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7

2017.05.10

경제

삼성전자 · 우리은행… 지주사 전환을 둘러싼 진짜 속내

삼성 여론 의식해 포기? 우리銀 옥상옥? …“지주사만이 답 아냐”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5-08 1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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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재계에서 최대 화두는 ‘지주회사(지주사) 전환’이다. 4월 27일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지주사 전환을 돌연 포기하고 50조 원에 달하는 자사주도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우리은행도 ‘선(先) 민영화, 후(後) 지주사’ 추진의 뜻을 밝히며 연내 지주사로 전환하겠다는 당초 목표를 내년으로 연기했다.

    지주사란 투자보다 지배를 목적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 또는 증권의 과반수를 소유하는 회사를 말한다. 흔히 ‘재벌’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지분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A사가 B사 지분을 갖고 B사가 A사 지분을 갖는 상호출자 방식과, A회사 →B회사 →C회사 →A회사로 돌아가면서 지분 고리를 엮는 순환출자 구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런 지분구조 아래서는 한 계열사의 실적이 나빠지면 다른 계열사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또한 기업 총수가 이런 복잡한 지분구조를 통해 작은 지분으로 전 계열사를 좌지우지해 계열사의 독립 경영을 해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그에 비해 지주사는 지주사가 자회사를 지배하는 단순 구조이기 때문에 투명성이 보장되고 자회사도 다른 자회사에 대한 출자 부담이 없어져 고유 사업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자사주 소각하며 지주사 전환 포기 천명  

    하지만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갖춰야 할 요건도 많다. 먼저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비상장사는 50%) 확보해야 한다. 자회사 간 서로 지분을 갖는 일도 금지돼 있다. 작은 지분으로 여러 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으려는 규정인 것. 또한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자회사로 두는 것도 불가능하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한다(금산분리법)는 규정 때문이다. 지주사의 부채 비율도 100% 미만으로 유지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 검토를 공식적으로 밝힌 건 지난해 11월로, 투자자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요청에 의해서다.



    이후 삼성전자는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글로벌자문회사 등에 지주사 전환 여부를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이들로부터 ‘자사에 실익이 없다’는 최종 결과를 받았고 ‘지주사 전환 포기’를 공식화했다.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 불가 이유로 가장 먼저 언급한 부분은 자사와 계열사 간 보유 지분 정리 문제다. 현재 삼성 계열사들이 가진 삼성전자 주식은 삼성생명 7.55%, 삼성물산 4.25%, 삼성화재 1.32% 등 총 13.12%이다. 주식가치로 따지면 약 40조 원에 달한다. 엄청난 규모의 보유 지분을 정리하려면 각 계열사 이사회와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삼성전자가 이를 단독으로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금산분리법, 보험업법 등에 따라 일부 또는 전량을 매각해야 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분 매각 시 주가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는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구도나 삼성 전체 지배구조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국회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도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포기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국회에는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을 옥죄는 법안이 상당수 발의돼 있다. 특히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지주사 전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개정안은 기업이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사로 재편될 경우 자사주의 의결권 회복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인적 분할을 통해 기업이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쪼개지면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한다. 자사주를 지주사에 넘겨주면 지주사는 사업회사에 대해 자사주만큼 의결권을 갖게 되는 것. 현재 삼성전자 주가를 감안하면 지분 1%를 확보하는 데만 2조 원 이상이 든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13%에 달하는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어떻게든 지주사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 포기를 선언한 뒤 곧바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곧 지주사 전환 포기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지주사 전환을 통해 오너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려 한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현 상황과도 맞물린다.



    오너 지배구조 강화 의혹 불식

    이 부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현재 뇌물죄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있다. 특별검사 측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지원받으면서 그 대가로 최순실 등에게 자금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대가성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압박에 못 이겨 공갈, 강요에 의해 지원했다고 주장하는 만큼 재판에서 이러한 논리가 힘을 받으려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목적이 경영권 승계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결국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무효와 자사주 소각 결정은 이 부회장의 결백을 뒷받침해줄 근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이번 결정과 이 부회장의 재판은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자사주는 회사가 인수합병(M&A)을 추진하거나 핵심 인력에게 스톡옵션을 줄 때 주로 사용하는데, 최근 삼성전자는 하만(오디오 및 전장 기업)을 인수하고도 43조 원이 남은 상태라 자사주의 원래 목적에 비춰볼 때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소각을 통해 주가가치 상승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시장에서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는 높아지게 돼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자사주 소각 발표 후 계속 올라 5월 2일 기준 224만50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는 올해 초 180만5000원에 비해 24.4%나 급등한 수치다. 삼성전자는 4월 27일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보통주 1798만 주, 우선주 323만 주) 중 절반을 올해 소각하고, 나머지 50%는 내년 중 이사회 결의를 통해 소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은 민영화 추진과 긴밀하게 엮여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까지 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냈지만 최근 일정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3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비공개 간담회에서 우리은행 지주사 전환 관련 보고가 있었고, 지주사 인가 신청 시 정부 지분 매각이 늦어져 민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라 우리은행이 지주사를 신청하면 최대주주인 정부(예금보험공사)가 지분을 6개월간 팔지 못하는 보호예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통해 과점 주주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분 21.36%를 보유한 정부는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은행은 민영화와 지주사 전환을 놓고 선후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무리해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지주사 전환을 연기한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정권교체기에 금융당국과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승인이 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또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지금까지 추진해온 우리은행 민영화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 결국 우리은행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시간 차를 두고 민영화와 지주사 전환을 순차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가운데 29.7%를 한화생명, 한국투자증권, 동양생명 등 7곳에 4~6%씩 팔았다. 이를 통해 예금보험공사의 우리은행 지분은 21.36%로 줄었다. 정부는 예금보험공사의 잔여 지분에 대해서는 미회수 공적자금(2조2000억 원)을 회수할 정도로 우리은행 주가가 오르면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런 가운데 최근 우리은행 주가가 껑충 뛰면서 공자위는 우리은행 주식 매각 방법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영국과 프랑스 등 연기금 투자자들을 만나 우리은행의 정부 지분 매각을 위한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진행했다.

    하지만 금융관계자들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정부 지분 매각이 빠른 시일 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5월 공자위 간담회가 잡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안건이 있어 지분 매각 논의는 어려울 듯하다.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차기 정부로 우리은행 민영화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우리은행 지주사 전환 꼭 필요한가

    또한 지주사 전환과 관련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히 강하다. 우리카드, 우리종합금융,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우리신용정보 등 6개 계열사 가운데 우리은행이 차지하는 자본금 비율이 90%에 달하는 상황에서 굳이 지주사라는 ‘옥상옥’을 만들 이유가 없고, 이는 시장 논리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비대면 거래 활성화 등으로 은행 규모를 줄여야 하는 판에 지주사를 만들어 몸집을 불리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우리은행뿐 아니라 기존 금융지주사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지주회장이 제왕적 군림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과거 신한 사태를 보더라도 지주회장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신한 사태는 2010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사장의 권력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를 말한다. 당시 지주회장과 신한은행장이 함께 지주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 사건은 재판으로 이어졌으나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번 이광구 은행장 연임 때도 그랬듯이 지주회장을 선출하려면 임원추천위원회가 반드시 열리게 돼 있다. 현재 우리은행 사외이사들은 과거 ‘거수기’ 노릇만 하던 이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행장이 지주회장에 지원할지 안 할지도 아직 미정일뿐더러, 지원하더라도 사외이사들의 공정한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만 회장에 선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이 ‘옥상옥’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우리은행에 집중돼 있는 수익구조를 비은행업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지주사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은행법은 규제 요소가 대부분인 반면, 지주회사특별법을 적용받으면 비은행권의 활동 반경이 대폭 넓어진다는 것. 이 관계자는 “지주사로 전환해 ‘좌판’을 넓힌 뒤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계열사 간 정보 공유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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