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2

2019.01.11

손석한의 세상관심법

유시민의 정계 복귀는 이뤄지는가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9-01-11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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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월 7일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이어 ‘유시민의 고칠레오’를 추가로 방송했다. 유 이사장은 ‘고칠레오’를 통해 “선거에 나가기 싫다”며 자신의 정계 복귀설에 대한 입장 등을 밝혔다. [뉴시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월 7일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이어 ‘유시민의 고칠레오’를 추가로 방송했다. 유 이사장은 ‘고칠레오’를 통해 “선거에 나가기 싫다”며 자신의 정계 복귀설에 대한 입장 등을 밝혔다. [뉴시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와 ‘고칠레오’가 연이어 성공하고 있다. 보수논객이 장악하다시피 한 유튜브에서 그의 돌풍은 놀랄 만한 일이다. 얼마 전 시작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홍카콜라TV’가 꽤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중에 유시민 방송이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조회수를 보여주고 있다니 더욱 그렇다.

    유튜브 방송이 곧 ‘정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의 ‘홍카콜라TV’ 캡처 장면. [뉴스1]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의 ‘홍카콜라TV’ 캡처 장면. [뉴스1]

    사람들은 유시민이 정치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유시민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현재 밖으로 드러나는 그의 말과 활동 자체가 정치나 마찬가지다. 그는 1월 2일 한 종합편성채널의 신년 특집 대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저임금 이슈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기사를 비판했다.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30년 함께 일해온 직원을 눈물 머금고 해고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자신도 눈물이 났다면서 “어떻게 30년 동안 최저임금을 줄 수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러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자리에서 그는 “현 경제위기론은 보수 기득권 이념 동맹의 오염된 보도”라고 지적했다. 이는 곧 정치활동 재개를 알리면서 보수언론과 싸움에 임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이런 과정이 곧 정치가 아니겠는가. 

    홍준표의 홍카콜라TV 활동도 당연히 정치다. 일반 국민이 삼삼오오 모여 정치적 논쟁을 벌이는 것도 ‘작은 정치’라 할 수 있다. 권력 획득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곧 정치적 발언을 통한 정치활동인 셈이다. 

    유시민은 자신이 정치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개인의 삶을 들었다.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무게가 더욱 크고 중요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행복과 공리(公理)를 서로 대척점에 둘 수 없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공리를 추구함으로써 얻는 개인의 행복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는 평범한 국민이 아니요,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말했던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아니다. 

    유시민의 말이 충분히 이해되기는 한다. 다시 정치인이 된다면 반대세력이 가하는 여러 비난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고, 그의 말대로 선거에 이기고자 ‘을’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누군가 정계 진출을 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말리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한다. 특히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말린다. 왜냐하면 정치인의 길에는 성공만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다들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권교체 이후 전직 대통령이 감방에 가고, 유력 정치인이 줄줄이 수감되거나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는 모습을 목격해왔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김정은 반대세력 또는 눈 밖에 난 인물들이 곧바로 처형되지 않는가. 최고권력자의 고모부나 피를 나눈 형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정치세계의 잔혹한 속성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겠지만, 사회적 매장이나 인격 살인은 늘 있어왔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술 한잔 마시며 정치 얘기를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정치 색깔을 드러내진 말라는 식의 조언을 듣곤 한다. 

    필자가 보기에 유시민의 정치 복귀는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 동기를 추정해보고자 한다. 

    첫째, 승부욕의 발동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떨어졌다. 만일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계속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호언장담한 대로 20년 집권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 유시민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위기를 겪고 있고, 위기 강도가 더 커질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팀을 살릴 구원투수가 필요하다. 크게 이기고 있을 때는 몰라도 지고 있는 경기를 이기려면 내가 나서야 한다는 승부욕이 발동하게 마련이다. 그래야 재미와 보람도 클 것이다. 

    둘째, 도덕적 우월감의 발로다. 유시민은 정의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가짜뉴스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의 관점에서 가짜가 판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상이 다시 나타날 낌새가 보이니 그냥 있을 수 없다. 도덕적으로 흠집이 별로 없다고 자부하는 그가 세상을 구하고자 나선 것이다. 비록 진보 또는 좌파 세력에게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가해지긴 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래도 보수 또는 우파 세력보다 이들의 도덕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첫 방송 주제가 ‘유시민의 정계 복귀’인 이유

    2006년 청와대에서 함께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2006년 청와대에서 함께 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셋째, 향상된 기량을 발휘하고자 함이다. 그동안 유시민은 작가 또는 TV 프로그램 출연자로서 집필과 방송활동에 전념해왔다. 정치인으로서 기량은 이미 쌓아놨고, 장관 경력도 있으며, TV 토론진행자로서 초기 공력도 충분하다. 그랬던 그가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을 충실히 다졌다. 방송인으로 시작해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다시 방송으로 돌아간 유시민. 그것도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라는 지식인적 위치가 아니라,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라는 ‘연예인적 지위’를 자처했다. 그를 싫어하는 보수층 인사들은 ‘국회의원, 장관, 당대표까지 지냈던 그가 이제 TV 방송에 나와 가벼운 언사나 주고받는 수준으로 추락했구나’라고 생각했을 테고, 반대로 그를 좋아하는 진보계 인사나 일반 대중은 ‘유 작가는 매우 소탈하고 서민적이며 탈권위적인, 인간적인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시민은 부드럽고 성숙해진 이미지와 상당히 통합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하되, 결국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설파하는 파괴적 공력을 갖추고 나타났다. 마음껏 자신의 공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넷째, 반전의 쾌감을 즐기고자 함이다. 박원순, 이재명, 이낙연, 임종석 등이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될 때 유시민을 얘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공식적인 직함 없이 ‘알쓸신잡’이라는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오고, 책을 써 인세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 말대로 ‘핫’하게 회자되는 그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유튜브 방송 진행자로 재등장한 것은 한마디로 화려한 컴백이다. 

    다섯째, 반어법 또는 역설적 표현으로 강력한 암시를 주고자 함이다. 그의 방송 주제는 자신의 정계 복귀였다. 그는 이 주제를 다루면서 정계 복귀를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정계 복귀를 주제로 선택했다는 점 자체가 국민에게 의제를 던진 것이다. 이제 유시민이 과연 정치를 할지에 대한 찬반토론이 벌어질 터다. 

    그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잠시 정치를 한 데 대해 후회의 말을 던졌다. 그는 노무현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려 하는 것은 더더욱 당연하다. 노무현의 형제이자 친구인 문 대통령이 혹시 꿈을 다 이루지 못한다면? 그다음에는 누가 그 꿈을 펼쳐나가고 이룰까. ‘나 말고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격려하고 밀어줄 텐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노무현의 조카이자 큰아들인 내가 나서야 될 수도 있겠구나!’ 

    정치란 너무 힘든 일이고, 책임이 무거우며, 좋은 마음으로 한다고 늘 인정받는 것도 아니라는 노무현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맞다. 분명 그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말대로 삶의 행복이 오로지 거기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집필, 방송, 낚시를 하며 살았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유튜브 방송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자!’ 

    이처럼 유시민은 정치 외적인 활동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세상을 변화시켜가길 원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이런 삶의 방식이 존중받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다면 모를까…

    그런데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목표’가 자신만 누리고자 하는 삶은 아닐 터다. 즉 여러 사람과 더불어 누리는 삶일 것이다. 그가 방송을 하는 목표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알고 깨닫고 느끼며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송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정치권력이라는 사실을 그도 잘 안다. 

    ‘책임이 너무 무겁고 무척 힘들지만 나의 운명이요, 시대적 사명으로 받아들여 다시 정치를 할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한다고 늘 인정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계속해 좋은 마음으로 노력하다 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인정해주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만일 내 생각에 동조하고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더욱 많아진다면, 이것은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므로 나는 용기를 갖고 힘을 내보고자 한다….’ 

    유시민은 이미 대선 출마의 길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대중적 인지도는 어마어마하고, 그의 공력은 과거보다 세졌다. 보수층의 대권 후보들과 여권 경쟁자는 모두 긴장할 필요가 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잡듯, 죽은 노무현의 힘이 이제 유시민의 핏속에 녹아들어 온몸으로 퍼지고 있다. 

    그가 정계 복귀를 하지 않는 상황은 딱 하나다. 경제가 살아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삶이 윤택해지고, 소득주도성장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해 내수가 진작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상당 부분 해소되며, 북핵 문제가 잘 해결돼 남북 및 북·미 관계에 평화가 도래하는 상황이다. 그럼으로써 문 대통령 지지율이 급등한다면 유시민이 정치판에 나올 필요가 전혀 없다. 그는 알릴레오, 고칠레오 방송을 중단하고 가볍게 방송이나 집필활동을 하며 낚시를 즐길 것이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리도 노무현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작업을 다진 후 적절한 후임자에게 넘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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