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100세 시대’의 진실, 인공호흡기를 떼라!

10년 새 국내 100세 이상 노인 3배 증가 … 억지로 수명 연장 대신 완화 의료 선택해야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4-12 10: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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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100세 이상 인구는 몇 명이나 될까.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 집계 결과’를 보면 100세 이상 인구는 3159명(2015년 11월 기준)이다. 2005년에는 961명이었으니 10년 동안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통계청은 100세 이상 고령자를 전수 조사하기 때문에 오차도 거의 없다.

    그렇다면 3000명 넘는 100세 이상 노인이 사는 모습은 어떨까. 공기 좋고 물 좋은 장수 마을에서 한 세기를 함께 살아온 지기를 말벗 삼아 넉넉한 마음으로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을까. 혹은 증손자, 증손녀의 재롱을 지켜보면서 인생의 마지막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까. 진실은 이렇다.

    통계청의 같은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과 함께 사는 100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절반 이하인 44.6%로, 2010년 57.1%에 비해 12.5%p 떨어졌다. 반면 요양원, 요양병원 등 시설에 사는 노인의 비율은 43.1%로 2010년 19.2%에 비해 23.9%p 늘었다. 가족과 함께 사는 100세 이상 노인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3분의 2 이상(73.2%)이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



    100세 이상 3159명의 진짜 삶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100세 이상 노인의 다수는 병들어 신음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 요양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전수 조사차 방문한 통계청 직원에게 자신의 나이도 확인해주지 못하는 상태였다.
    지난 10년 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정해진 미래’(북스톤)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2000년대였으면 사망했을 분들이 의료 기술의 발달로 연명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이 이들의 생명을 연장시킨 게 결코 아니다. 이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연명 치료 혹은 연명 의료(Life Prolonging Care)는 죽음 앞에 선 환자를 두고 단지 생명 유지에만 신경 쓰는 치료를 말한다.
    어쨌든 100세 이상 살 수 있게 됐으니 연명 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일까. 안타깝게도 연명 의료는 개인에게도 재앙이다. 죽기 전에 삶의 질이 최악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연명 의료의 상징은 심폐소생술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ER’ 같은 미국 메디컬 드라마에서는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의 상당수(3분의 2 정도)가 생존한다. 하지만 실제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가 살아서 퇴원하는 경우는 8~18%가량이다. 그렇다면 연명 의료에 의존해야 하는 말기 질환 환자의 성공률은 어떨까.

    2009년 ‘SCC(Supportive Care in Cancer)’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심 정지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받은 말기 암 환자 61명 가운데 10명(11%)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렇게 심폐소생술로 살아남은 환자 10명의 평균 생존 시간은 불과 3시간이었다. 심폐소생술로 일시적으로 살아남았다가도 결국 갈비뼈가 부러진 채 운명한 것이다.

    연명 의료의 또 다른 상징은 기관 내 삽관(intubation)이다. 연명 의료를 받을 정도의 노인이나 말기 환자는 상당수가 자가 호흡이 곤란하기 때문에 코나 입으로 튜브를 집어넣어 인공호흡을 시킨다. 이렇게 일단 튜브를 집어넣으면 사망할 때까지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할 뿐 아니라, 설령 의식이 있더라도 가족과 변변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케네디 상원의원의 아름다운 마지막

    실상이 이런데도 공격적인 연명 의료가 늘어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병원이 연명 의료를 원한다. 수익을 올려야 하는 병원 처지에서는 고령의 환자를 비롯한 중증 말기 환자에게 공격적인 연명 의료를 처치해 하루, 한 주, 한 달 이렇게 수명을 연장시킬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또 다른 이유는 환자의 가족이다. 평소에는 돌보지도 않던 타지의 아들, 딸이 임종 직전 나타나 의사를 붙잡고 울면서 애원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세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을 지칭하는 용어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신드롬(Daughter from California Syndrome).’ 한국이라면 ‘미국에서 온 딸 신드롬’이라 불러도 되겠다.

    이런 사정 탓에 결국 환자는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기도로 연결된 인공호흡 장치에 의존하다 세상을 떠난다. 이뿐 아니다. 한국 사회가 치르는 비용도 엄청나다. 왜냐하면 죽기 직전 며칠, 몇 주, 몇 개월의 연명 의료에 드는 막대한 비용이 대부분 시민이 십시일반 조성한 국민건강보험금에서 나가기 때문이다.

    환자도 불행하고, 이런 죽음을 지켜보는 (미국에서 온 딸을 포함한) 가족도 불행하며, 사회도 막대한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공격적인 연명 의료를 언제까지 용인해야 할까. 이런 흐름에 맞서 최근 용기 있는 의사 일부가 ‘완화 의료(Comfort Care 혹은 Palliative Care)’를 실천하고 있다. 완화 의료는 죽음 앞에 선 환자를 두고 연명만을 위한 공격적 처치 대신 마약성 진통제 등을 이용한 통증 완화 등으로 마지막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처치를 통칭한다.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의 적잖은 의사가 완화 의료의 필요성을 의식하고 ‘존엄한 죽음’ 혹은 ‘아름다운 죽음’을 선물하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2009년 8월 25일 만 77세로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케네디(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막냇동생) 전 미국 상원의원의 마지막은 완화 의료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죽음의 한 모습이다. 악성 뇌종양으로 고생하던 그는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가족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영화 ‘007 시리즈’를 보다 죽었다.

    미국 최고 명문가 출신 상원의원이 돈이 없어 연명 의료를 포기했을까. 낯선 공간에서 의식도 없이 인공물에 둘러싸여 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시선을 주고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 이제 ‘100세 시대’의 진실을 직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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