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2017.02.22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 담긴 숨은 1인치 ②

‘메신저 거부현상’에 안희정 웃고, ‘샤이 박근혜’ 거울효과에 황교안 웃어

조기 선거 가능성으로 도드라진 ‘대선 이색 현상’

  •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ankangyy@hanmail.net

    입력2017-02-17 16: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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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다. 전쟁이 끝난 뒤 서독(현 독일)은 25년간이나 반복적으로 사과했지만 폴란드 국민의 증오는 풀리지 않았다. 1970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비 오는 날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비로소 폴란드 국민은 마음을 열고 서독을 받아들였다. 흔한 역사적 경구지만, 메시지는 전달자가 신뢰받을 때 국민(유권자)에게 도달될 수 있다.

    선거는 메시지가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신뢰를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른 2004년 총선이 그랬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은 어떤 메시지를 내놔도 통하지 않았다. 후보 명함을 받은 유권자는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곤 했다. 악수 거부는 기본이고 침을 뱉거나 욕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력 정치인은 줄줄이 심판을 받고 사라졌다. 2007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26.14%를 얻는 데 그쳤다.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패배,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패배,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패배는 메신저 거부현상에서 비롯된 결과다.



    억세게 운 좋은 대선주자

    지금도 범여권 대선주자에 대한 메신저 거부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2월 1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지지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11%,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3%이다. 범여권 후보 지지율이 총 14%에 불과한 것. 이에 비해 범야권 대선주자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29%, 안희정 충남도지사 19%, 이재명 성남시장 8%,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7%,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1%이다. 모두 합치면 64%에 이른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촛불정국 이후 국민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소속 대선주자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범여권 대선주자에게는 백약이 무효다. 아무리 그럴듯한 공약을 내놔도 국민은 단박에 외면해버린다. 오늘도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친다.



    우는 자가 있다면 웃는 자도 있다. 안희정 지사는 억세게 운이 좋은 대선주자다. 그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범여권 주자들에 대한 메신저 거부현상으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또한 뒤에서 다룰 ‘샤이 박근혜’ 거울효과, 대구·경북의 배신자 프레임에서도 직간접적인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안 지사는 2월 10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19% 지지율을 얻어 문재인 전 대표(29%)를 10%p 차이로 추격했다. 2월 15일 MBN-매일경제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18.8%를 획득했다. 50대와 60세 이상, 대전·세종·충청, 부산·울산·경남, 인천·경기에서 강세다(표 참조). 중도 및 보수가 강세를 보이는 세대와 지역이다. 메신저 거부현상 때문에 범여권 대선주자들에 대한 잠재적 지지가 안 지사에게로 몰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저 4%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는 과소(寡少)평가된 결과일 수 있다. 자유한국당 지지율 15% 전후, 탄핵 반대나 기각 여론 15%, 황 대행 대선주자 지지율 15% 전후 등이 그 근거다. 탄핵 찬성 분위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 지지를 밝히지 못하는 숨은 지지(샤이 박근혜)가 최소 15% 수준은 된다는 얘기다.

    황 대행은 범여권으로 분류되지만 유일하게 메신저 거부현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와 공통점이 있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을 거울효과라고 한다. 황 대행은 박 대통령의 아바타이자 지킴이 구실을 수행한다. ‘샤이 박근혜’는 이런 황 대행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샤이 박근혜’에게 황 대행은 거울이다. 따라서 황 대행 지지율 상승은 ‘샤이 박근혜’ 거울효과다. 이 때문에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황 대행을 지지하기 어려운 온건보수는 안 지사에게 눈길을 돌린다.



    배신자 프레임 유승민, 길을 잃다

    2월 15일 MBN-매일경제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탄핵소추안 인용 의견은 69.5%, 기각은 22.2%이다. 전국 인용 의견 72.5%, 기각 19.5%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혀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2월 1일 TBC-매일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탄핵 인용 의견은 48.8%, 기각은 47.0%이다. 인용과 기각이 백중세를 이루고 있다.

    어느 여론조사가 정확한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대구·경북의 분위기는 후자 쪽에 가깝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임박하면서 박 대통령을 향한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대선주자들도 탄핵 반대로 속속 선회하고 있다. 탄핵을 주도했던 유승민 의원과 바른정당에 대한 거부감도 생각보다 강하다. 특히 유 의원에게는 배신감을 느낀다는 목소리도 자주 들려온다.  

    유 의원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수 잠룡이다. 그러나 유 의원 지지율은 3~4%를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다.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에서도 6~9%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안 지사의 대구·경북 지지율은 유 의원보다 두세 배나 높다. 전통적 보수 지지기반인 60세 이상에서도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에도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배신자 정서가 짙게 깔린 탓이다. 유 의원은 메신저 거부현상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배신자 프레임에도 갇혀 있다. ‘샤이 박근혜’ 거울효과도 앞을 가로막고 있다. 유 의원은 안 지사와 정반대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대선주자들에게 언제쯤 마음을 열고 메시지를 받아들일까. 이대로 대선을 치를지, 반전의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진짜 선거는 그때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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