼에 이어 이들의 대처 역시 한없이 아쉽다. 원화 수십억 원대 계약을 허술한 근거를 내세워 해지하겠다는 일방적 요청을 중국 측이 납득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원대 소송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보다 더 큰 파장은 중국 내 반한 감정에 따른 한류의 위기다.

    시작부터 끝까지 경솔하고 무책임

    어렵게 키운 한류 열풍에 찬물 끼얹나

    ‘별에서 온 그대’의 두 주인공 전지현(왼쪽)과 김수현은 이 드라마의 인기로 중국에서 새로운 한류 스타로 부상했다.

    두 배우 소속사와 헝다그룹의 계약은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얽힌 계약인 만큼 나라 간 신뢰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의 일방적 계약 파기는 다른 한류 스타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는 문제이며, 어렵사리 점화된 한류 불씨를 삽시간에 꺼뜨릴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이희옥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철저한 사전 모니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문화수교에서는 지극히 사소한 일도 전반적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만큼 사전조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 소장은 “관계자들은 물론 누리꾼도 이번 사안을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의 이런 논쟁이 중국에 전해지면 오랜만에 타오른 한류에 악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다.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전략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일본 내 한류가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여기에도 반한 감정이 한몫했다. 최근 중국 대륙에서 한류가 다시금 힘을 받게 되자 여러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본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기보다 교류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좋은 선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이번 생수 광고모델 논란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가 경솔했으며 무책임했다. 더 큰 파장이 일기 전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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