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2017.03.29

인터뷰

“모든 일은 개 한마리에서 시작됐다”

이원영 수의사 ·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저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3-27 11: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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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서 이원영 수의사(우리아이동물병원 원장)가 안고 있는 강아지 이름은 ‘말랑이’다. 처음 만났을 때 온몸이 말랑말랑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 원장 집에는 ‘지지’라고 부르는 고양이도 있다. 얼굴 한 부분만 털 색깔이 달라 ‘지지’가 묻은 것 같다는 의미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단다.

    ‘아이들’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내 이 원장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가 최근 펴낸 책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의 한 대목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개, 고양이와 나란히 누워 있거나 천천히 쓰다듬으며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있다 보면, 하루 종일 자신을 둘러싸고 흔들어댔던 온갖 허울과 가식과 세속적 밀당으로부터 벗어난, 거의 완전에 가까운 자유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저절로 무장 해제가 된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매사에 의미를 추구하고, 몸과 마음이 온통 목적지향적인 우리 평범한 인간들의 부담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해준다.’





    나를 변화시킨 ‘복돌이’

    이 원장은 반려동물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개, 고양이를 만나기 전 그는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오히려 ‘진지하고 심각하게 매사에 의미를 추구’하는 쪽에 가까웠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학자의 길을 걸으려 했던 때다. 그는 끝없이 책을 읽었고, 수많은 고민 속에 파묻혀 지내며 자주 밤잠을 설쳤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강아지 한번 키워볼까”라고 제안한 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삶에 들어온 개 ‘복돌이’는 이 원장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고 한다.
     
    이 원장은 복돌이와 함께 살게 된 뒤 “불면증이 줄고 즐거움이 늘었다”고 했다. “전보다 인상을 덜 쓰고, 책 밖에 있는 실질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고도 했다. 담백한 표현인데 힘이 있었다. 그 전까지 개를 ‘주인이 주는 밥 먹고 마당에서 실컷 자거나 집을 지키다 식구들 돌아오면 반갑게 짖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던 그에게 복돌이는 인간과 개가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이 원장은 복돌이를 만난 뒤 직업 철학자의 삶을 포기했고, 30대 중반 나이에 다시 대입시험을 치러 수의대에 진학했다. 복돌이는 이 원장이 어떤 수의사가 될 것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큰 구실을 했다고 한다. 그가 쓴 책의 한 대목이다. 

    ‘어느 날 우리 복돌이가, 밥은 잘 안 먹는데 배가 너무 불러오고, 너무 핏기가 없어졌다. 동물병원에 데려갔고, 결국 받은 진단은 비장의 혈관육종이라는 악성종양이었다.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근 8개월을 멀리 떨어진 동물병원을 오가야 했다. 수의과대학 학생이었던 그 시절, 아픈 복돌이와 함께 동물병원을 오가며 ‘좋은 수의사’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또한 보호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수의사 앞에 앉게 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던 그 시절 이 원장은 다섯 달 치 생활비를 병원비로 쓸 만큼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복돌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2008년의 일이다.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복돌이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이 원장 안에서 수없이 되살아난다.

    병원에서 개, 고양이를 진료하고 그들의 보호자를 만날 때, 새로 이 원장의 식구가 된 말랑이, 지지 등 다른 반려동물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주 복돌이를 떠올린단다. 이 원장이 자신의 책에 ‘만남부터 이별까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유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이 단지 동물 한 마리를 구매해 집 안에 두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갖는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우리나라 반려동물 사육 인구는 457만 가구, 약 1000만 명이다. 국민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이 원장처럼 반려동물과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최근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며 반려견을 두고 간 행동이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반려견 행동전문가 강형욱 씨가 쓴 책 제목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말이 세간에 유행했다. 이 원장에게 바로 그 질문을 던졌다. 누구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상에서 ‘개를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는 “반려동물을 자신을 꾸미기 위한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반려동물을 생명체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되도록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강아지는 강아지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같이 오래 살아가려면 서로 편안해야 해요. 세상에 반려동물을 애지중지하는 사람은 많지만 적절한 거리를 두고 그 ‘아이’가 본성대로 살 수 있게 배려해주는 보호자는 드물죠. 그런 보호자를 만나면 ‘다음 생에는 저런 사람 집의 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그는 “반려동물을 학대하거나 소홀히 대해도 안 되지만 너무 잘해주려 안달하거나 조급하게 서둘러도 탈이 난다”면서 “강아지는 강아지대로,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또 사람은 사람대로 자기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새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나톨 프랑스가 말했듯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 사람의 영혼을 깨우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관계를 맺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원장은 이 대목에서 함께 사는 고양이 지지 얘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하다 구조돼 이 원장의 집에 오게 된 지지는 함께 지낸 지 4년이 지나도록 머리 한 번 쓰다듬는 걸 허락지 않았다고 한다. 늘 예민했고 주로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책장 위, 선반 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제게 지지가 다가왔어요. 머리로 제 옆구리를 비비기에 턱을 부드럽게 만져줬더니 도망가거나 할퀴지 않고 그대로 있더군요. 그렇게 30분이나 제 배 위에 있었습니다. 생후 1~2개월 때 거리에서 가혹한 경험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된 한 고양이가 두려움을 이기고 사람에게 다가서기까지 무려 4년이 걸린 거죠. 그 순간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황홀해요.”

    하지만 이후에도 지지는 여전히 그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주 가끔 쓰다듬을 수 있게 허락할 뿐이다. 그래서 이 원장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려동물을 자신의 삶 속에 들이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유기묘, 유기견을 키우는 데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적절한 절차를 거쳐 기꺼이 그 길에 뛰어들 경우 ‘행복으로 가는 버튼이자,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책 프롤로그처럼 이 원장의 변화 또한 ‘모든 일은 개 한 마리에서 시작’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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