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상반기 가요계 핵돌풍 일으킨 ‘있지’ ITZY

요즘 케이팝 흐름과 “난 달라 달라”

명쾌한 이미지와 착 붙는 멜로디로 10대 소녀부터 중년 ‘아재’까지 어필

  •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tres.mimyo@gmail.com

    입력2019-03-26 10: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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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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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5일 KBS ‘뮤직뱅크’ 1위는 이미 활동을 마무리한 5인조 걸그룹 ‘ITZY(있지)’에게 돌아갔다. 1월 데뷔한 ‘있지’가 주요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벌써 9번째. 데뷔 11일 만에 1위를 기록했고 1위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데뷔곡 ‘달라달라’의 유튜브 조회수 역시 2월 10일 공개 첫날 1000만 회를 넘기더니 일주일 만에 5000만 회를 돌파했다. 3월 중순 현재 8500만 조회수를 훌쩍 넘어섰다. 걸그룹의 데뷔곡으로는 이례적인 높은 성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과거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그룹 데뷔 시절의 기시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과거와 달리 전통 대형 기획사들의 신인조차 시장에 안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있지’와 JYP엔터테인먼트의 성과는 더욱 놀랍게 다가온다.

    ‘걸크러시’ 넘어 ‘틴크러시’ 표방

    ‘있지’가 표방하는 키워드는 ‘틴크러시’다. 매우 자의적인 단어지만 대략 설명하면 선명한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을 일컫는 ‘걸크러시(girl crush)’에 10대(teen)의 생기발랄함을 더한 개념이다. 한마디로 ‘강렬한 테마를 구사하는 걸그룹이지만 활달하고 가벼운 기조를 갖는다’는 의미라 하겠다. ‘있지’가 강렬한 이미지의 블랙핑크와 비견되거나, 밝고 귀여운 이미지의 트와이스와 대조되는 이유다. 

    ‘달라달라’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도 이런 콘셉트에 잘 부합한다. 명쾌하게 뻗는 하우스 비트에 다소 어둡고 무겁게 느껴지는 사운드가 결합해 긴장감을 준다. 후렴에서는 갑자기 밝고 친숙한 멜로디가 터져 나오고, 다소 구전동요 같은 테마로 “난 달라 달라”를 강조한다. 뮤직비디오에서는 감시카메라가 멤버들에 대한 세간의 주목을 상징함과 동시에, 멤버들이 이를 거부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배경으로 펼쳐진 도시 풍경은 꿈 많고 자의적인 10대의 시선을 상징하듯 비비드한 색감과 노이즈로 왜곡된다. 멤버들은 능숙하고 역동적인 안무를 소화하면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감 있는 미소를 보여준다. 

    아이돌에게 곡과 뮤직비디오의 완성도가 승부의 전부는 아니다. 대중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은 멤버들은 각기 개성적이고 출중해 보인다. 남성 팬들로부터도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만, 여성 팬들의 눈에 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중평이다. 무대에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리스마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대화하거나 웃을 때는 ‘순둥이’ 같은 표정이 나오기도 해 더욱 빠져든다는 이들도 있다. 아이돌시장에서 남성 팬의 존재가 한창 부각되던 때도 있었지만, 팬덤으로서 충성도나 적극적인 소비력 등은 여성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걸그룹이라도 여성 팬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있지’ 역시 그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있지’의 일부 멤버는 과거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왼쪽부터 JTBC ‘믹스나인’에 출연한 류진, SBS ‘더 팬’에 출연한 예지, 엠넷 ‘식스틴’에 출연한 채령. [방송화면 캡처]

    ‘있지’의 일부 멤버는 과거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왼쪽부터 JTBC ‘믹스나인’에 출연한 류진, SBS ‘더 팬’에 출연한 예지, 엠넷 ‘식스틴’에 출연한 채령. [방송화면 캡처]

    데뷔 전 멤버 류진은 JTBC ‘믹스나인’에, 예지는 SBS ‘더 팬’에, 채령은 SBS ‘K팝스타’와 엠넷 ‘식스틴(SIXTEEN)’에 각각 출연한 바 있다. 류진은 ‘믹스나인’에서 상위권 멤버로 주목받았고, 채령은 두 방송을 통해 JYP와 꾸준한 인연을 보였다. 그러나 이 방송들이 지금 연예계에서 아이돌이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뒷받침이 될 만큼 영향력이 크다고 보긴 어렵다. 마침 채령도 출연한 ‘식스틴’은 JYP의 또 다른 거물 걸그룹 트와이스를 데뷔시키는 기획이었는데, 당시 인상이 반복된다. 방송에서 분명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데뷔조로 조합됐을 때 ‘있지’만큼이나 파괴력을 보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식스틴’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선발 멤버에 변동이 생겼기에 ‘원석’을 조합하는 안목에서 JYP 측에 뭔가 비밀 노하우 같은 게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트와이스와는 다른 방향성

    류진 - 2001년 4월 17일 서울
163cm 한림연예예술고 재학 [뉴시스]

    류진 - 2001년 4월 17일 서울 163cm 한림연예예술고 재학 [뉴시스]

    리아 - 2000년 7월 21일 인천 162cm 서울공연예술고 졸업 [뉴시스]

    리아 - 2000년 7월 21일 인천 162cm 서울공연예술고 졸업 [뉴시스]

    예지 - 2000년 5월 26일 전주 167cm 전주상업정보고 졸업 [뉴시스]

    예지 - 2000년 5월 26일 전주 167cm 전주상업정보고 졸업 [뉴시스]

    유나 - 2003년 12월 9일 수원 170cm 한림연예예술고 재학 [뉴스1]

    유나 - 2003년 12월 9일 수원 170cm 한림연예예술고 재학 [뉴스1]

    채령 - 2001년 6월 5일 용인
167cm 한림연예예술고 재학 [뉴시스]

    채령 - 2001년 6월 5일 용인 167cm 한림연예예술고 재학 [뉴시스]

    확실히 트와이스에는 대중이 납득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다. 9명이라는 다소 많은 인원이나 높은 외국인 멤버 비중 등은 당시 시장 트렌드와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데뷔곡 ‘OOH-AHH하게’는 당시까지 국내 음악에서 별로 선호되지 않던 빠른 템포였다. 걸그룹의 데뷔곡에서 흔히 상큼하고 밝은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도입부의 플루트 소리가 음산하다고 느낀 이도 있었고 뮤직비디오에 좀비가 등장하는 것도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와이스는 9명의 개성과 매력이 완벽한 조합을 이뤘으며, 사람들은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채로 이들에게 빠져들었다. ‘애국가를 불러도 1위 한다’는 가공할 스타덤이 이뤄졌다. 한때 소위 ‘3대 기획사’로서는 약세라는 비아냥거림마저 들어야 했던 JYP는 지금 시가총액 1조 원에 달하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트와이스가 정확히 왜 성공했는지를 딱 꼬집어 말하는 데는 늘 한계가 있다. 트와이스는 여전히 ‘현상’으로 실재하고 있을 따름이다. 

    ‘있지’에서 트와이스의 첫해가 강하게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번에는 반대다. 걸그룹이 멤버 수를 늘려가는 추세에서 ‘있지’는 5인조로 몸집을 줄였다. 모두가 트와이스의 일본 성공과 일본인 멤버를 연관 지을 때 ‘있지’는 국내 출신만으로 구성됐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케이팝(K-pop) 담론이 ‘세계관’과 ‘서사성’을 강조하는 시점에서 ‘달라달라’는 어떤 스토리텔링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한 편의 노래와 이미지 위주의 뮤직비디오다. 노래는 시원시원한 하우스 비트 위에 힙합의 질감을 곁들이는데, 이를 위해 저음을 매우 강조하는 베이스 뮤직(Bass Music)을 참조한 듯하다. 역시 국내에서는 상당히 비주류적인 장르다. 다만 멜로딕한 브리지에서 악기들이 빠지면서 멤버들이 “Keep your chin up”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후반부 챈트(chant)는 트와이스의 ‘OOH-AHH하게’의 같은 대목을 연상케 하는 정도다. 말하자면 시장 흐름과는 별개로 어떤 주관이나 공식이 있어 그것이 적용된 결과물처럼 보이는 대목들이다. 

    그러고 보면 가사나 뮤직비디오의 디테일도 ‘OOH-AHH하게’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달라달라’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곡인데, 이를 위해 굳이 다른 여성을 비교 대상으로 설정한다(“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 난 달라 달라” “언니들이 말해”). 또한 당찬 10대를 그리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 어른스러운 표현들도 있다(“내가 너무 당돌하대” “철들려면 멀었대”). 1990년대 CF에서 그대로 따온 것 같은 “네 기준에 날 맞추려 하지 마” 같은 대목은 또 어떤가.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교복을 갈아입다 감시 카메라를 발견하고 옷을 집어 던지는 장면이나, 산업화시대의 표상처럼 늘어선 자동차 지붕에 올라선 모습 등은 결국 성인 남성의 시선을 노출하고 만다. 10대 이야기를 표현하고는 있지만, 10대 언어나 10대가 이상적으로 지향하는 인물상과는 어긋나는 이유기도 하다. 

    사실 이는 ‘걸그룹 명가’인 JYP가 반복해온 일이기도 하다. 트와이스의 초기 가사는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를 비롯해 시대와 거리감 있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고, 미쓰에이의 ‘남자 없이 잘 살아’도 독립적인 여성을 남성의 시선에서 말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비단 JYP를 꼬집어 비판할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성인 남성이 곧잘 기획의 중추가 되는 아이돌산업에서 10대나 여성을 표현할 때 흔히 발견되는 일이자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오히려 JYP는 이 문제에서 항변할 거리도 있다. 미쓰에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역할을 했고, 트와이스의 가사와 음악에서 드러나는 태도 역시 어느 시점부터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결을 보여주고 있다.

    단숨에 와 닿는 JYP표 팝송의 미덕

    여기서는 JYP가 가진 ‘비법’의 하나로 관찰할 만한 의미가 있다. 세계관 설정과 서사가 유행하는 시기에 이들이 시장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회사 특유의 성향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아이돌시장의 문법이 고도로 복잡해지고 있지만 JYP의 일관된 신념은 ‘좋은 팝송’을 만드는 것인 듯하다. 현 케이팝을 기준으로 보면 보수적이라 해도 좋겠다. 역사 속에서 팝은 발매된 직후에 뜨겁게, 그러나 가볍게 즐기는 대상이다. 개중에는 오래도록 대중의 마음에 남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훗날의 이야기다. 당장 접근하는 데는 장애물이 있어선 안 된다. JYP 팝송의 미덕은 늘 처음 접하는 순간 단숨에 와 닿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명쾌하고 강렬한 이미지와 귓가에 달라붙어 맴도는 멜로디를 구사하게 된다. 복잡한 서사성이 감상자를 오래도록 붙잡아둔다고 할지라도, 행여 너무 많은 생각을 일으켜 감상을 지연시킨다면 JYP에게 그것은 덜어내야 할 대상이다. 

    ‘달라달라’가 표현하는 ‘있지’의 상은 명쾌하다. 곡은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트와이스를 성공시킨 JYP의 새 걸그룹’이란 이름만으로도 대중의 호기심은 충분히 강렬하다. 그리고 특히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도입부와 전개부는 이 호기심을 충족하도록 멤버들의 얼굴과 몸짓을 가까이서 보여준다. ‘있지’가 어떤 그룹인지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해한 바가 각기 감상자의 이상에 어긋나는 구석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다음 이야기다. 

    왜냐하면 JYP가 분명하게 인지하는 팝의 또 한 가지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콘텐츠에서 마음에 안 드는 요소가 있다 해도 확실히 마음에 드는 요소가 있기만 하다면 감상자는 그것을 소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있지’의 까탈스럽고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면 몇몇 대목에서 발견되는 찜찜함은 불만 요소가 된다. 그것이 ‘있지’에게서 느낀 매력 전체를 덮을 만큼 커지기 전까지는 불만을 감수하면서도 ‘있지’를 좋아할 수 있다.

    ‘걸그룹 명가’ JYP 비법 집결체

    정치적 올바름(PC)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작은 불만 요소라도 콘텐츠 전체를 비토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문화 향유자들은 불만 요소를 발견했을 때 이를 호소하고 피드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애착을 이어간다. 이마저도 최근 현상이며, 이전까지 전형적인 방식은 참거나 무시한 채 좋아하는 부분만 선별적으로 향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달라달라’가 달성하고 있는 것은 어떤 모순도 불편도 없는 정합성이 아니라, 모순과 불편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명쾌한 매력을 제시하는 일이다. 

    반대편에서 생각하자면 이는 성인 남성을 배제하지 않는 전략이기도 하다. 사실 ‘달라달라’의 가사에 중년 남성이 소외감을 느낄 만한 대목은 전혀 없다. 남다른 청춘이고자 했던 자신의 젊은 날이나, 그때 봤던 ‘여자아이들’의 모습, 자신감과 꿈 등이 X세대의 언어에 가까운 익숙함으로 초대 메시지가 된다. 그렇게 ‘달라달라’는 세대와 성별을 어느 정도 뛰어넘는 어필을 성취한다. 여전히 우리는 ‘있지’와 JYP가 ‘좀 더 완벽하게’ 소구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어느 쪽에 방점 또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지 논할 수 있지만 말이다. 

    결국 ‘달라달라’는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비법의 집결이다. 재능과 매력이 뛰어난 멤버들에게서 원석을 찾아내고, 이들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도록 조합한다. 이것은 산업 외부에서 쉽게 분석할 수는 없는 노하우다. 그러나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대중과 비평가에게 큰 시사점을 갖는다. 비주얼과 퍼포먼스, 캐릭터 등이 중요해진 케이팝 산업에서 직관적인 팝송의 미덕을 방법론으로 적용하는 작품이다. 팝송이 소비되는 방식을 정확히 짚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대중과 접점을 늘리기도 한다. 사실 이것은 지난 20년간 케이팝이 일궈온 마법이기도 하다. 또한 늘 맥락이 불분명하고 내용이 부조리하며 구성이 복잡한, 케이팝 특유의 성향이 비롯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누군가는 관습적으로 또는 ‘남들이 하니까’ 이를 해왔고, JYP는 그 정수를 잊지 않았을 따름이다. ‘있지’와 ‘달라달라’가 일으킨 돌풍이 우리에게 확인해주는 사실이다. 그 정도라면 ‘걸그룹 명가’의 노하우라 불러도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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