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1

2019.08.09

기획 특집 | 세계 질서 재편기, 한국 경제 활로 찾기

중성자폭탄 같은 수출품 찾기에 혈안이 된 日 정부

한국 미래 먹거리 중 수입 의존도 높은 전략물자는 우회로 찾아야

  • 정보라 기자

    purple7@donga.com

    입력2019-08-12 08: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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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8월 6일 삼성전자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현장경영에 나섰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8월 6일 삼성전자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현장경영에 나섰다. [뉴스1]

    일본은 8월 7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법령으로 수출규제를 분명히 못 박은 만큼, 우리나라도 그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경제전쟁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가 국내 산업에 끼칠 영향이다. 일본은 기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 외에 추가로 한국만을 타깃으로 ‘개별허가’를 강제하는 품목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은 물론, 한일 경제갈등도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단기 처방도 중요하지만 장기전에 대비한 긴 호흡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재정 지원보다 규제개혁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타격을 노리는 한국 생산품은 앞으로 양국 간 극적인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한 조금씩 늘어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한국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품이 우선순위로 올라갈 개연성이 크다. 국내 전문가들은 “지금 일본은 건물이나 설비를 훼손하지 않고 사람만 죽이는 중성자폭탄 같은 물품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략물자 공작기계, 직격탄 맞을 수도

    일본 수출규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산업 분야는 반도체다. 7월 4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로 사용되는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품목을 개별허가 대상으로 전환하면서 한일 경제전쟁이 촉발됐다는 점에서다. 기존에는 일본 소재업체가 한국 기업에 수출할 때 포괄허가를 받으면 3년 동안 개별심사가 면제됐지만, 앞으로는 수출할 때마다 제품과 판매처, 수량 등에 대해 일본 경제산업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일본이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수출을 규제한 것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업계 1위인 대만 TSMC를 뛰어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EUV(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해 7나노(nm·나노미터) 제품 출시에 성공했다. EUV 공정을 적용하면 반도체 회로 선폭을 더 얇게 만들 수 있고, 회로 선폭이 얇을수록 회로가 많아져 결과적으로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포토레지스트 중 EUV 장비 수출을 규제함으로써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에 빨간불이 켜졌다. EUV 장비는 일본이 보유한 최첨단 기술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국내 기업이 자체적으로 EUV 기술 개발에 나선다 해도 상용화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 세계 D램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한국이 반도체 생산에 타격을 입으면 중국과 미국 등에서 일본에 강한 불만을 표시할 수 있어 본격적인 수출규제가 적용되는 10월 이후 일본이 부분적으로 수출규제를 해제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10월 일부 품목의 수출규제가 풀리더라도 새로운 품목에 수출규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며 “전기차 배터리처럼 세계 공급체인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한국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품목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금속공작기계 분야 역시 수출규제 파급력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금속공작기계 분야에서 일본 제품 의존도는 40% 수준.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추가 설비 도입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사업 확장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더욱이 신규 설비는 물론, 기존 설비의 수리를 위한 부품 조달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금속공작기계의 경우 부품의 60%를 일본이 전략물자로 지정한 상태라 수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공작기계를 만들 때 필수적으로 쓰이는 핵심 부품인 수치제어반의 경우 일본 의존도가 91.3%에 달한다. 

    금속공작기계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국내 최대 기계산업의 메카로 통하는 창원국가산업단지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창원국가산업단지에는 공작기계 완제품과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 300여 개가 입주해 국내 전체 공작기계의 70%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회적 방법으로 조선업 타격 우려

    울산 현대중공업 도크 모습. [뉴시스]

    울산 현대중공업 도크 모습. [뉴시스]

    일본의 수출규제에도 조선업은 국산화율이 높아 제품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국내 조선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7월 29일 KDB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불법 보조금으로 보고 WTO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우리나라 정부 금융기관이 대우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체에 지원한 대출과 보증·보험이 WTO 보조금협정 위반이라며 WTO에 제소한 바 있다. 또한 일본 조선업계 역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심사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7월 30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에 대해 경쟁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 당국이 법령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우리 금융당국의 바람대로 일본 당국이 공정하게 심사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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