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경제 |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취업 안 되면 기술 배우라더니…

기술직 취업해도 경력 쌓기 어려워… /임금은 알바 시급 수준도 허다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3-03 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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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직에라도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술을 배웠지만 지금 와서는 후회가 된다. 일은 힘든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 몸만 축나는 느낌이다.”

    인문대 졸업생이지만 지난해 선반 컴퓨터수치제어(CNC) 기술을 배워 기술직으로 공장에 취업한 이모(27) 씨의 말이다. 그는 6개월간 교육을 거쳐 직원이 100명 넘는 기계가공 공장에 취업했다. 하지만 급여가 너무 낮아 올해 초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시험 준비에 뛰어들었다.

    최근 대졸자를 중심으로 금형가공, 용접 등 전문기술을 배우는 취업준비생이 늘고 있다. 장기화된 취업준비 기간에 사무직을 포기하고 기술직으로 돌아서는 것. 기술직으로 착실하게 경력을 쌓으면 월 300만 원 이상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글에 혹한 청년도 많다. 그러나 실상은 이씨처럼 청년 대부분이 기술직으로 취업해 제대로 된 월급을 받기가 쉽지 않다. 대형공장이나 공사현장에서는 기술이 손에 익지 않은 청년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작은 공장에 가자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기조차 어렵다.



    큰 공장 찾아갔더니 월급이 160만 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기술직의 평균 월급은 264만7557원이다. 평균치임을 감안하면 경력을 많이 쌓은 기술자는 월 300만 원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이에 취업 장수생 가운데 일부는 기술직 취업을 꿈꾼다.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중소기업 사무직 취업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월 31일 온라인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가 중소기업 523개를 설문조사한 결과 34.2%(179개)만 올해 사무직 채용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 역시 지방 4년제 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년간 취업준비를 했지만 마땅한 취업처가 없어 고용노동부(고용부)의 직업훈련을 받았다. 그는 “4년간 공부하고 2년간 취업준비를 했는데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다. 중소기업에 사무직으로 취업하려 했지만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이 160만 원 정도였다. 이것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다른 직종을 찾다 기술직이 중소기업에서는 대우가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기술 취업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기술을 배우고자 전문대에 재입학하는 학생(전문대 유턴입학자)이 최근 5년간 꾸준히 늘었다. 2012년 1102명이던 전문대 유턴입학자가 2013년 1253명, 2014년 1283명, 2015년 1379명, 2016년 1395명으로 늘어난 것.

    취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기술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고용부가 나섰다. 기술교육에 드는 비용을 고용부가 취업준비생 대신 내주는 프로그램인 ‘국가기간전략산업 직종훈련’을 만든 것이다. 만 15세 이상 실업자라면 누구나 직종훈련에 지원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교육을 받으면 비용 전액을 고용부가 부담한다.

    그러나 기술을 배운 청년도 취업난을 피할 수 없었다. 제조업도 경기가 나빠지면서채용 규모가 줄어든 것. 2월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중소기업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동월 대비 16만 명 줄었다. 이씨는 “기술만 배우면 취업이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이가 어린 경쟁자나 관련 직무 경력이 있는 경쟁자에 밀려 취업이 쉽지 않았다. 어렵게 직원이 100명 남짓한 공장에 취업했지만 월급이 180만 원 수준으로 전에 다니던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온라인 취업 사이트의 채용공고를 보고 서울시내 선반 기술 신규 취업자를 구하는 한 중소기업에 연락해 월급을 물었다. 인사담당자는 “야근과 특근 수당을 합하면 월 200만 원 이상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 근무로 벌 수 있는 돈은 월 160만~180만 원이었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경력이 없는 신입은 회사에서 교육을 받으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채용하는 기업도 적고 채용된다 해도 급여가 적다. 그 대신 경력이 쌓일수록 버는 돈이 많아진다. 3년 이상 경력자 중에는 300만 원 넘게 월급을 받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경력 쌓으려고 작은 기업 갔더니

    제조업계 경력자들은 경력을 쌓으려면 큰 기업보다 작은 기업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금형가공업계에서 6년간 일해온 김모(32) 씨는 “대형공장은 시급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작업보조원을 채용하는데, 보조원 경력은 업계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최근 경력직을 채용할 때 공장에서 선반, 금형 등 관련 실무를 시켜보는 경우가 많다. 이 시험에서 보조원으로만 일한 사람은 혼자 실무를 해본 적이 없어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제조업에 오래 종사할 생각이라면 작은 기업에 취업해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경력을 위해 작은 기업을 골라 취업하는 데도 문제는 있다.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야근 수당, 초과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 안산시의 정모(26) 씨는 지난해 5월 사장을 포함해 근로자가 3명인 소규모 공장에 금형가공 기술자로 취업했다 5개월 만에 그만뒀다. 정씨는 “아침 9시까지 출근해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야근 수당, 초과근무 수당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경력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5개월간 친구들 한번 못 만나가며 일했지만 150만 원 월급이 생활비만으로 증발해버렸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11조 2항에 따르면 상시 4명 이하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 경우 근로자는 휴업 · 연장 · 야간 · 휴일 가산수당을 보장받지 못한다. 정씨는 “결과적으로 좋은 직장을 찾지 못했지만 기술교육은 무료로 받았으니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에 불만은 없다. 다만 직업훈련 외 취업 알선도 제대로 해준다면 나 같은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부는 청년을 대상으로 한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정책 사각지대를 메울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취업지원 사업과 연계해 청년인턴제를 통해 해당기업에서 기술교육을 받고 취업할 경우 취업 알선과 청년내일채움공제(중소기업에서 3년 근속한 청년에게 지원금 900만 원을 주는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취업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청년들이 최적의 취업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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