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살아 움직이는 방사형

불꽃놀이, 민들레로 보는 확장의 생명력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6-09 17: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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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양을 의미하는 방사형은 문양 디자인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원모양과 좌우상하 대칭의 꽃모양은 많은 패턴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아라베스크(Arabesque)는 풀과 꽃 같은 식물을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한 문양으로, 이슬람 사원의 벽면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패턴이다.



    입에서 터지는 불꽃놀이 표현한 츄파춥스

    페르시아 서정시인 하페즈(Hafez·1315~1390)의 무덤은 아라베스크 꽃문양으로 유명하다. 무덤 위에는 둥근 지붕의 정자가 있는데, 그 천장에 정교한 방사형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꾸밈을 절제하고 직선을 반복해 꽃잎 16개와 그 너머로 퍼져나가는 울림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작은 점들로 만든 원형이 가득 들어차 있다. 천장의 문양은 멈춰 있지 않고 무한한 에너지를 확장, 발산하는 느낌을 준다. 밖으로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방사형 이미지다.

    천장에 새겨진 문양이 그 모양과 방향성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라면, 실제로 움직이는 방사형도 있다. 밋밋한 도시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불꽃놀이에도 방사형이 종종 등장한다. 요즘 불꽃놀이는 과학이라고 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시간, 위에서 터지는 시간과 모양, 색상, 소리까지 치밀하게 기획해 밤하늘 캔버스를 수놓는다. 땅에서 쏘아 올린 불꽃 하나가 터지는 순간은 말 그대로 ‘꽃’이다. 중심에서 퍼지는 방사형에 기쁜 마음이 일어 저절로 ‘와~’ 하고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불꽃이 터지는 순간의 굉음마저도 신나게 들리는 불꽃놀이. 화려한 방사형에 마음이 즐거워진다.

    막대사탕 브랜드의 대명사 ‘츄파춥스(Chupa Chups)’는 불꽃이 터지는 환희의 순간을 그대로 활용했다. 1958년 처음 출시된 츄파춥스는 손에 묻히지 않고 동그란 알사탕을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된 세계 최초 막대사탕이다. 미국 마이애미 애드 스쿨(Miami Ad School)에서 제작한 이 광고는 톡톡 쏘는 파우더를 뿌린 피지 파우더(fizzy powder) 제품의 특징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게 만들었다.



    인쇄 광고 전면에는 검은 밤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의 세로선과 상단에서 ‘팡’ 터지는 방사형의 불꽃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아래에 자그마하게 츄파춥스 로고와 작은 글씨로 ‘Chupa Chups with fizzy powder’를 넣었을 뿐 다른 내용은 없다. 중심에 커다랗게 자리한 불꽃 이미지가 전부다. 하늘로 올라가는 불꽃의 꼬리가 츄파춥스의 막대를, 하늘에서 터지는 방사형이 동그란 사탕을 대체한다. 광고 속 불꽃 모양이 막대사탕 모양 그대로다. 불꽃 이미지 하나만으로 츄파춥스를 입에 넣으면 톡톡 터지는 황홀한 기쁨을 맛볼 것이라는 메시지가 200% 전해지는 광고다.



    인간이 지닌 방사형 에너지

    어디 하늘에만 있을까. 땅에서 피어나는 꽃 가운데 민들레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방사형 이미지다. 길가 벤치 밑, 건물 모퉁이, 계단 구석에서 슬그머니 피어오른 민들레는 어디서든 잘 자란다. 민들레는 좋은 땅, 좋은 공기, 좋은 물, 좋은 바람을 가리지 않고 무던하게 하늘을 바라보다 하얀 씨가 몸에 가득 차면 저절로 떨어져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또 다른 자신이 어딘가에서 태어날 것을 아는 방사형의 꽃이다.

    세상이 물에 잠길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린 어느 날, 자신도 잠길까 봐 두려웠던 민들레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민들레가 신에게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자 바람이 씨를 실어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줬다. 씨는 그곳에서 다시 민들레로 피어 하늘을 향해 활짝 웃으며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준 신에게 감사기도를 올렸다. 그래서 민들레의 꽃말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출처 국립중앙과학관).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마른 땅을 촉촉히 적시는 물의 방사형 움직임이 반갑게 느껴진다. 방사형은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방향성으로 감정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며, 자신도 살리는 살아 있는 에너지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모양을 표현한다면 방사형이 아닐까. 어머니 자궁에서 작은 점으로 시작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과정이 살아 있는 방사형의 에너지처럼 느껴진다. 그릇에 물이 넘치면 자연히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마련이듯 끊임없이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의식, 살아 있는 방사형의 힘을 느끼며 하루하루 팽창하는 자신의 세계를 꿈꾼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소곤거리는 내면의 용을 부수고 천복을 따르라”고 주장한다. 테두리를 부수고 나올 용기만 있다면 생동하는 방사형의 환희를 즐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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