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2017.04.12

경제

한일 간 경제 격차 재확대 조짐

1인당 GDP 차이 벌어지고 부가가치 창출·4차 산업혁명서도 열세…“장기침체에 장사 없다”

  •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leebuh@hri.co.kr

    입력2017-04-12 09: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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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경제는 빠르게 일본을 추격하며 국민의 극일(克日)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제계에서는 한일 간 경제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 총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한국이 0.6%, 일본은 9.8%로 양국 간 격차는 9.2%p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한국 1.9%, 일본 6.3%를 기록해 4.4%p로 축소됐다. 1인당 GDP도 95년에는 한국이 약 1만2000달러, 일본이 약 4만3000달러로 3만 달러 이상 차이 났지만 지난해에는 한국 약 2만8000달러(약 3147만 원), 일본 약 3만7000달러(약 4159만 원)로 격차가 1만 달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데이터만 살펴보면 양국 간 경제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 총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 차이는 2015년 3.7%p까지 하락했으나, 지난해 4.4%p로 재상승했다. 1인당 GDP 차이도 같은 기간 5257달러(약 590만 원)에서 9671달러(약 1087만 원)로 벌어졌다. 이는 한국 경제가 최근 6년 연속 GDP 갭률((잠재GDP-실제GDP)÷실제GDP×100)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성장 잠재력에도 못 미칠 만큼 낮은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   ·  기술 경쟁력 약화


    반면 일본은 2012년 아베노믹스 등장 이후 성장 위주의 경제 운용으로 미미하나마 ‘성장세’가 이어졌다. 그렇기에 양국의 경제 격차가 벌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부정적인 건 앞으로 우리 경제가 일본 경제를 더는 따라잡기 힘들 것이란 점이다. 특히 경제 전반의 리스크 대응력과 산업·기술 경쟁력, 기업 성과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리스크 발생 시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는 국부 규모나 외환보유고, 국가 살림살이의 건전성과 대외 신뢰도 같은 ‘경제 체력’으로 결정된다. 한국의 국부 규모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거 감소된 이후 다시금 증가세로 전환돼 2015년에는 10조9000억 달러(약 1경2253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40.2% 수준에 불과하다. 외환보유고도 한국은 지난해 기준 3711억 달러(약 417조9100억 원)인 반면 일본은 1조2168억 달러(약 1367조9200억 원)로 3배 이상 많다. 즉 리스크 발생 시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몇 배나 더 위험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재 국가 살림살이의 건전성과 대외 신뢰도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다는 점이다. 국가 살림살이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은 지난해 기준 한국 38.9%, 일본 250.4%에 달한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Moody’s), 피치(Fitch) 등이 평가한 국가신용등급도 한국이 일본에 비해 1~2단계 더 높다.

    하지만 만약 이 상태에서 한국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기를 맞이하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미 우리나라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L자형 침체기’에 돌입했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는 물론 미래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단연 산업·기술 경쟁력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수출 경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더욱이 국부 창출과 직결되는 부가가치 창출력이나 4차 산업혁명 같은 미래 산업 준비도 여전히 일본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다. 먼저 수출 경쟁력부터 살펴보자. 국내 총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8대 품목 중 세계시장 내 한국의 대일(對日) 비교우위 품목 수는 5개(석유화학, 철강, 철강제품, 기계류, 자동차)로 변함이 없다. 중국시장에서는 정보기술(IT)과 정밀기기, 유럽연합(EU)시장에서는 철강제품이 상대적 비교 경쟁우위 상품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미국과 EU시장 내 기계, 자동차, 정밀기기의 비교 경쟁력은 상대적 열위를 보이는 등 선진국 시장에서 경쟁력 정체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한일 간 과학·기술 경쟁력 격차 또한 여전히 크다. 한국의 세계 과학 경쟁력은 2009년 3위까지 상승하면서 2위 일본을  바짝 추격하는 듯 보였으나, 지난해에는 갑자기 8위까지 하락했고 일본은 여전히 2위를 차지했다. 기술 경쟁력도 2004년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 후 2005년에도 2위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15위까지 하락해 일본(10위)에 재역전됐다. 10대 국가전략기술 전체 수준도 일본에 비해 2.8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체력 약한 한국 기업 어쩌나 

    부가가치 경쟁력 역시 일본이 우세하다. 한국의 최종 수요, 즉 1년 동안 국내에서 소요되는 총부가가치에서 국내 부가가치 창출의 비중은 2000년 45.1%에서 2014년 40.2%로 하락했다. 물론 같은 기간 일본도 53.6%에서 51.8%로 낮아졌으나, 줄곧 한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양국 간 격차는 같은 기간 8.5%p에서 11.6%p로 오히려 확대됐다.

    4차 산업혁명 대응력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시장 유연성, 기술 수준, 교육시스템, 사회간접자본(SOC) 수준, 법적보호 등 5개 부문을 평가한 결과 한국의 기술 수준은 그나마 일본과 유사하게 나타났지만 나머지는 일본과 큰 격차를 보여 한국은 전체 25위, 일본은 12위를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경제의 투자와 고용을 담당하는 기업의 체력, 즉 기업 성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매출액으로 본 성장성은 일본 기업의 회복력이 미약한 가운데 한국 역시 증가율이 0%대로 하락하면서 양국 모두 비슷하다. 매출액 영업이익률로 본 수익성은 한국은 2010년 5%대 초반에서 2015년 4%대 후반으로 낮아진 반면, 일본은 같은 기간 2%대 후반에서 3%대 후반으로 개선됐다. 이는 우리 기업의 성장력이 떨어지면서 수익성도 악화되고, 기업 경쟁력 하락은 물론 경제 전반의 수요가 점차 감소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한국 경제는 과거 빠른 속도로 일본을 추격해왔지만 여전히 규모나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뒤처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국내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다면 양국 간 격차는 훨씬 더 커질 게 뻔하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국내 경제 성장판이 너무 빨리 닫혔다’(성장판 조기 폐쇄·premature closure of growth plate)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이를 정부가 방관했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론 지금 당장 일본을 앞서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언제 발생할지 모를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 돼 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경제 운용 전반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한국형 성장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일부에서 주장하는 민간 중심의 수출 주도형 캐치업(catch-up) 전략을 대폭 확대하고, IT 융합 분야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선도 전략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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