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2

2017.04.05

와인 for you

800년 역사 담긴 농밀한 풍미

스페인 스칼라데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4-04 11: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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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와인 전통을 보존하는 데는 수도원의 공이 컸다.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과 청빈한 삶을 추구한 수도사들은 포도를 손수 재배해 미사 또는 식사에 필요한 포도주를 빚었다. 이들은 농경 일지와 양조 과정을 꼼꼼히 기록했고, 1000년 넘게 축적한 지식은 와인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12세기 중반 카르투시오(Cartusiensis) 수도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서쪽으로 150km가량 떨어진 내륙 산간 지방 프리오라트(Priorat)에 와인을 전파했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수련하는 봉쇄형 수도원 카르투시오회에게 첩첩산중에 위치한 프리오라트는 딱 맞는 환경이었다. 이들은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암벽 아래 수도원을 짓고 스칼라데이(Scala Dei), 즉 카탈루냐(Catalunya)어로 ‘신에게로 가는 사다리’라고 이름 붙였다.




    수도사들은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포도밭을 일궜다. 프리오라트는 비가 매우 적은 곳이지만 토양에 점판암과 석영이 많이 섞여 포도 재배가 가능했다. 흙이 단단하지 않고 잘 부서져 포도나무가 지하수까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는 척박한 이곳의 주 수입원이 됐고, 프리오라트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세기 이 지역을 강타한 병충해는 포도밭을 초토화했고, 스페인 의회는 교회의 재산을 몰수해 공매에 부쳤다. 스칼라데이 와이너리도 여러 번 소유주가 바뀌다 2000년 스페인 최대 스파클링 와인 회사 코도르니우(Codorniu)에 매입될 때까지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코도르니우는 스칼라데이 와인의 전통을 되살리고 토착 적포도 가르나차(Garnacha) 본연의 맛을 찾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총면적 70ha(약 70만m2)에 이르는 스칼라데이 포도밭은 산등성이 여기저기에 흩어진 41개의 작은 밭으로 돼 있다. 밭 경사가 심해 기계를 쓸 수 없으니 포도 재배는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밭마다 해발 고도가 다르고 경사면 방위도 제각각이어서 같은 품종이라도 맛이 조금씩 다른 포도가 생산된다. 포도밭별로 와인을 따로 양조한 뒤 블렌딩하면 맛과 향이 훨씬 더 풍부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스칼라데이 가르나차(Garnatxa)는 프리오라트의 테루아르(terroir·토양 및 환경) 풍미를 제대로 담은 와인이다. 가르나차 포도 100%로 만든 이 와인은 산딸기와 라즈베리 같은 베리향이 산뜻하면서도 풍부하다. 매끄럽고 탄탄한 타닌이 매력적이고, 은은한 미네랄향은 와인에 세련미를 더한다.

    스칼라데이 프리오르(Prior)는 좀 더 묵직한 스타일이다. 가르나차 55%에 카리네나(Cariñena), 시라(Syrah),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섞어 만든 이 와인은 검은 자두와 체리처럼 검붉은 베리류의 향이 진하고 질감이 벨벳처럼 부드럽다. 와인을 목으로 넘긴 뒤에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바이올렛향이 입안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스칼라데이는 와인의 농밀한 맛과 향을 위해 포도나무에 열리는 송이 수를 제한한다. 그루당 포도 생산량이 1kg이 안 될 때도 있다. 과연 수지타산이 맞을까 염려스럽지만 전통을 살린 최고 와인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신념은 확고하다. 스칼라데이 한 병에는 프리오라트의 흙, 태양, 바람, 그리고 800년 넘는 와인 역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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